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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파리: 인상주의와 도시의 시작, 낭만의 탄생

모네의 햇살 아래, 카유보트의 대로를 걷는 르누아르의 사람들

by Jieunian

파리에 가보기 전, 내 상상 속 파리의 모습은 언제나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 와 귀스타브 카유보트의 <파리의 거리, 비 오는 날> 같은 그림들이었다. 특히 햇살 아래 펼쳐진 노천 카페의 낭만적인 풍경은 내게 파리 여행의 완성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이처럼 화려하고 정돈된 이미지 뒤에는 19세기 파리를 근본적으로 바꾼 조르주 오스만 남작의 도시 재개발, 즉 ‘오스만 프로젝트’가 있었다. 그의 계획 아래 파리는 현대적 거리와 건축물, 공공 인프라를 갖춘 새로운 도시로 탈바꿈했고, 이러한 변화는 화가들이 포착한 파리의 독특한 도시 문화를 가능하게 했다.



PISSARRO_Camille_L'Avenue_de_l'Opéra_Huile_sur_toile.jpg Avenue de l'Opéra, created by Haussmann, painted by Camille Pissarro, 1898.


나폴레옹 3세는 수도 파리를 유럽 근대 도시의 상징으로 만들고자 했다. 그는 1853년, 조르주 오스만을 센 주(Seine)의 총독으로 임명하고 ‘파리 대개조 사업’을 전격적으로 추진한다. 당시 파리는 중세의 흔적이 남아 있는 좁고 비위생적인 골목과 혼잡한 주거지로 가득했지만, 오스만은 이를 과감히 철거하고 도시 전역을 관통하는 직선 대로와 광장을 설계한다.


우선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을 대체해 방사형으로 뻗어가는 넓고 곧은 직선 대로를 설계하여 오늘날 샹젤리제 거리와 같은 화려한 도로망을 만들어냈고, 도시 미관과 생활 환경을 획기적으로 바꿀 통일된 건축 양식의 '오스만식 아파트'들이 들어선다. 균일한 높이와 정면 구성, 석조 외벽과 발코니, 지붕선까지 규격화된 이 아파트들은 도시 전경에 질서를 부여하면서도 새로운 생활 문화를 가능케 했다.





모네-생라자르역 (1).jpg 클로드 모네 <생 라자르 역> 1877


19세기 후반, 파리는 산업혁명과 함께 빠르게 도시화되며, 증기 기관차와 대형 철도역은 새로운 시대의 상징이 되었다. 모네는 <생라자르 역>에서 역사를 가득 메운 증기와 빛의 변화를 묘사며 역동적인 현대 도시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산업혁명으로 탄생한 근대 교통수단은 파리를 새로운 사회와 문화의 중심지로 탈바꿈시켰다. 이 그림은 도시의 빠른 변화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인상주의 특유의 빛과 색채로 포착했다.


500px-Gustave_Caillebotte_-_Paris_Street,_Rainy_Day_-_1964.336_-_Art_Institute_of_Chicago.jpg 카유보트 <파리의 거리, 비오는 날> 1877


같은 시기, 카유보트는 비 내리는 파리의 거리 한복판을 배경으로 우산을 든 시민들의 모습을 정밀하고 사실적으로 포착했다. <파리의 거리, 비 오는 날>은 오스만 프로젝트 이후 정돈된 도로와 균일한 건축물이 주는 질서감 속에서, 도심을 가로지르는 일상의 순간을 담아낸다. 원근감 있는 구도와 세밀한 묘사를 통해, 카유보트는 산업화된 도시의 구조적 아름다움과 그 안의 인간적인 정서를 동시에 표현했다. 이러한 도시 풍경은 근대 파리의 새로운 얼굴이자 시민들의 일상 공간이었다.


Pierre-Auguste_Renoir,_The_Umbrellas,_ca._1881-86.jpg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우산> 1881~1886


같은 비 오는 날의 풍경이라도, 르누아르의 화폭은 훨씬 더 인간적이고 따뜻하다. <우산> 은 비가 갑작스레 내리는 상황 속 군중들의 모습을 포착한 작품이다. 우산을 펼쳐 드는 여인과 아이, 무심히 스쳐 가는 사람들 속에서 르누아르는 군중 속 개별 인물들의 감정과 표정을 세심하게 살핀다. 인상주의적 붓터치와 회색빛이 감도는 색조 속에서도 인물들 사이에 흐르는 감정은 섬세하고 생기롭다. ‘행복을 그리는 화가’라는 별명처럼, 그는 인물들의 표정과 몸짓에서 일상의 소소한 기쁨과 생동감을 발견한다.


우산은 원래 유럽에서 귀족의 사치품으로 여겨졌지만, 19세기 중반 철제 프레임과 방수 천이 도입되며 대중화되었다. 파리 시민들은 비가 자주 오지 않음에도, 가랑비에도 새 우산을 자랑하듯 펼쳐 드는 풍경을 즐겼다고 하는데 이는 르누아르의 눈에 생동감 넘치는 도시의 일부로 비쳤을 것이다.


물랭 드 라 갈레트.jpg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 1876


그의 또 다른 대표작인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에서도 이러한 시선은 이어진다. 이 작품은 파리 북부 몽마르트르에 위치한 노천 카페에서 일요일 오후에 열린 무도회의 풍경을 그린 것인데 르누아르는 두터운 붓터치 대신 가볍고 유려한 터치로,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과 그 속에서 어우러진 사람들의 움직임을 생동감 있게 담아냈다.


이 장면은 단지 춤추는 사람들만이 아닌, 도시 속에서 일상을 즐길 줄 아는 근대 시민들의 새로운 삶의 태도를 보여주는 화폭이기도 하다. 르누아르는 군중 속에서 흐르는 따뜻한 정서와 찰나의 행복을 포착함으로써, 인상주의의 진정한 미학을 완성해간다.


카퓌신대로.jpg 클로드 모네 <카퓌신 대로> 1873~1874


모네의 <카퓌신 대로>는 파리 중심가를 높은 시점에서 내려다본 작품이다. 오페라 극장 부근, 새로 정비된 광장과 대로 위를 오가는 인파는 도시의 활기를 전하고, 정돈된 가로수와 균형 잡힌 건축물은 오스만식 도시계획의 성과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도시의 구조, 질서, 인간의 흐름을 한눈에 담아낸 이 작품은 파리가 어떻게 근대적 미감을 갖춘 공간으로 변모했는지를 잘 드러낸다.






이처럼 19세기 인상주의 화가들은 오스만 남작의 도시 재개발이라는 역사적 변곡점 속에서, 변화하는 도시 풍경과 새로운 시민 문화를 화폭에 담았다. 그들의 시선은 찰나의 빛과 감정을 포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도시화와 산업화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일상을 영위하고 공동체를 구성해 나갔는지를 섬세하게 기록한다.


인상주의는 단순한 미술사적 양식을 넘어, 근대 도시의 탄생과 함께하는 삶의 변화를 시각적으로 증언한 중요한 문화적 출발점이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상상하는 '파리의 낭만'은 어쩌면 그들의 붓끝에서 태어난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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