샤프심 통 같은 사람
정숙아.
응.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
글쎄...
이게 뭔지 알아?
샤프심 통이네.
근데 이 샤프심 통에는 샤프심이 없어.
그럼 어떻게 할래?
버리지.
맞아, 이건 그냥 쓰레기야.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쓸모없는 사람 아닐까?
빈 샤프심 통처럼 버려지고 사람들에게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하는.
그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쓸모 있는 사람이겠네.
우와~맞아. 정답이야. 역시 정숙이는 똑똑해.
샤프심이 가득 찬 샤프심 통 같은 그런 사람.
그런데 말이야.
중요한 건 샤프심이 아니야.
샤프심이 많아도 꺼내서 주지 않으면 그 역시도 쓸모가 없거든.
뚜껑이 고장 나 샤프심을 주지 않으면 그 역시 버려지는 쓰레기일 뿐이지.
소유보다 나눔이 중요해.
가족에게도 친구에게도 이웃에게도 혹은 나와 전혀 무관해 보이는 누군가에게 조차.
근데 너무 가난해서 남에게 줄 것이 없는 사람은 어쩌지?
남에게 줄 것이 없을 만큼 가난한 사람은 세상에 없어.
아닌데, 내가 아는 아줌마 중에 정말 어려운 사람 많은데.
...
너 수원 역에 노숙자 분들 많은 거 알지?
알지.
지난번에 수원 역을 지나다가 참 놀라운 광경을 봤거든.
뭘?
한 노숙자분이 다른 노숙자분이 다가오니까 자기가 덥고 있던 박스 하나를 내밀더라고.
박스를 받고 옆에 기대앉은 분이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붕어빵 한 봉지를 꺼내더니 나눠주더라고.
그때 알았어.
노숙자도 줄게 있다는 걸.
아~그러네. 가난해도 줄게 있네.
정숙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샤프심 통처럼 살면 얼마나 좋을까.
음, 멋있네.
내가 너무 감상적인가?
당신은 늘 그런데 뭘.
근데 내가 실제로는 그렇게 잘 못살아서 참 그래.
걱정 마, 좋은 날이 오겠지.
그런 날이 올까?
...
올 거야.
기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