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엄마, 이번 주도 간식 가져왔어

엄마 주려고 챙겨 오는 그 마음이 좋아

by 소심천
대기업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방법

회사에는 2개의 식당이 있는데,

각 식당마다 식사별로 4개의 메뉴가 나온다.

그리고 식사 시간을 놓쳤거나 식사할 시간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가져갈 수 있는 간편식도 마련되어 있다.

간편식에는 간단히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김밥, 샌드위치, 샐러드, 컵밥 등이 있고,

각종 과자류와 간식, 그리고 식단 관리를 하는 사람들을 위한 닭가슴살, 쉐이크 등이 있다.

끼니마다 2개 종류의 간편식을 가져갈 수 있는데, 2개를 다 먹진 않아서

유통기한이 긴 과자, 빵류 등을 보관했다가 주말에 본가에 가서 가족들에게 주고 있다.

1주일을 쌓아 놓으면 꽤 짐이 되긴 하지만 가져가면 곧잘 챙겨드시기 때문에 꼭 챙겨가려고 한다.


부서사람들과 식사를 하지 않는 이유

간편식이 아니라 식당에서 식사를 하면 이렇게 챙겨놓았다가 가져갈 수가 없는데

사실 식당에서 식사를 하지 않고 간편식을 이용한 지 꽤 오래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입사 초반에는 식사가 맛있게 잘 나오기도 하고,

부서 분위기가 다 같이 밥을 먹어야 하는 기조라 같이 식사를 하곤 했는데

두 가지 이유로 부서 사람들과 밥을 먹지 않게 되었다.


첫 번째 이유는, 사람들과 밥 먹는 속도가 맞지 않아 힘이 들었다.

나는 먹는 속도가 느리기도 하고, 먹는 행위 자체를 좋아하다 보니

천천히 즐기면서 식사하는 걸 좋아하는데

아무리 사람들이 괜찮다고, 천천히 먹으라고 해도 나는 절반도 먹지 못했는데

다 드시고 기다리는 것이 당연히 편하지 않았기에 적정량을 먹지 못하는 날이 반복되었다.


두 번째 이유는, 점심시간이 아까워지기 시작했다.

밥을 먹고 자리로 돌아오면 점심시간이 3~40분 정도 남는데,

무엇을 하기에 애매한 시간이고 자꾸 자리에 있으면 일을 하게 되었다.

마침 그즈음 신문을 보기 시작했고, 딱 점심시간 1시간이면 그날 신문을 볼 수 있었다.

저녁엔 운동하고 책 읽거나 약속을 가는 등 루틴이 있었기 때문에

점심시간 1시간을 활용하여 신문을 보고 싶었고, 이 두 가지 이유로 밥을 따로 먹게 된 것이다.


작은 빵 하나로 엄마의 행복을 살 수 있다면

그렇게 세끼를 간편식을 먹다 보니 1주일만 지나도 쇼핑백이 가득 찰 정도의 식량을 가족들에게 전달해 줄 수 있었다. (음료 5개, 간식류 10개 정도의 양)

특히 엄마는 참깨스틱, 선식과 수요일마다 나오는 '밀도'의 모닝빵을 좋아했는데

이것저것 가져다주다가 이제는 엄마의 취향에 딱 맞는 구성을 조합할 수 있게 되었다.

자영업을 하시는 엄마는 혼자 오전부터 밤늦게까지 가게를 지키다 보니

끼니를 제대로 해결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고,

그래서 선식을 처음으로 가져갔을 때 식사대용으로 너무 좋다고 기뻐하셨다.

힘들게 챙겨가면 잘 드시니까 나도 덩달아 신이 나서

그런 피드백들을 반영한 간식들을 매주 가져다주는 것이다.


엄마의 빵 인증샷


한 번은 주말이라 늦잠을 자고 있는데, 이미 출근해 있던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생각해서 00 이가 가져다준 빵이랑 과자 먹는 게 엄마는 행복이야'

‘아무리 유명한 데서 사다준 좋은 빵 이런 거 먹어도 이 모닝빵이 최고야’

원래 표현이 많은 분도 아니고 특히나 요즘 가게가 어려워서 많이 속상해하셨는데

그런 이야기를 듣자니 내가 엄마의 행복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어린 시절 내가 본 엄마는 늘 강해 보였다.

집 안에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아빠와 트러블이 있어도 나한테 말을 하지 않았다.

(첫 째인 언니한테는 가끔 이야기하였다고 나중에야 듣게 되었다.)

내 철없던 행동들이 그 모든 것을 알았더라면

엄마가 나에게도 집안 상황을,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고 다독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더라면

조금 더 의젓할 수 있었을까 아쉬운 순간도 있었지만,

엄마의 선택을 잘했다거나 잘못했다고 판단할 자격과 능력이 내게 없는 건 확실하다.


대학교 때 결국 부모님이 이혼을 하였고, 그 이후로 엄마가 내게 의지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세 자식들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서 단 하루의 쉬는 날 없이 일을 하는 엄마를 보며

얼마나 힘들까 안쓰럽고 도와주고 싶으면서도 그 자체로 부담이 된 시간도 있었다.

부담을 느끼는 스스로에게 경멸을 느끼면서도.

'어떻게 도와줄 수 있어?' 엄마한테 물어도 엄마는 어떤 도움도 받으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엄마를 도와줄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렵지 않은 방법으로 엄마에게 행복을, 지치고 무거운 일상에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작더라도 분명한 동력을 줄 수 있는 사람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좋았다 그 말이

엄마가 행복하기만 하다면 방법이 무엇이 되었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그 행복에 내 역할이 조금이라도 있기를 바라는 욕심이 내게는 있었나 보다.

keyword
월요일 연재
이전 07화번아웃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