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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아웃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힘들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by 소심천
수상명: Task집중상

매주 수요일은 환경안전 점검을 하는 날이다.

무슨 이유인지 나만 우리 파트 사람들과 점검장소가 늘 달라서 다른 파트 분들과 점검을 가곤 했다.

그날도 파트 사람들이 다 점검을 가고 혼자 자리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상무님이 내 자리로 찾아왔다.

상무님이 내 자리로 직접 찾아올 일은 거의 없는데..

긴장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흰색 봉투 하나를 건네주셨다.

봉투 안에는 'Task 집중상'이라고 쓰여 있는 부상증이 들어 있었다.

얼마 전에 부서장님이 Task 집중상받은 것 축하한다고 메신저를 보내온 기억이 떠올랐다.

수상 사실을 알리는 그 메신저를 받기 이전에 느닷없이 회사 이름으로 얼마의 금액이 입금되었는데,

최근 의료비 청구를 적잖이 해서 그건가보다 하고 넘기다가 수상금이었구나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우선 돈이고 부상증이고 주시니까 받긴 했는데, 내가 왜? 이게 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Task 집중상이라는 게 '어수선한 상황에서도 Task에 집중을 잘했구나 자, 이 상을 받아라'인 건지

'부서 사람들이 일을 안 해서 Task가 다 너에게 집중되었구나 미안하니 자, 이 상을 받아라'인 건지

네가 무엇을 잘해서 이 상을 주는데, 이 상은 어떤 의미가 있어라는 설명이 없었기에 의문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사실 좋지만도 않았던 것이 최근 과중된 업무로 면담을 통해 업무 분장을 요청하였는데

그래서 나에게는 그 상이 인정보다는 무서운 단념에 대한 강요로 받아들여졌다.

상무님이 상패를 주면서 '흠, 난 잘 모르겠네'라고 한 마디 얹으신 것에 대한 찝찝함도 한몫하였다.

Task집중상 부상증


번아웃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면담을 통해 업무 분장을 신청한 배경에는 최근 '더' 늘어난 업무량으로 인해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입사 초반(만 1년 미만)에는 효율이 떨어지기도 하고

배울 것도 많기 때문에

지금보다 객관적으로 업무량이 적어도 일을 많이 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다른 사업장으로 배치된 동기들에 비해 나에게 배정된 업무가 유독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초반에는 열정이 있고, 못 하는 모습 보이기 싫고, 하다 보니 나름 욕심도 생겼기 때문에

힘들고 외로울지언정 이 일을 하는 게 싫다거나 억울하지는 않았다.


번아웃이라는 종착지로 향하는 버스에 그렇게 올라탄 것이다.

지금 바쁜 시기만 좀 지나면 한숨 돌리겠지라고 생각한 건 착각이었다.

회사는 내가 정해 놓은 쉼터를 그 자리 그대로 두지 않았다.

성격이 급해서 빨리 처리하고, 부족해 보이는 게 싫어서 완성도에 집착하며 달리던 나는

분명 눈앞에 있던 쉼터가 수십, 수백 km 멀리 달아난 걸 눈치채지 못하고 점점 힘이 빠져 갔다.


번아웃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찾아온 이후에도 나는 그게 번아웃인지 한참 뒤에야 깨달았다.

욕심이 많은 나는 거만하게도 내가 느끼는 힘듦을 언제나 조절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느낀 번아웃의 증상은 아래와 같다.

무기력

: 업무를 기한 내에 완성도 있게 수행하려면 어느 정도의 긴장이 필요하다.

무기력은 그 긴장을 뺏어가 업무의 다음 절차를,

더 괜찮게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내지 못하게 막아버린다.

억울함

: 가장 파괴적이라고 느낀 감정이다. 일을 하면서 한 번도 억울하다고 느낀 적은 없었는데,

한 번 억울하다고 느낀 이후로 내 업무, 니 업무를 수도 없이 계산하게 되는 것이다.

'이건 저 사람 업무 같은데, 왜 내가 해야 되지?', '저 사람은 2개 업무를 맡는데 난 왜 3개를 맡고 있지?'

계산을 하는 순간 손해라는 개념이 생기고, 손해라고 느끼는 순간

아무리 간단한 업무라도 동력을 잃어버리고 만다.


힘들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요즘 특히 업무가 많이 몰려서 유독 힘든 거겠지라고 생각하며 부정했는데

신입사원 열정으로 지속 가능한 유효기간은 정해져 있었고

그 마저도 감당 가능한 정도를 넘어 당겨 썼기 때문에 금방 소진되어 버렸다.

적당히, 업무에 구멍 나지 않을 정도만 설렁설렁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한심하게 생각했지만

회사생활을 금방 끝낼게 아니라면 그 사람들이 현명한 자세를 취한 거였고, 내가 미련한 것이었다.


'해 보지도 않고 어떻게 못하겠다고 해', '힘들긴 하겠지만 배우는 게 더 많겠지'라고 세뇌하면서

신입사원이 업무가 너무 많다거나, 기존 업무 외 추가로 주어지는 업무에 대해 못 하겠다고 하는 건

본인 업무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 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하는 나약한 엄살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힘들다면 힘든 건데, 나보다는 회사나 주변에서 하는 얘기를 기준으로 삼았고,

분명 여러 번 표현했을 내 목소리를 무시하며 서서히 지친 나는 하나둘 놓아버리고 있었다.


가장 인정하기 힘들었던 사실은, 분명 나랑 비슷한 연차이면서 나보다 힘들게 일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

나만 이 정도에 무너져내리는 것 같아 스스로 '나약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객관적으로 '힘들어도 되는 기준선'이라는 건 없다.

이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사람이 있는데, 누군가에게 맞는 업무와 양,

그것을 넘어섰을 때 나의 삶을 지키기 위한 방법, 시기 그 모든 것에는 정답이 없는데

나를 제외한 모두에게는 그토록 포용적인 자세를 취하면서 나한테는 일말의 엄살도 허용하지 않았다.

그것이 엄살이 아니라 진실된 외침이었음에도


부서장에게 면담을 요청해서 과중된 업무를 토로하고, 업무 분장을 요구하는 일은

막상 하고 나니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쉬웠다.

속으로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알 필요도 없고)

'쟤는 저것도 못하네. 쟤의 한계는 저기까지인가 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보다는

'그동안 고생하고 있던 것도 알고, 다 떠안지 말고 그렇게 표현하고 도움 요청하는 게 중요하다'

라고 격려해 주는 사람이 많았다.

내 업무량에 대해 표현하지 않기로 '선택'한 거라고 착각했는데,

사실 나는 힘들다고 도움을 요청하기가 어려워서, 그럴 용기가 없어서 못 한 것이 아닌가 싶다.

무능한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 무서워서

그런 시선으로 나를 보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라는 사실도 모르고

스스로에게만 너무도 엄격한 이 잣대는

적어도 인지한 순간부터는 거두는 것이

그동안의 외침을 무시하여 지쳐버린 나에게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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