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분간 유럽은 못 갈 줄 알았는데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
나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22살, 그러니까 대학생활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3학년에 막 들어가기 직전 무렵
보이지 않는 힘이 그간 인간이 저지른 무책임한 악행들에 대한 벌을 내린 것일까,
전 세계적으로 불가피하고 파괴적인 그 재앙만 없었다면
대학생활 동안 더 많은 해외 경험을 가질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곤 한다.
그만큼 나는, 늘 굶주린 상태인 학생 신분으로도 평일+주말 아르바이트를 풀로 뛰고
점심 식사비용이 아쉬워서 학식 중에서도 제일 저렴한 것만 골라먹으면서 돈을 모아 해외여행을 다닐 만큼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여행 중에서도 해외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라고 하면,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서 말을 해야 할 것이다.
힐링, 도전, 경험으로 귀결되는 사람들이 여행을 하는 많고 많은 이유들 중에서
나는 '새로운' 것에 유독 집착을 하는 사람인 듯하다.
국내에서는 보고 느낄 수 없는 '새로운' 장소, 겪을 수 없는 '새로운' 경험
예를 들면, 해발 4,500m 가까이 되는 스위스의 마터호른이나
노르웨이 트롬쇠에서 겨울철 새벽 2시 정도에 운이 좋으면 관측할 수 있는 오로라는
국내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규모의 자연, '새로운' 장소가 되고,
괌이나 동남아 같은 맑고 푸른 바다 아래에서 해수면과 하늘을 동시에 바라볼 수 있는 씨워킹과 같은 액티비티는 '새로운' 경험이 되는 것이다.
여행을 떠날 결심
이번화를 통해 9화째 연재 중인 '사회초년생' 첫 화에서도 짧게 말했듯이
직장인이 되면 자주, 길게는 여행을 가지 못할 거라는 걱정이 있었고
그렇기에 취업에 성공하고 입사하기 전 획득한 2개월 남짓의 시간 동안 해외여행을 2번 다녀왔었다.
하지만 걱정과는 다르게 일을 하다 보니, 내가 하는 업무가 개인업무라는 것의 장점이
스케줄 관리만 철저히 하면 연휴를 붙여서 2주 정도는 해외를 갈 수 있는 일정을 만드는 게 가능했다.
그리하여 입사 7개월 차, 불효의 아이콘으로 보는 그 시대 어른들의 무언의 목소리를 애써 무시하고
추석 연휴에 이어서 2주 정도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오게 되었다.
어차피 엄마가 자영업을 하셔서 연휴기간에 친척집 방문이 어렵고,
연휴가 끝나고 가족들, 친척들과 함께 모여 인사도 드리고 대화도 나눴다는
마음의 가책으로 인한 변명은 덤이다.
이탈리아, 여행지 선정의 이유
이탈리아로 여행지를 선정한 데에는 많지 않지만 분명한 이유들이 있다.
첫 번째로, 황금기 연휴에 여행을 가다 보니 비행기 가격이 그나마 저렴한 곳으로 선택지가 한정적이었다.
사실 업무 일정을 조율하면 연휴 때 길게 여행을 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가고 싶은 여행지의 비행기 가격이 도저히 수용 가능한 수준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연휴 때는 어렵겠구나 단념하고 있을 때 습관성으로 무심코 들여다본 비행기 예매 사이트에서
이탈리아 밀라노 인아웃 비행기 티켓이 100만 원 초반대로 올라온 것을 목격하였다.
두 번째로, 완전한 '자연'을 만끽할 수 있거나 새로운 무엇을 접할 수 있는 곳이어야 했다.
포지타노, 카프리와 같은 이탈리아 남부와 베네치아가 그런 나의 수요를 만족하는 곳이었다.
마지막으로, 친한 친구가 당시 이탈리아에서 유학 생활을 하고 있었다.
친구는 학업 중이었기 때문에 계속 같이 여행을 할 수는 없었지만,
원래 혼자 여행도 좋아하는 나이기에 주말엔 친구랑 여행도 다니고 평일에 돌아와서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며 무엇보다 친구의 이탈리아 숙소에 함께 머무는 게 가능했기 때문이다.
역시 가장 설레는 건 공항 그리고 비행기
혼자 해외로 가는 비행기에 타는 건 이로써 두 번째 일이 되었다.
시간과 컨디션보다는 저렴한 비행기 티켓을 선택한 나는 늘 경유를 해왔는데,
경유지에서 비행기를 환승하고 난 이후 10시간 남짓의 두 번째 비행을 하는 일은
그리 좋은 습관은 아니지만 세수와 샤워를 자주 하는 나에게는 찝찝함의 감옥과도 같았다.
연관성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좁은 좌석에서 자다 일어나기를 몇 번씩 반복하고
미디어를 보면서 보내는 활동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그 시간의 공백은
무언가 쾌적하지는 않지만 잠깐의 '보금자리'라고는 내가 인식을 하는 것인지
보송한 컨디션을 유지하기를 무의식적으로 원하는 것 같았다.
그런 내 뜬금없는 부분에서 툭 튀어나오곤 하는 예민함이
해외여행이라고 해도 그날 방문할 도시정도만 계획하는
J가 보면 까무러칠 일정의 작성자인 내가 경유지에서 씻을 만한 곳이 없을지 찾아보게 하였다.
중국동방항공 비행기를 타서 당시 베이징 공항을 경유했는데,
라운지 내에 있으며 단돈 2만 원 정도에 샤워를 할 수 있는 곳을 발견하였다.
당연히 호텔에서 샤워하는 것만큼 쾌적한 환경은 아니었지만
장시간 비행을 앞두고 보송함 맛보기 정도는 할 수 있는 수준의 응급처치는 되었다.
그렇게 피곤함과 지침으로 겹겹이 포장한 설렘을 안고 가는
입사 후 첫, 시간과 돈을 겸비한 여행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