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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교사 일기 28화

제1회 탁구공 뽑기

두구두구

by 째비의 교사일기

오늘은 야심 차게 기획한 제1회 탁구공 뽑기의 날입니다. 아이들이 5월 동안 이 날만을 위해 달려왔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탁구공 뽑기를 모르시는 독자님들을 위해 정리하자면 이런 이벤트입니다.

제1회 탁구공 뽑기

30개의 공 중에 6개의 당첨 공을 뽑으면
싸이버거 세트 증정하는 학급 이벤트

매월 첫날에 10개의 칸이 있는 도장판 증정
도장 1개 = 뽑기 1회

#도장 획득 방법
한 달간 지각X = 도장 2개
한 달간 청소 잘하기 = 도장 2개
수업 때 발표 잘하면 = 도장 1개

5월 한 달간 시행한 결과는 매우 만족스럽습니다. 하루에 3-4명이던 지각자들은 일주일에 4명 정도로 줄었고, 청소도 매우 열심히 했습니다. 여러 면에서 아이들이 좋아졌지만 그중 가장 좋아진 것은 수업태도였습니다.


아이들이 착하고 순하지만 공부에는 크게 관심이 없어서 수업시간에 많이들 졸거나 잤었습니다. 도장판을 도입하고부터는 변화의 바람이 불었습니다. 책상에 거머리처럼 붙어 있던 아이들이 의자에 등을 붙이기 시작했고, 손이 책상에 붙어 있던 아이들은 천장을 향해 손을 들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도장을 받기 위해 아이들은 온갖 감각들을 총동원했습니다.


두 눈은 선생님과 피피티를 향하고, 두 귀는 선생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손은 남들보다 빠르게 발표하려고 할리갈리 종 때리기 직전처럼 긴장 모습입니다.


이런 모습들을 제 수업 시간에만 볼 수 있었던 건 아닙니다. 수업 태도를 확인하기 위해 한 번씩 반을 지나가면, 아이들의 눈빛은 살아있고, 열정적으로 발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도장판의 효과에 놀라신 선생님들은 학년실에 들르면서 한 말씀씩 하고 가셨습니다.


도장판 이후로 애들 태도가 너무 좋아졌어요!


선생님 반 수업 들어가면 힐링하고 나와요.


선생님들께 들은 칭찬은 차곡차곡 모아 종례 때 전달했습니다. 아이들은 수줍어하면서 말합니다.


선생님 이게 우립니다!


이제 칭찬의 결실을 맺는 날입니다. 자율시간에 뽑기 상자를 들고 반으로 향했습니다. 앞문이 열리자 열심히 채운 도장판을 들고 환호하는 아이들이 보입니다.

KakaoTalk_20250604_112623155.jpg

번호순으로 한 명씩 앞으로 불러냈습니다. 킨집 쿠폰 10개를 모아 공짜 치킨을 받으러 갈 때처럼 흥분한 모습으로 도장판을 들고 나왔습니다.


당첨번호는 2, 4, 9, 14, 20, 29입니다. 30개의 공이 있으니 확률은 6분의 1입니다.

1번 주자는 발표 도장은 없고, 지각 1회, 다행히 청소는 열심히 했어서 총 2번의 뽑기 기회가 있습니다.


이게 웬걸? 한 번만에 9를 뽑았습니다.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주자는 4번 뽑을 수 있는데 2번 만에 당첨 공을 뽑았습니다. 다음은 4번, 다음은 3번 만에 뽑는 비상상황이 발생했습니다. 못 뽑는 애들이 더 많을 거라 생각했는데 망했습니다.


결과는 29명 중 21명이 당첨입니다.

KakaoTalk_20250604_112948500.png 21명이 당첨된 대참사 현장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아이들과 룰을 어떻게 바꿀지 얘기했습니다. 당첨을 어렵게 바꾸는 방향으로 결정했습니다. 기존의 지각 안 하기, 청소 잘하기로 받는 도장의 개수를 한 개로 줄였고, 당첨 공 개수는 6개에서 4개로 줄였습니다.


과연 제2회 탁구공 뽑기에서는 재정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6월에는 또 얼마나 태도가 좋아질까요? 아주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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