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 이야기
사랑을 받는 일은, 어떤 사람에게는 말처럼 단순하지 않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될 때마다 마음이 설레는 대신 조바심부터 느끼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오늘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어제와 조금만 달라도, 말투가 살짝만 건조해져도, 머릿속은 이미 수많은 가정과 불길한 결론으로 가득 찬다. “나한테 마음이 식은 건 아닐까, 내가 뭔가 잘못했나, 혹시 다른 사람이 생긴 건 아닐까.” 사랑을 받는 순간에도 안심하지 못하는 사람들, 그들의 마음속엔 늘 조건부 사랑에 대한 공포가 웅크리고 있다. 언제든 사랑은 철수될 수 있는, 잠깐의 기적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나치게 민감하고 예민하다는 오해를 받는다. 사소한 말 한마디에 울컥하거나, 답장이 조금 늦었다고 불안에 휩싸여 온갖 감정의 시뮬레이션을 돌리는 모습을 주변에서는 과도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안에는 오래된 결핍이 있다. 어린 시절, 누군가의 애정을 믿고 안심할 수 있었던 기억이 없었던 사람들. 조금 울면 토닥여주는 대신, 참아야 사랑받을 수 있다는 신호를 반복적으로 받아온 아이들. 그들은 자라서도 사랑 앞에서 쉬이 편해지지 못한다. 그 불안은 관계 안에서 해결되기를 원하지만, 동시에 관계를 갈기갈기 찢어놓는 모순적인 방식으로 스스로를 시험하고 만다.
얼마 전에 한 친구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는 연애만 하면 상대가 지칠 때까지 매달리게 된다고 했다. 나중엔 스스로도 그 사실이 싫어져서, 아예 좋아지는 걸 멈추고 싶다고 했다. 사람을 좋아하는 감정이 생기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마음이 너무 괴롭다고. 상대의 반응 하나하나에 온 감정이 휘둘리고, 하루 종일 핸드폰을 쳐다보게 되고,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에만 집중하게 된다고 했다. “나는 사랑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사랑이 끝날까 봐 겁나거든.” 그 말이 잊히지 않는다. 그녀는 사랑을 시작할 때부터 이미 이별을 예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마음으로 하는 사랑은, 언제나 완벽하고 절대적인 감정을 요구하게 된다. “너는 나를 절대로 떠나지 않을 거야”라는 확신. 그 확신이 조금만 흔들리면, 온 감정이 무너지니까.
불안형 애착을 가진 사람에게 사랑은 늘 '이별로 가는 길목'에서 시작된다. 사랑이 시작되었다는 건, 곧 이별을 준비해야 한다는 신호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더 빨리, 더 많이, 더 깊이 사랑하려 애쓴다. 내가 더 사랑하면, 더 붙잡으면, 상대는 떠나지 않을 것 같아서. 하지만 그렇게 하면 할수록, 상대는 종종 무게를 느끼고 한 걸음 물러선다. 그리고 그 물러섬이 불안을 자극하고, 불안은 다시 더 큰 매달림이 되어 되돌아온다. 그렇게 관계는 점점 무거워진다. 결국에는 버림받을까봐 두려워하며 시작된 사랑이, 자기 손으로 관계를 무너뜨리는 아이러니를 반복한다.
불안형 애착을 가진 사람에게 사랑은 대상이 아니라 상태다. ‘사랑받고 있는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확인해야 하고, 그 상태가 위태로워질 때마다 본능적으로 반응한다. 전화를 걸고, 문자를 보내고, 때로는 아무 일 없는 척 시큰둥하게 구는 것도 모두 그 상태를 다시 되찾기 위한 신호다. 이건 이성으로 조절되는 것이 아니다. “좀 더 쿨하게 굴어보자”거나, “조금 거리를 둬야 해”라는 이성적인 판단이 불안의 강도 앞에서는 자주 무력해진다. 그래서 이 관계가 망가지고 있다는 걸 알아도, 멈추지 못한다. 상대의 말보다, 태도보다, 침묵보다 더 중요한 건 ‘느낌’이기 때문이다. 사랑이 줄어들었다는 느낌, 멀어졌다는 느낌, 예전만 못하다는 느낌. 그런 느낌이 찾아오면 마음은 이미 무너져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토록 완전한 사랑을 갈망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더 조급해진다. 이 사랑도 언젠가 끝날 거라는 걸, 나도 모르게 예감한다. 그러니 사랑받을 수 있는 시간 동안 최대한 많이, 깊이, 격렬하게, 그 사람 안에 나를 남겨두려 한다. 완전한 사랑을 요구하면서도, 결코 그것을 믿지 못한다. 사랑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떠날 때의 고통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다.
불안형 애착은 누구나 가진 사랑의 결핍이 어떤 방식으로 드러나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어떤 사람은 침묵으로, 어떤 사람은 회피로, 어떤 사람은 감정의 폭발로 그 결핍을 표현한다. 하지만 결국 그 밑바닥에는 같은 고백이 있다. “나는 혼자가 무섭다.” “나는 버려질까봐 겁이 난다.”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을지도 몰라.” 이 고백들이 마음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한, 사랑은 늘 안정감보다는 공포에 가깝다. 그래서 때로는 사랑하는 사람이 미워지기도 한다. 나를 이렇게 불안하게 만드는 존재가 밉고, 또 그런 존재에게 목숨처럼 매달리는 내가 더 밉다.
사랑을 하면 할수록 외로워진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속마음에는, 이런 복잡한 감정이 자리한다. 불안형 애착을 가진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절대 변하지 않는 사랑’이 아니라, 불안해도 괜찮다고 말해줄 누군가다. 언제든 돌아와도 된다고, 멀어졌다 다시 가까워지는 건 사랑에 흔한 일이라고, 그렇게 말해주는 사람. 그러면 그들도 조금씩 믿을 수 있게 된다. 사랑은 떠날 수도 있고, 다시 돌아올 수도 있다는 것을. 완전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어쩌면 완전한 사랑에 대한 요구는, 사랑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향한 간절한 확인인지도 모른다. 나는 사랑받아도 되는 사람일까? 나는 떠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일까? 이 질문에 ‘그래도 괜찮다’는 대답을 찾는 일. 불안형 애착이란, 결국 그 대답을 향해 평생을 돌아가는 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