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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교사 일기 25화

수학여행 3 : 교사일기

스승의 날

by 째비의 교사일기

수학여행 2일 차 아침이 밝았습니다. 죽겠습니다.


전날에 에버랜드에서 친한 선생님과 놀이기구를 몇 개 탔더니 어깨부터 다리까지 쑤셨고, 숙소에서 일어난 일 때문에 학생들 관리한다고 2시 넘어 잤기 때문입니다. 조식 먹겠다고 맞춘 알람에 화풀이를 한 뒤 소중한 쪽잠을 마저 잡니다. 자다가 옆 선생님의 폭죽 터지는듯한 알람소리에 깨서 서둘러 준비를 마칩니다.


로비에 내려오니 선생님들은 3년씩은 늙어 보이셨고, 편해진 복장은 덤입니다. 학생들도 밤새 놀았는지 1교시 수업 듣는 표정으로 버스에 향했습니다. 인원 점검 후 안전벨트를 맸는지 확인하고 뮤지컬 '점프'를 보러 출발!


재작년과 작년에는 명동에서 난타를 봤었습니다. 두 공연 모두 선생님들을 공연에 참여시켜 매우 곤란했던 기억이 납니다. 불려 가신 두 선생님은 열심히 도마 위에 놓인 채소들을 난타하셨습니다. 선생님들의 뻔뻔함과 이미지 반전이 우리의 웃음이 되므로 더 망가지고, 열심히 해야만 합니다.

그들의 땀과 눈물, 그리고 같이 흩날리는 채소들..

구경하시는 선생님들은 본인이 아니라는 안도감, 감사함을 느끼며 돌아오시는 선생님들에게 위로를 건넵니다.


올해는 제가 될 수 있기에 공연 중간중간 너무 겁이 났습니다. 공연도 도구를 활용하는 게 아니라 몸으로 무술을 하는 거라 부담감이 배가 되었습니다. 결국 시간이 왔습니다. 배우분들이 선생님들이 계신 뒷자리로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제일 좋아하는 선생님이 누구인가요~!?


군데군데 제 이름이 들렸습니다. 제발.. 제발 절 데려가지 말라며 고개를 애써 배우분들 반대로 돌렸습니다. 그 옆에 선생님들도 쪼르르 반대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며 눈을 질끈 감고 계셨습니다. 다행히도 바로 옆에 앉아 계신 선생님 한분과 교감선생님이 간택당하셨습니다. 나머지 선생님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시며 편안한 마음으로 선생님들이 망가지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선생님들은 뻔뻔하고도 우스꽝스럽게 저희를 위한 광대가 되어주셨습니다. 재작년과 작년의 경험을 살려 휴지를 미리 준비해 두었기에, 쇼를 마치고 오신 두 선생님께 휴지를 건네드리는 것으로 공연은 마무리되었습니다.


뮤지컬이 끝나고 식사를 하러 갔습니다. 뷔페식이었는데,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떡볶이, 탕수육, 제육, 소시지 볶음까지 채소라고는 콩나물 단 하나인 '초딩 식단'은 아이들을 웃음 짓게 하였습니다. 빠르게 식사를 마치고 다음 일정인 잡월드로 향했습니다.


경기에 있는 한국잡월드는 듣기만 해 본 곳이지 가본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실제로 가보니 어마무시한 규모에 입이 떡 벌어졌습니다. 체험할 수 있는 시설도 43개로 다양하면서도 실제 현장처럼 잘 구현되어 있었습니다. (학교 체험부스를 봤는데 소름 돋았던 거 보니까 확실합니다.) 그리고 전문 강사님이 상세하면서도 몰입되게 설명해 주셔서 수업 때는 흐리멍덩하던 아이들이 귀를 쫑긋 세우며 열심히 체험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2-3시간 정도 아이들이 체험하는 동안 선생님들께 잠시의 자유시간이 주어졌습니다. 재빨리 커피를 수혈하면서 앞으로 있을 일정들에 관해 논의했습니다. 조금 더 쉬고 싶은 찰나 왜 이렇게 빨리 시간이 지나가는지.. 체험이 끝난 아이들을 반별로 세우고 2층에 있는 푸드코트로 저녁식사를 하러 갔습니다.


아이들 먼저 다 먹이고 선생님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갑자기 우리 반 애들의 웅성거림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무슨 일인가 해서 보니까 스승의 은혜를 부르며 케이크를 들고 제 앞으로 오고 있었습니다. 1반 아이들이 담임선생님께 작은 조각 케이크를 준비한 걸 보고 부럽다.. 에서 멈췄지 기대는 전혀 안 했는데, 이렇게 다 같이 준비해 주어서 너무 놀랐고 감동받았습니다. 여기까지는 너무 분위기도 훈훈하고 좋았으나 사건은 여기서부터 시작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제게 케이크 상자 위에 위태롭게 올려진 케이크를 건넸습니다. 건네받고 스승의 은혜에 둘러싸여 촛불을 불어 껐습니다. 감사한 마음에 연신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말하며 고개를 숙이는 순간 위태롭게 중심을 잡던 케이크가 바닥에 철퍼덕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케이크 위에 있던 장식용 과일들은 땅바닥에 널브러졌고, 생크림은 식당 바닥부터 의자까지 튀게 되었습니다. 허기진 상태에서 막 끓여 온 라면을 가장자리에 잘못 놓아 다 쏟았을 때처럼 너무 속상하고 세상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미안한 마음에 얼굴과 귀는 새빨갛게 달아올랐고, 빨리 수습하고자 양손으로 케이크를 퍼올렸습니다.


KakaoTalk_20250524_202227604.jpg 손으로 급하게 퍼올린 케이크


아이들도 그 모습을 보고선, 저의 진심을 알았는지 웃으며 말했습니다.


선생님 생크림 말고 초코케익 좋아한다 했잖아! 누가 생크림사자 그랬어! 바로 던져버리시잖아 하하하!


주변 선생님들도 다 빵 터지시고, 저는 덕분에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케이크는 선생님들과 나눠먹기도 그렇고, 맛도 안 보고 버리자니 너무 아까워서 숙소에서 땅에 닿지 않은 부분만 퍼먹었습니다. 아이들의 사랑이 담겨서 그런지 세상에서 제일 맛있었습니다!

KakaoTalk_20250524_202227604_01.jpg 돌이 3개 씹힌 케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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