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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교사 일기 29화

미안해 널 원망해서 : 교사일기

그릇이 작은 나

by 째비의 교사일기

우울증이 심한 아이와 러닝을 뛴 지는 3주 정도 되었습니다. 주에 1회는 꼭 뛰고 많으면 2회 정도를 뛰었습니다. 러닝 뛸 때만큼은 아이가 밝고, 속에 있는 얘기를 다 해줘서 우울증이 조금씩 개선되는지 알았습니다. 그러길 빌었습니다.


저의 바람과는 반대로 아이를 학교에서 볼 수는 없었습니다. 8시 50분쯤 머리가 아파서 오늘은 쉴게요, 오늘 학교 못 나가요 식의 짧은 카톡과 함께 아이는 집의 더 깊숙한 공간으로 사라져 버립니다.


처음에는 이해하려 노력했고, 걱정도 했습니다. 아침마다 눈을 뜨는 것도 괴로울 것이고, 학교에 나갈 힘조차 없겠구나 식으로 이해했습니다. 날이 갈수록 아무런 연락도 없이 학교를 안 오고, 전화도 받질 않았습니다. 를 받지 않는 것으로 모자라 전원까지 꺼버리는 날도 잦아졌습니다.


정말 화가 났습니다. 제가 한 거라곤 시간 될 때마다 상담하고, 학교를 계속 안 나오자 러닝 뛰며 스트레스 풀어주고, 서로 울며 속 얘기를 터놓은 것 밖에 없는데 왜 나를 피하고 무시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목, 금에 남겼던 카톡은 다음 주가 되도록 읽지도 않자 그간 노력이 다 무너지는 기분이었습니다.


내가 학생을 이렇게 만든 건가 하는 죄책감도 들었습니다. 우울증이 심한 날은 학교 오기 힘들면 안 와도 좋으니 카톡만이라도 남겨달라고 한 게 문제였을까요? 어머니와 싸운 뒤에 학교 오면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난다고 하는 아이를 조퇴시켜 준 제 잘못이었을까요? 어떻게든 붙잡고 버티라고 했어야 했을까요? 도저히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이었을지 모르겠습니다.


학교가 학생을 힘들게 했다면 저도 오라고 강요할 생각이 없습니다. 반 애들 중 싫어하거나 괴롭히는 아이가 있다면 혼내 줄 수도 있고, 혼자라 외롭다면 친구를 붙여줄 수도 있습니다. 아이가 학교에 올 수만 있다면 어떤 환경이든 만들어 줄 자신이 있습니다.


반 아이들도 아이를 너무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아이도 학교 생활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잠시나마 수업에 집중하고, 친구들과 놀고, 피시방에 갔던 그 1학년 때로 돌아가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방 안에 갇힌 채 스스로를 죽이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을 욕하고, 자신에게 사과하지 않는 엄마를 증오하며 집 안에서 폐인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미웠습니다. 더 나아지고 싶다, 학교에 꼭 가겠다 말만 하고 나오지 않는 아이가 너무 미웠습니다. 집 안에서의 생활이 스스로를 학대하고, 더 힘들게 만든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오지 않는 아이가 미웠습니다. 조례할 때 아이 자리가 항상 비워져 있는 것, 결석자 칸에 아이 이름을 적는 것, 우리 반 수업 시간마다 아이가 없는 모습을 보는 것, 이 모든 일들이 익숙해지고 당연해지는 제가 싫었습니다.


아이를 더 미워하기 전에 아이를 더 이해해 보고자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친구는 우울증을 오래 앓아 왔습니다. 그래서 간접적으로나마 아이의 상황을 이할 수 있을 듯했습니다.


째비: 우리 반에 우울증이 심한 아이가 있거든?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좋아질 기미가 안 보여서 너무 힘들어.


친구: 네가 노력해 주는 건 고맙고 대단한 일인데, 네가 짧은 시간 안에 아이를 완전히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은 버리는 게 좋을 거야. 나도 우울증일 때 주변에서 많이들 응원해 줬고, 약도 5년을 넘게 먹고 상담도 받았었는데 잘 낫질 않았어.


째비: 조금 위안이 된다. 아이를 살리고 싶다는 생각에 정신적으로 너무 괴로웠어. 그러면 아이한테 내가 한 말이 괜찮았는지 얘기해 줄래? 내가 한 말이 아이한테 상처가 되진 않았을까 걱정돼.


친구: 그래 어떤 말 했어?


째비: 00아 우울증이 한 번에 극복되는 마법의 약은 없단다. 리고 한 번에 널 낫게 하는 기적적인 행동도 없단다. 하루에 한 번 처방받은 약들을 먹고, 하루에 한 번 학교에 가서 선생님한테 얼굴을 비추고, 하루에 한 번 10분이라도 운동하는 그런 작은 일에서 기적이 만들어진단다.라고 했어.


친구: 같은 말을 들어도 우울증 겪는 사람마다 달라서 답이 될진 모르겠다. 나도 부모님이나 친구한테 그런 말을 많이 들었는데 나한테는 부담으로 다가왔어. 무엇인가를 하라고 하는 그 말들 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인걸 알고 있고 나도 하고 싶었어. 근데 하고자 하는 의지도, 힘도 하나도 없어서 할 수가 없었어. 그래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뭔갈 하라는 말을 들으니까 내가 너무 작아지는 느낌이 들더라.


밖에 있는 아이들은 계속 성장해서 나와의 격차가 계속 벌어지는데 그걸 지쳐보고만 있는 내가 너무 한심하고 싫더라고. 그래서 방 밖으로 나가기도 싫었고, 나갈 수도 없었어. 어쩌면 현실을 마주하기 싫었었나 봐.


친구의 말을 듣고 머리를 세게 얻어맞는 기분이었습니다. 내가 아이한테 또 다른 압박감, 부담감을 준건 아닌지 미안했습니다. 그리고 아이의 힘듦을 완전히 알아주지 못하고 나의 기준에서 힘듦을 판단하고 행동하게 한 것 같아 후회되었습니다.


오늘은 아이한테 진심을 담아 사과를 하고, 고마움을 표현해야겠습니다. 나의 말이 널 힘들게 했어도 아무 티 안 내고 "챙겨줘서 고마워요"라고 줘서 고마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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