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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다 Jan 03. 2025

동남아 살면 시어머니는 울고 친정엄마는 웃는다더라

퇴사 후 동남아 해외살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여기 와서 들은 얘기 중에 동남아 살면 시어머니는 울고 친정 엄마는 웃고 간다는 이야기가 있다. 쉽게 말해 남자들은 일하느라 바쁘고 여자들은 일 안 하고 편하게 산다는 이야기다.


동남아 산다고 모두가 같은 상황도 아니고 각자 다르기 때문에 지극히 주관적인 나의 경험과 생각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내 생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여자로서, 아내로서, 아이 엄마로서, 나의 생각을 이야기하자면 더 편한 부분은 분명 있다.

한국보다 인건비가 저렴하다 보니 상주 가사 도우미, 유모, 기사 등 비교적 저렴한 금액으로 누릴 수 있는 혜택이 있다. 나는 상주 가사 도우미를 쓰고 있다. 주택이라 관리와 청소가 만만치 않고 비용을 따져봐도 안 쓸 이유가 없는 금액이다. 집에 아이가 있으면 더욱 필요하기도 하다.

반면 유모나 기사는 써 본 적이 없다. 유모는 필수가 아닌 엄마의 성향에 따른 선택인 듯하다. 내가 사는 곳은 동네가 작은 편이라 있으면 편하겠지만 기사를 쓰며 고정 비용을 더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 아직은 써 본 적 없다.

한국이었으면 대부분 맞벌이를 했을 테지만 여기서는 여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 한국보다는 제한적이라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하는 사람들이야 있겠지만 흔치 않은 게 사실이다.

한국에서는 누리지 못하는 걸 여기서 누릴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한국에서는 당연한 것이 여기서는 당연하지 않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하고싶은 일을 하고 직접 돈 벌어 쓰던 독립적이었던 내가 여기 와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주부와 엄마의 역할 밖에 없다는 사실이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이곳에 온 것도, 아이를 낳은 것도 나의 선택이었지만 나도 분명 열심히 살았던 사람이었던 것 같은데 그냥 주부라고? 엄마라고? 내 미래는 어떻게 되는 거지, 이 집에서 그냥 이대로 끝나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 겁이 날 때가 있다.

나는 욕심이 많다. 하고 싶은 건 해야 하고 지금 현재에 안주하는 스타일도 아니고 새로운 도전을 즐기는 성향이다. 그런 내가 정해진 틀대로만 살아야 한다 생각하니 답답했다.

한편으로는 그냥 편하게 살자 할 수도 있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다. 그래서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고 도전하고 있다.


적어도 내가 여기 온 이유 중 하나의 키워드가 '자유'인데 현실에 안주해 버리는 삶은 내가 바라던 게 아니었다.

하고 싶은 공부도 해보고 실제로 돈을 벌기 위해 국내 사업자 내서 온라인 사업도 도전해 보고, 돈과 연결되는 것에 도전하며 집을 일터로 만들었다. '적어도 낮시간 동안에는 저 소파 위에 누워있지 않으리' 하며 하루하루 목표를 정하고 시간을 쪼개며 살았다.


여전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실패하고 때로는 작은 결실을 맺으며 도전하고 있다.

물론 이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도전한다는 것은 그만큼 남편이 그것이 가능한 환경을 제공해 주고 지지해 주기 때문도 있으니, 처음 언급했던 것처럼 반은 맞다. 이곳으로 와서 직장 생활할 때 보다 더 바쁘고 쉬는 날 없이 일하는 남편. 예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지금의 우리가 있기까지, 허들 하나 넘는 것이 어찌나 힘들었던지 생각해 보면 늘 감사하다.

그래서 나도 같이 힘이 되어주고 싶고 결국엔 같이 돈을 벌고 싶다. 취미 생활로 끝나는 재미보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장기적으로 돈벌이로 연결되어 이 세상에서 작게나마 쓰임을 다하고 있구나 하는 성취감을 느끼고 싶다.

직장 생활을 할 때는 지겨워서 몰랐는데 스스로 벌어먹고 산다는 게 얼마나 값지고 가장 독립적이며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일인지 일을 못하는 상황이 되어서야 깨달았다.

이곳에 온 지 2년 차 때 친정 엄마가 놀러 오셨다. 상주 가사 도우미를 쓰며 살고 있는 모습을 봤지만 우리 엄마는 웃고 가지 않았다. 나의 성향을 잘 알기도 했고 내가 얼마나 답답해할지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젊은 사람들이 있기엔 좀 답답한 곳이네' 하는 말만 하셨지만 더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그래서 반은 틀리다.

아이를 낳으면서 더욱 할 수 있는 일이 제한되며 지금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한 원망도 했다. 내 편은 아무도 없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없는  이 집에 갇혀 버린 것만 같았던 2년.

아이가 클수록 상황은 나아지겠지만 하루에 5시간 이상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쉽지 않다. 온라인 사업을 시작하면서 하루 6시간을 매달리기 시작했는데 집에 있어도 아이는 아이대로 못 보고 일은 일대로 못하면서 결국 포기했다. 장기적으로 괜찮은 일이었다면 감수하고 했겠지만 그것도 아니라 그만두었다.

지금은 당장의 돈벌이를 쫓기보다는 지속가능한 일을 찾고 있다. 그중 하나가 브런치 작가가 되어 글을 쓰는 것이다. 지금까지 꾸준히 일기를 적을 만큼 기록하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고 내 생각을 글로 풀어내는 게 흥미롭다.

당장 브런치에 글을 올린다고 해서 무언가가 되는 건 아니지만, 경험상 작은 것부터 도전하고 꾸준히 해나가다 보면 가지치기로 새로운 기회가 열릴 수 있기 때문에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관심 있고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친 후 이제는 아내로서, 엄마로서의 역할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내 선택이자 삶에서 소중한 것들이라 부정할 일이 아니었다. 다만 현실의 답답함을 그들에게 투영했을 뿐.

하지만 앞으로 내가 하는 선택의 우선순위를 남편과 아이에게 평생 양보해야 하는 것도 싫다. 나 자신과 가정 내에서의 아내와 엄마의 역할을 적절히 조화롭게 해나가고 싶다.

실패하더라도 도전하다 보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우리 엄마 두 번째 방문 때에는 웃고 가게 해줘야겠다.

지금 할 수 있는 걸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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