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인 것이 관성인 사람에게 연애란
연애를 시작했다.
입사하고 나서 제대로 하는 첫 연애이고
마지막 연애 이후로도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빈도와 기간, 그 어떤 것을 고려하더라도 그리 화려하지 않은 내 연애사를 돌아보았을 때,
나는 상대에게 의존적인 편이었던 것 같다.
그것이 첫 연애이고, 취준 기간이었기 때문에 더 그랬을지는 몰라도
그래서인지 오랜만에 시작하는 이 연애가 마냥 반갑지만은 않았다.
이미 혼자 있는 시간이 관성이 되어 버린 나에게
책, 글쓰기, 요가, 미술, 신문과 같이
나를 독립적인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한 겹 한 겹 쌓아 올린 그 모든 것들이
서로 지지하고 받쳐 주며 간신히 찾은 내 삶의 무게중심을
내가 좋아하기로 다짐한 사람이 무너뜨리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 사람이 아니라 결국엔 나 스스로 무너뜨리는 모습을 보게 될 것 같아서
그 사실에 나는 겁을 먹었던 것 같다.
혼자일 때의 나는 둘일 때의 나보다 내 시간을 좀 더 자유롭게 쓸 수 있다.
그것은 선택의 영역인 듯 보이지만 나에게는 조금 더 불가항력이다.
혼자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주어졌을 때 나는 더 독립적으로 변한다.
누군가와 함께하고 교감하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고 갈망하면서도
의도적으로 외부와 단절시키고 나 스스로를 혼자 두곤 한다.
하지만 더 자주 함께할 수 있는 누군가가 생기면,
그런 기회가 수시로 제공되는 환경에 놓이면
그 의도적인 노력들은 순식간에 자리를 잃고 만다.
나는 더 쉽게 의지를 잃고 유혹에 넘어가버리고 만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혼자일 수밖에 없는 환경을 조금은 강제적으로 부여해야 한다.
혼자 있는 나를 더 빛나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혼자와 함께, 그 어느 것에도 치우치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해서
가끔은 이토록 모순적인 내가 원망스럽기도 하다.
어느 편에도 뿌리내리지 못하는 이유를 찾아보고자 끊임없는 왜?를 던져보기도 했다
함께하는 것이 즐겁다가도 외롭고, 혼자인 것이 외롭다가도 즐거운 이유.
나에게 연애는,
무수한 시행착오와 시도들로 찾은 내 관성에 서서히 균열을 일으키는 것,
좋다가도 스멀스멀 마음속 한편에 피어나는 불안함을 굴려서 점점 몸집을 불려 나가는 것,
그래서 연애를 바라면서도 두려워하였나 보다.
다시는 혼자 있는 시간에 당황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누군가와 늘 함께이다 혼자가 되면 더 외로운 법이니까
그냥 늘 혼자인 편이 오히려 편하다고 생각해서
연애를 하면 데이트도 해야 하고, 전화도 해야 하고, 사전 조사도 해야 하는 등
실제 물리적으로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 외에 더 많은 에너지가 들어간다.
그래서 상대방과 닿아 있지 않은 시간에도 내 루틴을 이행할 무언가가 부족했다.
그것은 체력일까, 의지일까, 감정일까, 혹은 더 근본적인 무엇일까
연애를 하게 되면서, 예상대로 불규칙해진 루틴에 불안함과 조급함을 느끼게 되었다.
현재의 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미래의 나를 성장시킬 수 있는
간신히 찾은 내 루틴이 이렇게 무너져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 건 아닐지
연애가 가져다주는 무수한 이점 중 '안정감'이라는 것도 있는데
왜 나는 혼자일 때보다 더 불안함을 느끼는 것인지
그 불안함과 조급함에 잠식되어 나는 물론이거니와
내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상상에 나는 더 무서워졌다.
그래서 스스로의 게으름인지 완벽주의인지 모를 것을 인정하고 관용하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연애와 같은 삶의 변경점이 있을 때
내가 만든 루틴은 외부의 상황에 유동적으로 대응해야 장기전으로 갈 수 있다.
불안해하고 조급해하며 내 삶도 연애도, 여기도 저기도 집중하지 못할 바에는
이런 상황을 받아들이고 내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활동들은 거기서 만족하는 것이다.
연애에 집중하고 이 변경점이 다시금 안정되면
내 삶의 루틴을 다시 회복할 수 있도록. 오히려 더 나은 루틴을 찾을 수 있도록.
그렇게 다시 새로운 루틴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손에 쥐고 품에 안기보다
내려놓고 비워야 새로운 것이 들어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