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퇴사 후 한국을 떠났다.
퇴사
나는 기록하는 걸 좋아한다.
나의 감정이나 상황을 글로 써 내려갈 때 생각이 정리되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오랜 나의 기록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단어는 고등학생 때 썼던 '자유'이다. 그때는 어른이 되면 모든 간섭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질 줄 알았고, 대학생 때는 내가 자유로운 줄 착각했으며 돈을 벌어야 할 때가 돼서야 진정한 자유란 경제적 자유가 시작이구나를 깨달았다.
어떤 의미인지 정확히 모르고 막연하게 느껴지던 '자유'라는 단어가 지금의 내가 있게 한 모든 선택의 시작점이 되었다.
이전 직장은 안정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내가 하는 만큼 보람을 느낄 수 있었고 적성과도 잘 맞았다. 어느 날 문득 책상에 앉아 창문을 바라보는데 '왜 내가 보는 창문은 항상 갇혀 있다는 느낌이 들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한 번의 느낌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해서 '어떻게 하면 이 판을 뒤집을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하는데 나는 내 삶의 방향을 '자유'로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먼저 퇴사를 선택했고 동남아 이민을 선택했다. 여러 가지 이유로 퇴사하는 사람은 많겠지만 동남아로 이사가 버리는 선택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그만큼 쉽지 않은 결정이기도 했다.
지금 내가 사는 이곳, 인도네시아는 두 번 정도 짧은 여행으로 다녀 갔던 곳이다. 연고가 있다면 시부모님이 계셨지만 우리가 당장 가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돈벌이를 할 것인지 아무것도 정해져 있지 않았다. 결혼 당시에는 계획에 없었지만 남편을 설득 후 각자 직장을 퇴사하고 모든 짐을 정리한 후 이곳으로 왔다.
옷가지와 당장 쓸 짐만 가볍게 챙겨 들고 코로나 시국에 도착한 이곳. 당시 코로나로 인해 입국 시 격리 의무가 있었기 때문에 2주 정도 호텔에 머물러야 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그 2주간은 여행하는 기분으로 있었다.
앞으로 여기서 무엇을 하며 먹고살 것인지, 어떻게 부모님에게 짐이 되지 않을 수 있는지 현실감이 없었다.
앞으로 다가올 눈물 나는 모든 과정을 한 치 앞도 모른 채 그 짧은 순간을 즐겼던 것이다.
가끔 '한국은 살기 힘들다. 해외 나가 살고 싶다.'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실제로 중소기업에서 지원자가 부족해 사람 뽑기가 힘든데 해외 근무자를 뽑는다고 하면 지원자가 더 많아진다는 것이다.
나는 그들의 마음을 이해한다.
쳇바퀴 같은 직장 생활, 변하지 않는 주위 환경, 무엇보다 어제 똑같고 오늘 똑같은 나에 지쳤을 것이다.
나는 살면서 한 번도 관성의 법칙을 깬 적이 없다. 물론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은 해왔지만 주어진 환경을 바꾸거나 나 자체를 바꿔보려 한 적이 없었다. 이 사실조차도 이곳에 와서 깨달았다.
그런 내가 살면서 처음으로 쉽고 일반적인 선택을 거부하고 틀을 벗어난 이탈자가 되었다. 퇴사든, 동남아 이민이든 어느 것 하나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앞으로 5년, 10년이 지나도 아무것도 바뀔 게 없어 보였다. 어느 시점에는 더 이상 어딘가에 갇혀 창문이나 바라보고 싶지 않았다.
이곳에 온 지도 벌써 4년 차가 되었다.
퇴사를 한다고 해서 당장 자유로울 수 있는 것도, 한국을 떠나 꿈꾸던 파라다이스에 도착한 것도 아니었다.
지난 3년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우린 많이 성장했고 가기 전과 후의 가치관이나 삶에 대한 태도, 경제적 여건 등 많은 것이 변했다. 이제는 한 아이의 부모가 되어 늘 적응해야 하는 이곳에서 육아도 하고 있다. 한국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먼 나라 이방인으로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현재의 내가 내린 결론은 '그때 용기 내길 잘했어, 여기 안 왔으면 후회할 뻔했다.'이다.
나의 기록은 해외로 나와 살면서 직접 경험하고 육아하고 도전하고 나를 성장시키는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