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보자 내가 같이 뛰어줄게
오늘은 학생과 러닝을 뛰기로 했습니다. 그냥 러닝은 아니고 살리기 위한 러닝입니다.
오늘 뛰기로 한 학생은 초등학교 6학년부터 우울증을 앓아왔습니다. 부모님의 잦은 다툼과 이혼, 오랜 시간 어머니와의 불화는 어린 학생이 감당하기에 너무 큰 아픔이었나 봅니다.
학기 초까지만 해도 공부를 잘하고, 조용한 아이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다 학교를 한 번씩 빠지더니 일주일에 3번 이상 빠지는 날도 잦아졌습니다. 처음에는 왜 이렇게 행동하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갔습니다. 학교를 오라 해도 잘 오지도 않고, 아침에 전화를 하면 전원이 꺼졌다는 기계음만 돌아왔습니다.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어머님께 전화를 걸었습니다. 어머님은 아이를 포기했다고 하셨습니다. 학교를 가라고 소리치고 싸워도 더 큰 방황과 증오로 돌아왔고, 본인의 몸을 간수하기도 힘드니 눈에서 사라졌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하셨습니다.
학생과 어머님의 텐션은 끊어지기 직전의 고무줄처럼 팽팽해져 있었고, 전 그 시기에 담임을 맡게 된 것입니다.
극도로 심해진 우울은 아이를 집어삼켰고, 제가 상담해 본 어떤 아이보다 자기혐오가 심각했습니다. 외부의 관심과 조언은 아이의 방문 앞에 하나둘씩 쌓이는 부담이 되었고, 방 안에 갇힌 아이는 부담과 홀로 싸우고 있었습니다.
학교에 오지 않는 날이 반복되다 아이가 처음으로 상담요청을 했습니다. 아이가 먼저 상담요청을 한 적이 없기에 긴장되면서도, 나에게 마음을 열었구나 싶어 기뻤습니다.
아이의 상태는 예상보다 더 심각했습니다. 방밖으로 나오는 것조차 용기가 필요하고, 삶에 의지조차 사라진 상태였습니다. 결국 항우울제와 진통제와 같은 약이란 약은 손에 쥐어지는 대로 쥐고, 다신 눈이 떠지질 않길 바라며 약을 삼켰다고 합니다.
천만 다행히 6시간 뒤에 눈이 떠졌고, 살라는 운명인가 싶어서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상담을 신청했다고 했습니다. 얘기를 들으니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습니다. 왜 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어린 나이에 저보다 더 큰 아픔을 겪어서였을까요, 아니면 사는 게 죽는 것보다 고통스러운 감정을 알기에 그랬을까요. 아무런 대화 없이 서로 울었습니다. 그리고는 내 아픈 마음을 녹여냈던 말을 들려줬습니다.
많이 힘들었지? 근데 그 죽을 것 같이 힘들었던 상황이 평생 가진 않아. 나도 죽고 싶었던 상황이 있었어. 시간 지나고 보니 정말 별거 아니더라. 그 상황이 끝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었고, 내 삶은 거기에 멈춰있을 거라 생각했었어. 근데 지나가더라. 00아 제발 선생님말 한 번만 믿어주라. 시간 지나면 너에게 행복한 날만 가득한 그런 순간이 올 거야. 선생님이 약속할게. 제발 죽지 마.. 제발
아이는 흐느껴 울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감정을 추스리기 힘들어해서 조퇴를 시켜주고, 내일부터는 학교를 꼭 나와라고 당부했습니다. 다음날부터는 학교를 잘 나올 거라 생각했지만, 학생은 일주일에 3번 이상 무단으로 결석하고 얼굴만 비추고 조퇴하기를 반복했습니다.
결국, 특단의 조치를 취했습니다.
뛰자! 나와 9시에 너희 집 앞으로 갈게.
안 나오면 어쩌지라는 우려와 달리, 학생은 흔쾌히 나오겠다 했습니다.
비가 와서 뛸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9시에 그쳤습니다. 학생과 함께 몸을 간단하게 풀고, 오늘의 기분은 어땠는지, 저녁은 무엇을 먹었는지 질문을 건네며 가볍게 출발하였습니다. 우리의 사이는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땀이 온몸을 적셔갈수록 가까워졌습니다.
학생이 기타를 좋아하고, 친구가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고, 주변 사람들이 응원해 줘서 고마웠다는 속 얘기들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얘기를 주고받다 20분가량 뛰었을까요? 시작할 때 당당하던 표정과 말은 어디 가고, 땅만 바라본 채 의식 없이 움직이는 두 다리를 지켜보자니 웃음이 났습니다.
선생님 심장이 터질 거 같아요. 여기까지만 뛰면 안 되나요?
포기하지 마. 죽을 만큼 힘들어도 지나 보면 아무것도 아니니까. 그리고 네가 뛸 수 있다고 생각한 만큼만 뛸 수 있어. 벌써 한계를 짓지 마렴.
학생이 생각한 한계에서 5분을 더 뛰었습니다. 그리곤 저한테 다음번에는 지금보다 더 길게 뛸 자신 있다고 말했습니다. 흐뭇하게 바라보고 편의점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목이 많이 말랐는지 최소 하프마라톤은 뛴 것처럼 파워에이드를 벌컥벌컥 마시곤 말했습니다.
이 맛에 러닝 뛰지!
정말 누가 보면 대회라도 나간 줄 알겠습니다. 목걸이라도 준비할걸 그랬네요. 얼굴에 뿌듯함이 가득한 학생을 집까지 모셔다 드리며, 내일은 꼭 학교 나와라고 당부했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삶에 흥미가 붙었길 바라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향했습니다.
웃으며 내일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