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외로워졌다.
처음 회사를 들어갔을 때, 내 첫 사수가 10년 넘게 한 사람을 사귀고 있다는 말에 경악을 금치 못했었는데
내가 지금 그걸 뛰어넘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이제는 주변 친구들도 다 결혼해서 나 혼자 연애 중이고, 이 사람과 결혼을 해도 상관은 없지만 안 해도 상관이 없어서 딱히 결혼을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사실 오빠가 결혼하자고 말을 했으면 했을 테지만, 오빠는 결혼을 꼭 해야 되는 거야? 주의라서 나도 자연스럽게 따르게 된 것 같다.
몇 달 전 오빠가 해외로 취업을 하게 됐다. 일머리 좋은 오빠가 한국에서 자리를 못 잡고 있는 와중에 이런 기회가 찾아오니 나는 무조건 가라고 했다. 장거리 연애를 한 적이 없어서 내가 힘들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오빠의 성공을 위해 보내줬다.
보내줬을 당시의 우리 사이는, 10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오빠가 너무 좋았고 오빠도 나를 많이 사랑하고 있구나!라고 느꼈다. 떠나기 전 허심탄회하게 그동안 서운했던 것들 울면서 다 토해내고, 장거리 연애에 대한 약속과 규칙을 만들며 다시 한번 우리 사이를 굳건히 다졌다.
결혼을 했더라면 덜 했겠지만, 결혼을 안 해서 한 가지 단점이라면 늘 불안함이 존재한다. 언제든 쉽게 떠날 수 있기 때문이다. 내 마음도 오랫동안 그래왔었다. 연애 7~8년 동안은 갈팡질팡한 마음을 갖고 오빠를 만났었다. 싸우다 헤어졌다 수십 번을 반복하면서 나랑은 진짜 안 맞는다고 생각했고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오빠의 단점보다는 장점만 보게 됐고, 서로가 말 안 해도 어떤 상태인지, 무엇을 제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사이가 됐다. 그야말로 서로한테 최적화된 상태가 된 것이다. 20대엔 새로 만나고 서로를 알아가는 게 너무 재미있고 좋았지만, 30대 중반을 넘긴 지금은 이런 것들이 다 귀찮다. 이것 말고도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오빠한테 올인 같은 걸 해버리게 됐고, 그런 이유 때문인지 나에 대한 오빠의 사랑을 자주 확인받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오빠가 떠나고 3개월까지는 괜찮았다. 그 사이에 나도 오빠가 있는 곳으로 놀러도 다녀오고 장거리 연애라는 게 무색할 정도로 아무렇지 않았다.
그런데 4개월 차 때부터 오빠 일이 엄청 바빠지기 시작했다. 하루평균 12시간 넘는 고강도 업무를 하며 오빠가 점점 지쳐갔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5분 통화했던 것도 이제는 시계 알람 같은 20초 통화로 끝냈고, 출근하기 전 잠깐 통화했던 것도 안 하게 됐고 지금은 출근하고 나서 한참뒤에야 출근했다는 카톡 한통 오는 정도로 오전 연락이 끝난다. 퇴근 후에는 씻고 정리하고 밥 먹는 과정까지 길게 했던 통화도 이제는 집에 도착했다는 짧은 연락과 밥 먹고 난 후에 카톡으로 연락을 주고받다가 자기 전 잠깐 통화로 하루 연락이 끝난다. 우리의 대화가 오늘 하루 있었던 일, 오늘 느꼈던 감정의 교류가 아닌 일정 알림으로 바뀌어버렸다.
그러면서 나는 외로워졌다.
몇 달 전, 이 외로움을 참지 못하고 오빠한테 울면서 하소연했고 내가 불행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오빠가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그럼 그만하자는 뉘앙스의 말도 나왔다. 내가 원하는 건 떠나기 전 우리가 약속한 5가지가 다인데 지금은 거의 지켜지지 못하고 있다. 대단한 약속도 아니다. 사랑한다, 보고 싶다는 애정표현 말로 많이 해주기, 자기 전 무조건 사랑한다고 말해주기, 싸우면 당일 풀기, 서운하고 힘든 거 바로 말해주기, 무슨 일 생기면 무조건 말하기. 이게 전부다. 내가 생각했을 때 장거리 연애에서 가장 중요한 건 떨어져 있어도 내가 너를 항상 생각하고, 사랑하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해 주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전혀 그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아 너무 외로워진 것 같다.
오빠의 변명은 이렇다. 하루 12시간 넘게 일하고 직업상 여러 사람들과 부딪히며 일하기 때문에 혼자만의 시간이 소중해졌다고 한다. 또 회사일이 너무 고되다 보니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다시 입 밖으로 꺼내어 스트레스받고 싶지 않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는 이 힘든 상황에서도 나한테 최선을 다해 연락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오빠를 이해한다. 이해하지만 나도 너무 힘들고 외로운데 이 공허함을 온전히 나 혼자서 안고 가려니 버겁다. 연락 횟수, 시간은 중요하지 않다. 나는 한 번을 하더라도 거기서 오빠가 나에 대한 애정이 드러나면 좋겠는데 자기 전 잘 자라는 인사말 같은 '사랑해요'라는 한마디(정말 무미건조함), 내가 매번 먼저 하는 '사랑해 잘 자요'의 자동응답기 답변처럼 느껴지는 것이 나를 참 비참하게 만드는 것 같다. 먼저 사랑한다고 말해주면 안 되냐!!? 이런... 사랑을 갈구하는 내가 싫고, 불쌍하다. 나만 노력하는 것 같아 지친다.
누구는 힘든 일이 생기면 상대방한테 기대는 사람도 있고, 누구는 오빠처럼 자기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 하겠지만 어깨를 내어주는 사람입장에서는 나한테 기대는 것이 힘이 되어주는 것 같아 행복한 것 같다. 내가 오빠의 입장이 돼보지 않아 이렇게 단정 지어 말할 수 있는 거겠지만, 처음 느끼는 이 외로움을 어떻게 나 스스로 달래야 할지 모르겠다.
바쁜 거 이해하고 연락 자주 못하는 것도 이해하는데 오빠의 최선과 내가 생각하는 최선이 다르다. 나는 완벽한 F고 오빠는 완벽한 T여서 내가 받고 싶은 그 어떤 감정적인 부분을 오빠가 캐치하지 못하는 것 같다.
나는 어떻게 해야 될까.
상대방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내가 그 최선을 느끼지 못한다면 누가 어떻게 뭘 해야 이 상황을 극복해 나갈 수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