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지내고 있는 곳은 '파도바'라고 하는 이탈리아 북부의 작고 조용한 동네였는데, 이탈리아에는 관광지로 정말 유명한 도시들이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관광과는 다소 동 떨어져 있는 도시는 또 다른 즐거움을 준다. 언뜻 보면 국내와 유사한 풍경을 지녔지만 그 속의 전혀 다른 외모의 사람들과 독특한 문화는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이 이국적인 유명 관광지와는 또 다른 무언가 익숙함 속의 새로움을 일깨워 주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탈리아 내에서도 나의 여행지 선정은 철저히 내 주관대로 진행되었고, 여행에서 만난 현지인의 추천에 실시간으로 변경되는 등 유동적이게 여행 주체자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그렇게 내가 방문한 곳은 볼로냐, 폼페이, 포지타노, 카프리, 피렌체이다.
볼로네제 파스타의 시작, 볼로냐
첫 번째 여행지는 '볼로냐'였다. 볼로네제 파스타가 시작된 곳이라고 해서 과연 원산지의 맛은 어떨지 잔뜩 기대를 하고 기차에 올랐지만 현지의 맛은 원체 양식을 즐겨 먹지 않는 나에게는 더 느끼하게 다가왔다. 식당을 추천한 친구가 눈을 반짝이며 음식에 대한 후기를 물었기 때문에 실망한 기색을 감추고 친구가 무안하지 않도록 맛있게 먹을 수밖에 없었다. 식당을 추천한 친구는 유학 중인 지인의 대학 친구인데 이탈리아 현지인이고, 한국계 미국인 친구 1명을 포함하여 총 4명이서 볼로냐를 여행하였다. 이탈리아 친구는 음식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강해서 프랑스에서 학교를 다닐 때는 이탈리아 친구가 요리를 대접할 기회가 있었는데, 각종 조미료를 이탈리아에 가서 직접 가지고 올 정도였다고 했다. 그런 말을 듣고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얘기는 감히 꺼낼 수가 없어 조용히 먹다가 조용히 식사를 종료하였다.
이탈리아 남부로 가는 관문, 나폴리
이탈리아 남부로 가는 관문인 나폴리는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는데 치안이 그렇게 좋지 않다는 이야기가 많아 유명한 피자가게에서 피자만 얼른 테이크아웃을 했다. 매장에서 먹을 수 있는 웨이팅 줄은 너무 길어서 도저히 기다릴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포장해서 폼페이로 가는 기차에서 피자를 먹었다. 한국에서는 남들의 시선 때문에 그러지도 못하고, 이것이 과연 공중 에티켓이 맞나 싶지만 다른 대중교통에서도 자유롭게 샌드위치 등 음식을 먹는 사람들을 목격하며 자신이 생겼었다. 그렇게 맛보게 된 나폴리 정통 마르게리따 피자는 기대했던 것에 비해서 특별한 맛은 없었고 기본적이고 담백한 맛이었으나 무더위 속에서 얻어냈다는 사실 때문인지 기차에서 사람들 눈치를 보며 허겁지겁 먹었기 때문인지 밍밍함 속의 묘한 자극적임, 평양냉면과 같은 기억으로 남았다.
이탈리아 남부의 아름다운 해안 마을, 폼페이 & 포지타노 & 카프리
가장 사치스러운 도시였지만 화산 폭발로 휩쓸려 간 비운의 도시인 폼페이는 군데군데 남은 사치와 재난의 흔적이 나로 하여금 어떤 검증되지 않은 인과성을 부여하도록 하여 신의 존재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였다. 용암과 화산 폭발로 인한 잔해들이 순식간에 도시를 휩쓸어 그 당시 그대로 굳어버린 인간의 모양새를 보자 하니(그곳엔 아기의 형상도 있었다) 그 당시의 절망과 고통이 시간을 초월해 조금이나마 전해져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공간적인 이질성 때문인지, 배경지식이 부족한 유적지인 만큼 이해는 해보겠다고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며 더운 날씨에 그 넓은 곳을 혼자 돌아다니면서 고생했기 때문인지 그 장소는 실제로 가봤다는 느낌보다는 꿈을 꾼 것처럼 기억에 남았다.
굽이진 해안 도로와 프라이빗한 비치로 인해 신혼여행 단골 장소로 꼽히는 이탈리아 남부의 포지타노는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예쁜 바닷가에서의 낭만적인 수영과 같은 환상을 품고 도착했다. 나는 여행을 가면 바닷가에서 낮잠 자는 걸 정말 좋아하는데, 더운 날씨에도 비치타월을 깔고, 가방을 도둑맞지 않기 위해 베개로 사용하며 낮잠을 자고 나면 막상 일어났을 때 개운하지 않더라도 묘한 짜릿함이 느껴진다. 그 짜릿함은 낯선 장소에서 나의 가장 무방비한 상태인 잠을 허락함으로써 느끼는 스스로에 대한 대범함과 그로 인한 뿌듯함일까.
카프리는 이탈리아 남부에 있는 작은 섬인데 내가 좋아하는 영화인 맘마미아의 배경지인 그리스와 매우 닮아있고, 닿아있고, 또 실제로 배경이 된 부분도 있다고 하여 궁금한 마음에 방문하였다. 비록 생각보다 카프리로 가는 배편을 오래 기다려서 계획보다 짧은 시간밖에 머물지 못하였지만, 습기를 하나도 머금지 않은 쨍쨍한 햇빛과 하얀 돌길과 아기자기한 가게들, 여행지임을 시각적으로 강조해 주는 알록달록한 원피스, 리넨 옷가지를 파는 가게들로 인해 마치 동화 속에 잠시 배를 타고 들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기에 짧은 시간임에도 아쉬운 마음보다는 시간 내서 머물다 가기를 택한 것을 매우 잘했다고 생각하였다.
현실 속에 녹아든 한 폭의 그림, 피렌체
피렌체는 사실 여행 계획에 있지 않았다. 여행에서의 나의 추구 성향인 새로운 곳,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신비한 곳과는 조금 거리가 있어 우선순위에 들지 못하였지만, 이탈리아에 와서 친구와 대화를 나누며 꼭 가보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게 되었다. 이탈리아에 가서 매일 한 잔씩은 꼭 마셨던, 내 입맛에 꼭 맞았던 스프리츠와 정통 까르보나라로 여행 연료를 채우고 그렇게 아름답다는 피렌체 성당을 보러 갔다. 심각한 방향치와 길치인 나는 또 열심히 헤매면서 길을 찾고 있었는데, 그곳에 닿기도 전에 아 저곳이구나 싶은 주변 상황들과 완벽히 어울리지 못하는 마치 한 폭의 그림과 같은 성당이 떡하니 등장한 것이다. 성당이 예뻐봤자 얼마나 예쁘겠어,라고 오만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울 만큼 아름다운 성당이었다. 성당의 모든 윤곽과 테두리들의 두께를 최대로 설정한 것처럼 또렷했다. 그리고 거대하였다. 그래서 조금 더 주변 환경들과 녹아들지 않고 긍정적인 의미로 이질적으로 느껴졌나 보다. 친구네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는 전망대에 찾아갔는데, 널찍한 계단에 다들 앉아서 맛있는 것도 먹고 이야기도 하고 있었고 앞에서는 버스킹이 한창이었다. 자연스럽게 그 속에 끼어들어 주변사람들의 표정과 행동 그 공간의 분위기를 오감으로 느끼려고 노력하였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것이 즐거운 이유는 늘 똑같이 반복되는 내 자아에 새로운 옷을 입혀주기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