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 이야기
상담실에서 내담자가 조심스럽게 꺼내는 한 마디는 종종 "이런 말 해도 되나요?"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입가에는 죄책감이 번지고, 눈빛은 아래를 향한다. '내가 너무 이상한 건 아닌가', '이건 상담실에서도 하면 안 되는 말 아닌가' 하는 불안이 얼굴을 뒤덮고 있다. 흥미로운 건 그 말이 꼭 거친 욕설이나 금지된 고백이 아닐 때조차 그렇다는 것이다. "사실 엄마가 싫어요." "아이를 키우고 싶지 않아요." "죽고 싶은 기분이 자주 들어요." 그들은 속으로 이미 수십 번 이 말을 연습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막상 누군가 앞에 앉아 있으면 그 말은 갑자기 혀끝에 묶인다. 이상하게도 뭔가 문제가 있어보인다.
금기의 언어는 그 자체로 사회적 긴장을 불러일으킨다. 우리가 쉽게 말할 수 없는 것들은 대부분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거나, 우리 자신을 불안하게 만들거나, 둘 다일 경우가 많다. 상담실조차도 이 원칙에서 완전히 자유롭진 않다. '무엇이 적절한 말인가?'라는 기준은 무의식 깊숙한 곳에서 작동하며 단순한 예의 범주를 넘어 삶의 윤리와 부끄러움, 수치심, 죄의식과 밀접하게 얽혀 있다. 그러니까 어떤 말을 입 밖에 낸다는 것은 단지 발성기관을 거쳐 소리를 만들어내는 일이 아니라, 자기를 위험에 노출시키는 행위다. 말을 한다는 건 스스로를 해석 가능한 존재로 세상에 내놓는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말을 듣다 보면 ‘상담실이 과연 안전한 공간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안전한 공간이라는 말은 너무도 자주 쓰이지만, 실제로 그것을 만들어내는 건 상담사의 미묘한 태도와 반응, 언어의 느낌, 표정의 작은 변화 같은 것이다. 누군가가 말을 꺼낼 때 그 말의 내용보다 더 중요한 건 그 말이 발화되었을 때의 ‘기류’다. 누군가가 금기어를 꺼내고 난 뒤의 몇 초간 방 안의 공기는 유리처럼 맑아지기도 하고, 때로는 조심스레 흩날리는 먼지처럼 침묵을 감돈다. 그 조용한 공기를 견디는 법을 배워야 한다. 말은 흘러나오지만 그 말이 내 앞에 남기는 자국은 매번 다르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말을 들을 준비가 되었다는 건 그 말이 불편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미리 받아들이는 일이다. 심리상담이라는 일을 하다 보면 더는 말의 내용에 크게 놀라지 않게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말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건 아니다. 어떤 문장은 몇 번을 들어도 마음이 저릿하다. 특히 누군가가 "이 말 하면 미친 사람 같겠죠?"라며 꺼내는 이야기들은 대부분 자기 자신과 싸워온 흔적들이 배어 있다. 그들이 그 문장을 꺼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밤을 지새웠는지를, 나는 조금씩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금기어란 ‘말’이 아니라 ‘감정’일지도 모른다. 사회적으로 말해선 안 되는 단어보다 감히 느껴선 안 될 감정들이 더 무섭게 작동하니까. ‘부모를 미워하면 안 된다’, ‘죽고 싶다는 말은 무책임하다’, ‘가족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식의 내면화된 규범이 너무 오랜 시간 뿌리내려서 그 감정을 느끼는 자신조차 부정하게 만든다. 그래서 상담실에서조차 그 감정을 ‘적절하게’ 포장해서 말하려 하고 때로는 ‘이건 말이 안 되는 이야기인데요…’라고 스스로를 무효화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나는 그럴 때마다 그 무효화된 이야기 속에서 진짜 목소리를 발견하게 된다. 진짜라는 건 그 말이 옳거나 정당하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그것이 누구에게나 쉽게 닿지 않는, 그 사람만의 고통에서 길어 올려졌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비논리적일 수밖에 없고, 서툴며, 때로는 부적절하고, 감정이 뒤엉켜 있다. 하지만 오히려 그 말은 그 사람의 언어가 되는 첫 순간이고, 그 자체로 엄청난 용기다.
그리고 깨닫는다. 우리가 상담에서 정말 다루는 것은 단지 증상이나 문제나 해결이 아니라 ‘나는 괜찮은 사람인가’를 확인하고 싶은 인간의 근원적인 불안이라는 것을. 상담실에서 우리가 반복적으로 묻는 건 사실상 "이런 나도 괜찮나요?"다. 말로 표현된 감정이나 생각은 결국 ‘존재해도 되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수렴된다. 그래서 금기어와 부적절감은 단순한 언어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존재가 승인받고 싶은 간절함의 언어다. 누군가 그 말을 했다는 건 신뢰를 경험했다는 뜻이고, 그 신뢰를 깨뜨리지 않기 위해 상담가는 무엇보다 그 말을 받아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나는 오늘도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여는 순간을 기다린다. "선생님, 이런 말 해도 되나요?"라는 질문은 사실상 "제가 존재해도 되나요?"라는 속삭임일지 모른다. 그 질문이 나올 때 나는 아주 작게, 하지만 가장 진심 어린 마음으로 대답한다. "해도 됩니다. 지금 이 순간, 어떤 말이든 우리와 함께 해도 괜찮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