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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재능, 카라바조

"바로크의 어둠 속에서 빛을 그린 남자"

by Jieunian Mar 27. 2025

악마의 재능. 바로크 화가 카라바조만큼 이 수식어가 잘 어울리는 예술가는 없을 것이다. 처음 그를 알게 된 계기는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치는 유디트>와 <메두사>였다. 선혈이 낭자한 살인의 장면을 그리는 화가, 자신의 얼굴을 메두사로 표현한 이 화가가 누구인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치는 유디트, 카라바조


메두사, 카라바조


카라바조는 1571년 이탈리아 밀라노 근교의 카라바조(Caravaggio) 마을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미켈란젤로 메리시(Michelangelo Merisi)인데 바로 앞선 세대의 선배(?)인 르네상스의 거장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와 이름이 같았기에, 사람들은 그의 출신지를 따서 ‘카라바조’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어릴 적 부모를 모두 잃은 그는 젊은 시절 로마로 상경했지만, 불안정한 생활과 잦은 폭력 사건에 휘말리며 방탕한 생활을 이어갔다. 실제로 그는 검투사들과 주먹다짐을 벌이고 감옥에 드나들었으며 결국 살인죄로 로마에서 도망자 신세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예술적 재능은 단연 독보적이었다. <카드 사기꾼들(The Cardsharps)>이나 <병에 든 과일 바구니 소년> 같은 초기 작품을 통해 미술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곧 로마 교회 미술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다. 당시 종교 개혁의 여파로 흔들리던 가톨릭교회는 강렬한 시각적 자극을 통해 신자들의 마음을 붙잡고자 했고 카라바조는 극적인 빛과 어둠, 세속성과 신성성의 공존이라는 독특한 스타일로 그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했다. 




빛과 어둠의 극단: 키아로스쿠로 기법

카라바조는 회화사에서 극명한 명암 대비(키아로스쿠로)를 활용한 대표적 화가로 평가된다. 인물 주변은 암흑처럼 어둡지만, 특정 부분에만 빛을 집중시켜 장면의 극적 긴장감과 감정의 깊이를 강조했다.

대표작 <성 마태오의 소명(The Calling of Saint Matthew)>에서는 어두운 술집 같은 공간 안으로 들어오는 한 줄기 빛 아래, 예수가 마태오를 지목하는 순간이 포착된다. 마태오의 놀란 표정, 주변 인물들의 반응, 그리고 그림 전체에 흐르는 침묵 같은 정적은 극장 무대 위 조명 같은 구성으로 표현된다.


성 마태오의 소명(The Calling of Saint Matthew)


실제로 <갱스 오브 뉴욕> 등으로 유명한 영화감독 마틴 스콜세지(Martin Scorsese)도 카라바조의 영향을 자주 언급했다. 

“카라바조의 그림을 보자마자 그 압도적인 힘에 즉시 사로잡혔다. 마치 현대 영화의 무대 연출 같았다.”
 고 말하며, “카라바조가 오늘날 살아 있었다면 위대한 영화감독이 되었을 것”이라고 평한 바 있다.


 빛과 어둠의 대비, 감정의 긴장감, 시선의 흐름을 이끄는 구도 — 모두가 현대 영화 연출과 맞닿아 있다는 평가다.





신을 그리되, 인간처럼

카라바조의 또 하나의 특징은 신성한 인물을 지나치게 인간적으로 표현했다는 점이다. 성모 마리아는 고귀한 여인이 아닌 평범한 여인의 모습으로 등장하고, 성인들도 노동자의 손과 때묻은 발로 그려졌다. 당시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인 표현이었고, 일부 그림은 ‘너무 현실적’이라는 이유로 교회에서 거부되기도 했다.


가령 <죽은 성모(The Death of the Virgin)>에서 성모는 아무 장식 없이 창백한 얼굴로 죽어 누워 있다. 주변 인물들의 울부짖음 또한 화려한 상징 없이 날것 그대로 표현되어, 보는 이로 하여금 경건함보다는 현실의 비극에 대한 몰입을 유도한다. 실제로 카라바조는 눈 앞에 모델이 있어야만 그림을 그렸다고 하는데, 죽은 성모의 모델은 아기를 가진 채 익사한 매춘부를 모델로 그려 배가 불룩하게 나와있다는 썰이 있다.

<마리아의 죽음(The Death of the Virgin)>



<성 마태와 천사>


"성 마태는 책 또는 두루마리를 앞에 두고 앉아서 복음서를 쓰려하고 있고, 천사는 마태 옆에서 무엇인가를 설명하거나 설득하려는 태도로 서 있다."라는 작품 의뢰서를 받은 카라바조는 위와 같은 그림을 그려내 교회에게 인수가 거부 당한 적이 있는데, '성인에 대한 불경스러운 묘사'가 그 이유였다. 그도 그럴것이 마태복음의 저자로 유명한 예수의 제자인 마태가 마치 천사가 불러주는 대로 받아쓰기를 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고 게다가 그 유명한 성인이 거친 발을 드러내며  노동자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성 마태오의 영감 (Inspiration of Saint Matthew)>


결국 카라바조는 새로운 버전인 <성 마태오의 영감>을 다시 그려야 했고, 이번에는 제대로 성인을 의미하는 머리 뒤의 후광이 눈에 띄며, 좀 더 권위 있는 학자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카라바조는 결국 삶에서도, 예술에서도 타협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빛과 어둠의 극적인 대비 속에서 신성함과 세속성을 동시에 포착했던 그는, 오늘날까지도 가장 강렬한 화가로 기억된다. 그의 그림 앞에 서면, 단순한 종교화가 아닌 마치 살아 숨 쉬는 현실의 한 순간을 마주하는 듯한 감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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