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한 자아 성장기 (2015~2018)
조직장은 사수와 나를 항상 세트로 묶어 업무를 시켰다.
K과장에게는 묵묵히 야근하는 나에게 일을 시키는 것이 여러모로 편했을 것이고, 그는 이 구도를 고착시키는 데 노력했다. 그가 지난번 으름장을 놓았던 인사 고발은 하지 않기로 하고 이 조직에서 어떻게든 적응해 내고 나의 가치를 증명하자라고 마음을 먹었다. 그러려면 나는 그에게 알랑방구를 떠는 것이 생존 확률을 높여주었고, 허리의 각도가 항시 일부라도 굽혀있는 상태로 지냈다.
미처 다 설명하기도 힘든 반복적인 가스라이팅에 나는 이미 K과장의 심리적 노예가 되었고, 그가 시키는 일이면 거역하지 못했다. No라는 대답은 나의 반사신경이 허락하지 않았다. No의 보복 (주로 말도 안 되는 것으로 업무 피드백을 호되게 한다.)을 여러 차례 겪은 나의 중추신경이 뇌를 거치지 않고 Yes를 대답하라고 지시하였다.
어느 금요일 그는 나에게 묻는다.
"내일 뭐 하냐? 여자친구 만나?"
"아 네 약속 있습니다." - 느낌이 싸해 약속이 있는 것처럼 대응한다.
"오 이 시끼. 몇 시에 만나는데?" - 느낌이 맞았다. 내 가용 시간을 잡아내기 위해 조여 오고 있었다.
"아 오후에 만납니다." - 최대한 나의 가용시간을 확보하고자, 확장성이 넓은 오후를 택했다.
"그래? 그럼 나랑 내일 잠깐 좀 보자."
"내일요..? 어떤 것 때문에..?"
"왜. 싫냐? 내가 차를 수리해야 하는데 옮길 것이 조금 무거워서 잠깐만 도와주면 돼."
"아 오전에는 어차피 시간 비는데요 뭐 알겠습니다 몇 시에 뵐까요? - 뭘 옮기는 것인지, 왜 내가 도와줘야 하는 상황인지 당연히 궁금하였으나, 나의 반사신경은 현재 상황에 질문이 적절하지 않다고 조언해 주었다.
"내일 대충 10시쯤 연락할게"
아침이 되어 기상했다. 그가 나의 자취방 앞에 차를 타고 와서 함께 카센터로 출발했다.
이미 나의 몸이 그에 차에 타서 그를 돕는 것이 확실해진 상황이었기에 어제의 궁금했던 질문을 꺼내 본다.
"근데 과장님, 제가 뭔가 몰래 도와야 할 상황인 거예요?ㅎㅎ"
"어, 와이프 출장에 가 있는 동안에 본네트(보닛)를 카본으로 바꿀 거야."
그는 M3를 몰고 다니며 주말 아침마다 드라이빙을 달리는 자동차 애호가였는데, 본인의 차량이 고가였기에 추가 자본이 또 차에 투입되는 것을 아내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의 대답에 왜 "나"여야 하느냐에서는 답변이 없었지만, 정답은 내가 알았다. 내가 가장 만만한 노예이니까. 또한, 그의 성향 특성상 이런 일을 편히 부탁할 수 있는 친구관계는 없을 것이다.
카센터에 도착하여 내리고, K과장과 카센터 사장은 자동차 전문 부품들에 대해 어쩌고 저쩌고 거의 30분을 논의한다. 나는 관심도 없고, 이해되는 것도 없지만 옆에서 뭐라도 듣는 척하며 고개를 끄덕이다. 나도 이런 나의 회사생활 반사신경이 마음에 들지 않는데, 기어코 K 과장에게 주말 아침 상쾌한 아첨을 던진다.
"과장님은 카센터 사장님이랑 거의 전문지식이 동일하시네요. 더 많이 아시는 것 같기도 하고요"
"ㅋㅋ 그러냐? 그 정도는 아닌데, 이 차는 내가 더 잘 알지. 대충 얘기하면 호구 잡혀"
나의 임무는 카본 보닛으로 교체되고 버려질 예전 본네트를 함께 옮기는 것이었다. 확실히 혼자 옮길만한 사이즈가 아니었다. 어느새 아내 분 몰래 이 Task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의 몰입하게 된 나의 노예근성은 그에게 질문한다.
"과장님, 이 본네트 집에 두실 곳 있으세요? 형수님한테 보여서는 안 되는 것 아닙니까?"
"그렇지, 그래서 장모님 네로 간다."
"장모님 네로요? 형수님이 오시는 집이 아니에요?"
"걱정 마라 방법이 다 있지. 내가 다 구워삶았다."
딩동. K과장의 장인장모님 댁에서 초인종을 누른다.
"장모님 ㅎㅎ 저 왔어요. 얘는 회사 후배예요."
"안녕하십니까, 불쑥 들어와 죄송합니다. 짐을 옮기느라 같이 왔습니다!"
어디 창고 같은 공간으로 본네트를 낑낑 옮겨 놓고 사람 좋게 웃으며 인사드린다.
"또 뵙겠습니다!^^"
다시 차로 돌아와 자취방으로 돌아가는 길, 나의 마음속에는 여러 말풍선이 뜬다.
'나는 지금 무얼 하고 있는가.',
'그래 예전에는 주말에 등산도 다 같이 가고 했지. 이 정도면 세상 좋아진 것이지.',
'아. 그래도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
집에 도착하여 차에 내리려는데 마음씨 넓은 K과장이 나에게 말한다.
"아 참참. 너한테 좀 미안한데, 기다려봐"
곧이어 카톡~ 소리가 울리고, 열어보니 카카오톡 선물하기로 CGV 영화권 2장이 나에게 와 있다.
"여자친구랑 재밌게 봐라 ㅎㅎ" - 그는 후배에게 베풀 줄 아는 선배의 표정을 지었다.
"아 이런 것 안 주셔도 되는데, 감사히 잘 보겠습니다."
차에 내려 4층의 자취방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야 쌍욕을 외친다.
이런 ㅅㅂㅅ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