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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교사 일기 26화

수학여행 마지막 : 교사일기

고마운 것 투성이

by 째비의 교사일기

수학여행 3일 차, 드디어 마지막 날입니다.




오늘도 어제와 마찬가지로 조식은 걸렀습니다. 어제 선생님과 2시까지 신나게 얘기하다 보니 잠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오래간만에 또래 선생님과 얘기를 하니 너무 신나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친한 친구와 여행 가서 감기는 눈을 억지로 떠가며, 언제 끝날지 모를 대화를 이어가는 그런 기분이었습니다.


나이는 저보다 많으시지만 연차가 같아서 서로의 경험이나 생각이 비슷했습니다. 특히 교사라는 직업의 어려움에 관해 얘기할 때 공감이 많이 되었습니다. 선생님도 저와 마찬가지로 성격이 유하고 화가 없어서 학생 지도에 어려움을 갖고 계셨습니다.


화를 내 본 사람이 어떻게 화를 내야 하는지 알고, 화가 나 본 사람이 언제 화가 나는지 잘 알 텐데 저희는 화를 내지도, 화가 난적도 거의 없기에 막막함을 갖고 있었습니다.


제가 초임 때 이 문제로 곤욕을 치렀습니다. 아이들이 선을 넘어도 전 화가 나지 않았기에 방관했고, 반 전체 분위기를 망쳤습니다. 이 경험을 토대로 달라져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화가 나는지를 기준으로 삼는 게 아니라, 다른 선생님들과 아이들에게 피해를 가는가로 기준을 잡았습니다.


다음 년도부터는 없던 화도 내보고, 질서 유지를 위한 규칙도 엄격하게 적용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엄격한 규칙과 진중한 모습은 학생들을 괴롭히기보다는 안정시켰고, 억압하기보다는 자유롭게 만들었습니다.


화를 내는 게 아이들에게도 저에게도 필요했지만 문제가 생겼습니다. 마음에도 없던 화를 내고, 아이들에게 쓴소리 하는 연기가 제 일상에 영향을 준다는 점입니다. 화를 내면 하루 종일 기분이 찝찝하고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화를 낸 그 순간이 쉬는 시간에도, 집에 가서도, 약속을 나가서도 잊히질 않았습니다.


또래 선생님도 화가 안나도 화를 내는 연기가 너무 힘들다고 하셨습니다. 지도를 안 하면 다른 선생님들에게 민폐니 어쩔 수 없이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본인조차 완벽하지 않은데 누굴 지도한다는 게 맞는 일인지 의문이 들었다고 하셨습니다.


저도 선생님과 마찬가지로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완벽해질 수도 없고요. 그래서 제가 학생을 올바른 길로 인도한다는 게 가능한 건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부족한 저로서 초점을 맞춘 부분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완벽하게 옳지 않은 일을 고치고 지적하는 일입니다. 다른 사람을 해치는 것, 욕설을 쓰는 것, 지각을 하는 것같이 사회의 일원이 되는데 적절하지 않은 일들은 고쳐져야만 합니다.


두 번째로 완벽해지지 않기로 했습니다. 교사로서 부끄러워지지 않기로만 기준을 낮췄습니다. 법을 준수하고, 욕설을 사용하지 않고, 아이들한테 모범이 될 정도로만 살아가려 합니다.


끝없는 이야기 이후 곯아떨어지고 마지막 일정을 마무리하려 출발했습니다. 서울에서 출발하여 학교로 돌아오는 길에 일정을 끼워 넣는 식으로 계획되어 있습니다.


첫 일정은 서대문형무소입니다.

일제시대 교도소로 쓰였던 곳이며 독립투사들의 고통을 잠시나마 느껴볼 수 있는 공간입니다. 재작년부터 총 3번을 방문했는데도, 가슴속 뭉클함은 여전합니다.


독립투사들의 고통은


언제 끝날지 모를 장마 속에서 밝아질 날을 기다리며 맨몸으로 비 맞는 기분까요?


더운 여름날 끝이 보이지 않는 승선을 향해 맨발로 아스팔트 길을 걸어가는 기분일까요?


대한민국에 드리운 일제라는 먹구름이 언제 걷힐지도 모르는데, 어떤 햇살을 보고 손톱 밑에 들어오는 날카로운 바늘을,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골방을, 코와 입으로 가득 들어오는 고통스러운 물고문을 참아낼 수 있었을까요?


다시 한번 대한민국이 있게 희생해 주셨음에 감사합니다.


구경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투사분들의 눈물인지 모를 비가 쏟아져 내렸습니다.


우산을 준비하지 못한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뒤엉켜 버스로 이동하였습니다. 인원체크를 빨리 마무리하고 다음 일정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다음 일정은 대전 국립중앙과학관입니다.

선생님들도 아이들도 지칠 대로 지쳐버렸습니다. 아이들은 비둘기처럼 행동했습니다. 앉아서 폰만 손으로 까딱까딱하고, 일어날 생각도 없습니다. 저 앞에 커다란 과학관이 있어도 눈앞에 있는 폰만 멀뚱히 보고 있습니다. 선생님들도 도저히 무엇인가를 할 힘이 없어서, 제발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리며 커피를 수혈했습니다. 비가 잠깐 그쳤었는데, 다시 내릴 조짐이 보여서 서둘러 다시 버스로 타고 학교로 돌아갔습니다.


아이들도 많이 피곤했는지 첫날의 설레는 목소리와 힘들은 어디 가고, 코 고는 소리만 들려옵니다. 저도 지쳐서 버스 안에서 1시간 넘게 잠들어 버렸습니다. 도착 한 시간 전에 깨서 창밖을 보며 생각정리들을 했습니다.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는데 참 많은 사람의 손길이 필요하구나 느꼈습니다. 아이들이 제 때 올 수 있게 도와주신 부모님들, 안전하게 운전해 주신 고마운 기사님들, 맛있는 식사를 준비해 주신 조리사분들, 친절하게 맞이해주고 깔끔한 숙소를 제공해 주신 직원분들 및 선생님들이 편안하게 잘 수 있게 도와주신 안전요원분들.. 감사했습니다!



재작년, 작년과 크게 다른 경험을 한 것 같진 않은데 많은 걸 느끼고, 배운 수학여행이었습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해서 두렵기도 합니다. 제발 아이들이 더 친해져서 행패를 부리지 않길 바라며.. 수학여행 시리즈를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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