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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기 한 스푼 Jan 07. 2025

억지로라도 꿈을 꾸어야 하는 이유

긍정 예언, 고난에서 살아남는 법

 옛날에 내가 소녀가장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요즘에는 복지제도가 잘 되어 있어서 위기가정이 도움을 요청하면 최소한 굶어 죽지는 않지만 그 시절에는 참으로 깝깝했다.

 지독히도 가난하고 외롭던 열서너 살 소녀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공부를 제법 잘했다.

 병들어 반신불수가 되었지만 그 역시 너무 칼칼한 사람이라 예민한 성정이 남아있는 아버지와 교통사고로 뇌수술을 받아 정신이 오락가락하시는 엄마, 그리고 아직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동생. 이렇게 네 식구를 온전히 간수해야 하는 소녀 가장이었던 나.

 가진 재산이라고는 논농사 서너 마지기가 전부인 집. 씨족사회로 이루어진 시골이지만 가세가 기울자 모든 이들이 우리를 멀리 했다. 척박한 터전에서 자기들 살기도 버거웠을 그들은 우리가 행여나 귀찮게 이것저것 도움을 요청할까 봐 그랬을 것이다. 우리 가족은 철저히 고립되었고 막막했다. 당장 땔감을 위해 어린 동생은 친구와 품앗이를 하며 장작과 나뭇가지를 마련해야 했다. 그 어린 나이에 톱과 낫을 들고 산에서 나무를 해야만 하는 기가 막힌 어린 아이의 처지. 동생은 소똥을 치우고 소여물을 주고 학교에 가야했고, 나는 아침밥을 손수 차려놓고 이것저것 갈무리를 한 다음 학교에 가야만 했다. 정신없이 공부를 마치고 서둘러 돌아오면 할일이 산더미다. 병드신 부모님을 돌보고 하소연을 들어주고 동생을 위로해야 했다. 끼니를 해결하는 일은 참으로 고단하고 위대한 일이란 걸 어린 남매는 그때 터득했다.

 긴 밤, 하늘에는 달도 유난히 밝고 별들은 촘촘하게 빛났건만 내 인생의 돌파구는 보이지 않았다. 

매캐한 솔내음과 온기가 사라질 즈음 나는 억지로 잠을 청하면서 꿈을 꾸었다. 우리 부모님 병환이 말끔히 낫는 꿈. 어느 날 백마 탄 부잣집 숨겨진 은인이 내 사정을 알고 도움을 주는 꿈, 내가 공부를 엄청나게 잘해서, 또는 시험운이 엄청 좋아서 신문에 날만큼 유명해지면 어느 맘씨 좋은 독지가가 내 학비를 대어주겠지? 드디어 우리가 이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도회지에서 멋지게 성공해서 부모님을 모시고 다시 고향으로 금의환향하면 얼마나 근사할까? 정말로 도저히 이루어질 수도 없는 일이겠지만 꿈을 꾸는 일은 나만의 비밀 영역이었다.

 꿈은 그저 꿈이었고 아침이면 다시 현실로 되돌아오는 일들이 반복되었지만 밤마다 나는 또다시 말도 안 되는 꿈을 매일 꾸었다. 꿈을 꾸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었고 사는 게 너무 버거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꿈을 꿀수록 그 꿈이 점점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당장 시험 점수에 목표가 생겼고, 좋은 직업을 얻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 어린 열네 살 소녀가 어떻게 알았을까? 긍정 예언은 알 수 없는 에너지를 갖고 우리의 삶을 성공으로 이끌며 좌절하지 않게 도와준다는 것을.

 나는 지금도 열네 살 어린 소녀였던 나에게서 삶의 지혜를 배운다.

 '꿈은 꾸라고 있는 거야.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땐 꿈을 꾸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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