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쾌한 언행, 방관, 그리고 자책까지
며칠 사이 갑자기 한기 가득해진 바람이
추위에 적응하지 못한 살갗을 뜨개질하듯 파고드는 이른 겨울,
연말이라고 하기에 아직은 한 해를 손에서 놓고 싶지 않은 11월에 부서 송년회를 진행하였다.
스테이크, 파스타, 리소토, 피자, 샐러드, 값비싼 와인까지
좋은 음식, 좋은 술, 좋지도 싫지도 않은 사람들과 약간은 의무적인 행사를 갖고
식당을 나가는 길이었다.
누군가 뒤에서 세게 볼을 꼬집었다.
나와는 다른 부서 하지만 같은 팀 내에서 보직장을 맡고 있는 사람이었다.
불쾌, 통증, 깜짝 놀라 우스꽝스러운 반응으로 인한 수치까지
놀람을 선두로 저마다 앞장을 서기 위해 엎치락뒤치락하는 복잡한 감정들은
결국엔 누구 하나 다른 것들을 완전히 이기지 못한 채 회사로 돌아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정확히 무슨 감정인지 짚어 내지 못한 나는 정색하고 그를 제재하기보다 우선은 회피하기를 택하였다.
내가 어떤 상태인지 파악할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때 단호하게 그만하라고 말을 했어야 할까
부담스러워도, 무서워도, 용기 내서 바로 전달하는 게 옳았을까.
결국엔 타의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더한 일이 버스 안에서 발생하고 말았다.
항상 그 사람이었다.
불필요한 접촉을 하려는 듯한 몸짓, 논란이 될 만한 언행들
사무실에서든 어디에서든 마주칠 때마다 '까불래?'라며 볼을 꼬집으려는 듯한 제스처
늘 그랬던 것처럼 버스에서도 내 뒷자리에 앉아 '까불래?'를 연신 외쳐댔다.
귀찮고 피곤해서 대꾸를 하지 않고 있다가 옆자리에 탄 선배가
'그냥 까불래요 라고해~'라고 말했고, 별생각 없이 '까불래요' 라고 했다.
별생각 없이
‘자 대꾸했으니까 그만 조용히 해’라는 마음으로
그때 뒤에서 커다란 손이 정수리를 꽉 움켜쥐고 머리채를 잡아끌었다.
아프고 놀라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고
나의 불쾌감을 정색하고 단호하게 전달하지 못하였다.
연속으로 3번 정도 머리채를 잡히고, 옆에 앉은 언니와 그 사람의 옆에 앉은 차상위 리더가 분위기가 이상해 지지 않을 정도로만 다그치면서 그 사람을 말렸다.
머리채를 잡히고 놀란 마음이 진정되면서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분이 점점 나빠지면서 누구와도 소통하지 않겠다는 나름의 태도로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않고 가고 있었으나,
눈치도 없고, 선도 없는 그 사람은 이번엔
부서 사람들이 다 타고 있는 버스에 일어나서
내가 남자친구와 연락을 한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정말 질려버린 눈으로 그 사람을 쳐다보고 다시 앞을 봤고, 주변에서 다시 만류했다.
딱 분위기가 이상해 지지 않을 정도로만
표정관리가 되지 않아 그 이후로는 창에 기대서 잠에 든 척을 하였다.
하지만 기사님이 행선지에 없던 곳까지 전부 들리면서 부서원들을 내려 줬고,
30분이면 갈 거리를 1시간이 걸려서 도착한 덕에 진짜 잠에 들 수 있었다.
기분이 나아지진 않았지만 아까만큼 요동치지는 않을 정도로 삼켜졌다.
방에 들어와서 내가 오늘 무엇을 느꼈는지 알아내기 위해
다시 그 감정이 시작한 곳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이미 한계를 넘어 범람한 감정의 호수 속에서
그 경로와 깊이를 알아낼 턱이 없었다.
분명한 건 그 사람의 행동으로 인해 내가 불쾌함을 느꼈다는 것이다.
다시는 그런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조치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다만 그리 이성적이지는 않았다.
억울함, 현타, 속상함, 분노, 원망이 아직도 한데 엉켜 마음 이곳저곳에 들러붙어 있었다.
기어코 상처를 낸 것이다.
그의 행동이
나의 회피가
그 사람 얼굴을 보기가 불편해 나의 부서장을 통해 의사를 전달할 계획이었다.
그날 있었던 일과 그간 불쾌함을 느꼈지만 참은 행동들,
더는 하지 말아주었으면 하는 언행들과 앞으로는 업무 외적으로 소통하고 싶지 않다는 것까지
사건이 발생한 다음날 오전, 업무를 하면서 부서장한테 어떻게 말을 할까 고민하고 있던 차에
그 사람이 내 자리로 와서 머리채 잡은 것 미안하다며 사과를 하였다.
당시 그 일을 목격한 어느 누군가가 내가 정말 신고할까 두려워 언질을 한 것인지
본인이 정말 진심으로 사과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온 것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나는 사과를 받을 준비도 안 되어 있는데, 사건에 대해 모르는 사람도 있는 사무실 한 복판에서
내 의사도 묻지 않고 냅다 던져 버린 사과에 마음이 풀리기보다는 한 번 더 맞은 기분이었다.
사과에 대한 대답은 하지 않고 마침 다른 분들이 그 자리에 왔기에 화제가 자연스럽게 전환되어 다른 이야기를 하였다.
1:1로 대화를 하기가 불편해서 부서장을 통해 전달하려고 한 거였는데,
직접 사과를 한 이상은 내 의사를 직접 전달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였다.
기분이 많이 상한 상황에서 그래도 표면적으로는 잘못을 뉘우치고 사과를 했기에
기분이 상한 행동에 대해서만 짚어 주고 앞으로 그만해 달라고 하는 게 좋을까 고민하던 차
퇴근하기 전에 내 자리에 다시 오더니 '사과했으니까 이제 끝난 거다?'라고 말하는 그 사람을 보며
순간 마음이 약해질 뻔한 나에게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기회를 주어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과를 받아주지도 않았는데, 다시 장난식으로 저렇게 말을 하는 꼴이라니
사과를 받기 전보다도 화가 났고, 인사조치까지 고민하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당당하게 그만해 달라는 의사를 표현하고 사과를 요구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어찌 되었든 다른 부서의 리더인 그 사람에게 내가 받은 피해에 대해 정확히 짚어주고
단호하게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인사조치, 내가 직접 의사표현, 부서장 통해서 의사 표현 중에서 내가 취할 방법을 고민하다가
하루이틀 점점 시간이 흘러갔다.
사무실이나 복도에서 마주칠 때마다 놀란 듯 장난식으로 쳐다보는 그 기괴한 포즈와 표정에
형식적으로 인사를 하며 쌩 지나가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는 빈도가 늘어가고
그로 인해 사건이 일어난 날에서 더 멀어지기 전에 전달하는 게 맞겠다고 생각을 하였다.
제일 빠르고 덜 불편한 방법인 메신저로 전달해 버리고 끝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적어도 이런 상황에 내가 어떤 조치를 취하기로 결심을 하든
내 부서장이 상황을 인지할 수 있도록 사전에 공유는 하는 게 도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부서장한테 먼저 면담을 신청하고 자초지종을 설명하였다.
송년회 날 볼 꼬집은 것, 머리채 잡은 것, 사생활을 팀원들 다 있는 버스에서 소리 지른 것을 포함하여
그전에도 '까불래?' 하며 볼 꼬집으려는 행위나 SNS 개인 메시지로 여행 가서 올린 스토리에
'수영복 입은 사진 기대할게'와 같은 성희롱 발언, 회식 끝나고 나와서 팔짱을 끼는 행위
여기에 전부 나열할 수 없는 모든 불쾌한 언행들에 대해 전부 말씀드렸다.
그리고 이 모든 언행들을 앞으로 다신 하지 않을 것과 업무 외적으로 소통하고 싶지 않다는 의사까지
평소에 부서장을 정의롭고 또 부서원을 세심하게 챙겨주는 분이라고 생각은 하였지만,
이런 상황에서 혹시 내가 인사조치까지 고려한다면 나를 설득할 수도 있겠다고,
그런 행위들에 불편해하고 스트레스받는 내가 과민하고 이상한 사람이라고
대놓고는 아니더라도 말이나 행동에서 그런 생각이 묻어날까 봐 걱정했었다.
그로 인해 내가 추가적으로 상처를 입을까 봐
하지만 우려와는 다르게 오히려 본인이 인사조치까지 생각이 들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고 하셨고
이런 일이 있었고, 내가 힘들어한 것에 부서장인 본인의 책임도 있다며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내가 직접 말하기를 원한다면 존중하겠지만 혹시 불편하면 내가 어떤 일들에 불편함을 느꼈는지
그 사람에게 전부 짚어주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한 번 더 발생하면 본인이 인사조치를 강행하겠다는 뜻까지 전달한다고 하셨다.
혼자 생각하고 판단해서 조치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내 편이 아닐까, 이 팀을 지키기 위해 버리는 패가 그 사람이 아니라 내가 되면 어쩌지,
하는 우려와는 다르게 나를 보호해 주려는 부서장님의 태도를 보고 사실을 말씀드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조금 후련해졌다.
다만, 마음에 계속 걸리는 한 마디를 마지막에 건네셨다.
사람들 다 있는 자리에서 정색하고 단호하게 하지 마라고 표현하는 일이 부담스러운 건 이해하지만,
네가 이렇게 힘들기 전에 그 사람한테, 혹은 나한테라도 따로 얘기해 줬으면 좋았을 걸
내가 속상해하는 모습에 마음이 안 좋으실 테니 당연한 말이긴 하다.
하지만 과한 업무량으로 인해 참다 참다 면담을 신청했을 때,
그럴 생각은 없었지만 서러워하며 업무를 조정해 달라고 얘기하는 나에게 부서장은 같은 말을 했었다.
이렇게까지 되기 전에 미리 말을 해줬으면 좋았을 걸
그때도 이번에도 안타까운 마음에 하신 말씀인 건 알지만
나의 판단과 대처 방법에 문제를 제기하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한 방법과 그렇게 하기 위해 노력한 것들이 전부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애초에 기대가 없던 사람이고 그렇게까지 고통스럽거나 괴롭지 않았기에
어색한 사람, 어색한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
그냥 선을 긋고 적당히 피하기를 택했고, 참아준다고 생각했다.
신입사원으로서 잘 보이고 잘 해내고 싶은데
그런 일로 괜히 뒷얘기 나오거나 예민한 애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냥 잘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날 평소보다 선을 많이 넘은 행동을 한 것은 맞지만
그게 기폭제가 되어 터지게 될 줄은 몰랐다.
이런 내 성향을 뜯어고쳐야 하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호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점,
묵묵히 열심히 하면 누군가 알아주길 바라는 점,
괜찮아지겠지, 괜찮을 거야 스스로 다독이며 잘 해소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참고 있다는 점,
쌓이고 쌓여서 결국 터지게 만든다는 점
지독히도 외면하고 싶었던 나의 모습이다.
내가 단호하게 표현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 사람의 그런 언행들이 당연히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명명백백 잘못한 일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나를 괴롭히려는 것이 온전한 목적은 아닌 그 사람에게
적어도 한 번쯤 대놓고는 부담스럽더라도 따로, 부서장을 통해서 전달하였다면?
내가 자초한 일이라고는 생각하면 안 되지만 그렇게까지 생각이 닿으면 마음이 아프다.
나를 힘들고 아프게 한 그 모든 일이 표면적으로는 그 사람이 원인이지만
사실은 내가 그렇게 만들고 있었다는 생각에 나에게 진저리가 난다.
왜 나는 이건 아닌걸 그 상황에 똑바로 직시하고 단호하게 말하지 못했을까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
누군가는 보낼 수도 있는 따가운 눈초리를 받고 싶지 않다.
미움받고 싶지 않다.
미움받을 용기가 부족해서 나는, 나를 괴롭히고 있었나 보다.
나보다 남들을 생각해서 나를 힘들게 했나 보다.
이런 내가 싫지만 미워할 수는 없다.
그런 성향으로 태어난 건 야속한 일이지만 인지한 순간부터는 적어도 노력해야
내가 그만 힘들고, 주변사람도 덜 힘들게 할 수 있다.
남들을 위한다고 생각했던 내 행동, 태도, 대처가
나는 물론 남들까지 힘들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나를 들여다보자.
즉시 그리고 정확히
지금 괜찮은 것 같아도 이대로 계속되면 내가 힘들어질 것 같으면
단호하게 표현하자.
즉시 그리고 정확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