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는 누구를 비춰야 하는가
'먹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 질문은 아주 어려서부터 내게 중요한 화두였다.
나는 장남의 장남, 즉 장손으로 태어났다. 그 시절 장손이란 주방 근처에는 얼씬도 해선 안 되는 존재였다. 내가 싱크대 앞에 서기라도 하면 할머니는 불호령을 내리며 어머니를 꾸중하셨고, 온 집안 어른들이 내가 주방에 드나드는 것을 꺼렸다. 호기심에라도 주방에 서보고 싶던 마음마저 싹 가시던 시절이었다.
반면 어머니는 현역에서도 알아주는 주방장이다. 식당과 분식집을 직접 운영하셨고, 전라도 분답게 식재료를 다루는 법을 본능적으로 이해하셨다. 식재료와 도마, 그리고 칼 앞에 선 어머니의 기세는 남달랐다.
그런 어머니의 아들로 산다는 건 미각적으로 큰 축복이었다. 아주 어려서부터 민어, 홍어, 간재미 같은 음식은 내게 그리 유난 떨며 먹는 귀한 음식이 아니었다. (참고로 외가는 전남 광양에서 서대나 박대 같은 생선을 말려 파는 일을 아직도 하고 계신다.)
유복한 집안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먹는 것만큼은 주변 또래들에 비해 아쉬움이 없었다. 남들이 귀하다는 음식을 딱히 귀하다고 생각하며 살아본 적이 없었고, 타고난 대식가라 마흔여덟인 지금도 고기 1kg 정도는 거뜬히 비워낸다.
그러다 코로나가 시작되던 몇 년 전, 내 몸에 무질서가 찾아왔다.
류마티스 관절염과 등 쪽 근막통증 증후군. 몸이 무너지던 그제야 나는 '음식'이라는 것의 진짜 본질, 즉 '생존'을 뼈저리게 이해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죽 정도만 먹어도 몸이 버거워했다. 죽 반 그릇을 소화시키는 데 반나절이 걸린 날도 있었다. 가만히 누워 위장에서 죽이 힘겹게 소화되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며 , 건강과 체력이라는 기저 시스템이 얼마나 절대적인지 깨달았다. 소뼈를 고아 낸 국물을 먹으면 여지없이 탈이 났고, 그렇게 좋아하던 순댓국이나 설렁탕은 무서워서 입에도 댈 수 없었다.
그때부터 생물학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생물학을 파고들다 보니 자연스레 물리학과 연결되었고, 물리학의 양자역학이 전자를 기술하는 학문이라는 것도 그때 알았다. IT와 코딩을 좋아하던 내가, IT의 근간이 양자역학과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몸이 아프고 나서야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요리를 시작했다. 생존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 본질을 알기 위해서.
나이가 찼으니 번듯한 카페의 바리스타로는 일할 수 없어, 더치커피 공장에 설거지 알바로 들어갔다. 설거지를 하면 하루에 한 번, 내가 마실 커피를 직접 내릴 수 있었다. 돈도 벌고, 더치커피 공정도 배우고, 평생 해본 적 없던 설거지도 해보고, 에스프레소 머신도 만져보는 일석사조였다.
피자집 저녁 타임 알바는 또 다른 전쟁터이자 놀이터였다. 도우를 펴고, 스파게티 면을 삶아 알리오 올리오를 박스에 담아낸다. 동시에 브라질산 염지 닭에 밀가루를 묻혀 린나이 튀김기에 밀어 넣는다. 비 오는 날이면 배달 주문이 밀려 터졌다.
스무 살 가까이 차이 나는 어린 친구가 내게 손이 느리다며 핀잔을 줬다. 어쩔 수 있나? 평생 해본 적 없는 일투성이에 실수도 잦으니 느린 것이 당연했다. 그래도 요식업의 최전선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싶어 기꺼이 그 세계에 발을 담갔다.
그렇게 매일 내가 먹을 음식을 직접 해 먹기 시작했다. 중식도도 하나 사고, 좋은 도마와 조리도구를 사서 다뤄보았다. 매일 반복하다 보니 어느 순간 칼질에 자신감이 붙었다. 원래 먹는 걸 좋아하던 터라 실력도 금방 늘었다. 셰프들의 레시피를 연구하고, 그들이 쓰는 도구를 익히며 영양 밸런스를 맞춘 밥상을 꾸렸다.
예컨대 봄동 감자 된장국은 단백질과 비타민이 풍부하고, 마늘의 항산화 성분에 감자의 든든한 탄수화물까지 채워주는 완벽한 생물학적 생존식이다.
그렇게 5년, 날짜로 치면 대략 1,500번 이상의 밥상을 직접 차려냈다. 대체로 1인 밥상이었지만, 가끔은 지인들을 위한 출장 요리도 대접했다.
1,500번의 식탁을 차리며 나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요리 경연 프로그램들은 저마다 특별한 레시피나 화려한 '킥(Kick)'을 강조한다. 하지만 주방의 실상을 파헤쳐보면, 요리의 완성도를 결정짓는 8할은 '재료 손질'이다. 그럼에도 그 누구도 묵묵히 흙을 털어내고, 내장을 분리하고, 뼈를 발라내는 재료 손질의 중요성을 논하지 않는다. 식재료를 다듬는 사람이나, 그들이 쥐고 있는 낡은 도구에 대한 깊이 있는 고찰은 스포트라이트 밖으로 밀려나 있다.
이것은 비단 주방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사회라는 거대한 시스템이 아무 문제 없이 돌아간다는 건, 누군가 새벽이 오기 전 길을 쓸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오·폐수를 정화하며, 모니터 뒤에서 묵묵히 관제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면에 숨어 자신의 본분을 지키는 자들이 없다면 시스템은 단 하루도 버티지 못한다. 허나 우리의 문명은 아직 그 기초적인 노동의 중요성을 헤아리지 못할 만큼 부족하다.
다시 음식 이야기로 돌아오자.
현재 나는 요리사이자 자칭 미식가다. 좋은 음식이란 무엇일까? 태초의 인류로 돌아가 보면 힌트가 있다. 원시 시대의 인류는 수렵과 채집으로 무기질과 단백질을 얻었다. 그들에게 화려한 드레싱이나 특별한 소스가 있었을까? 날것으로 먹거나, 기껏해야 볕에 삭히고 불에 굽는 정도였을 것이다.
현대 요리에서 쓰이는 수많은 소스들의 기원을 추적해 보면, 맛을 내기 위함보다는 식재료의 '보존'을 위한 것이 많았다. 실제로 요리를 해보면 안다. 본연의 맛을 품은 신선한 식재료는, 소스 범벅이 된 요리보다 훨씬 위대하다는 것을.
조리법 또한 복잡해 보이지만 본질은 단순하다. 끓이거나, 굽거나, 볶거나, 삭히거나. 결국 위대한 요리란 이 4가지 방식과 질 좋은 원물의 결합일 뿐이며, 요리사란 단지 그 과정을 조금 더 능숙하게 다루는 사람에 불과하다.
그런데 참 재밌는 세상이다.
씨앗을 뿌리는 농부, 험한 바다로 나가는 어부, 그것을 옮기는 유통인, 밤새워 흙을 씻어내는 재료 다듬는 사람들은 모두 무대 뒤로 사라지고, 화려한 소스를 뿌린 '셰프'만이 스포트라이트를 독식한다. 심지어 요즘은 그저 음식을 많이 입에 밀어 넣는 '잘 먹는 사람(먹방)'이 최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한다.
가장 중요한 근간은 철저히 무시된 채, 가장 표면적인 결과물만이 박수받는 사회.
주방에서 쫓겨나던 장손이 1,500번의 밥상을 직접 차려내며 마주한 이 세상의 민낯은, 참으로 우스꽝스럽고도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