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을 넘어선 슈만과 클라라의 위대한 사랑
사랑이라는 감정보다 귀한 것이 세상에 있을까요? 따분하고 무료한 일상 속에 누군가가 들어와 세상 모든 것이 핑크빛으로 변하는 기적. 나 자신보다 소중한 사람이 생긴다는 것. 그것은 오직 사랑을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축복입니다.
하지만 이별 뒤에 찾아오는 깊은 상실감과 슬픔 또한 사랑이 주는 대가입니다. 그 아픔이 두려워 마음을 닫다가도, 누군가 슬며시 다가오면 우리는 또다시 속절없이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천국과 지옥을 오가게 하는, 때로는 숨 막히는 행복과 가슴 저미는 아픔을 동시에 선물하는 '사랑'. 어쩌면 우리는 이토록 강렬한 감정 덕분에 예측 불가능한 인생을 계속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이번에 여행한 라이프치히는 낭만주의의 한복판에 섰던 거장, 로베르트 슈만의 애틋하고도 눈물겨운 사랑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 절절한 사랑 이야기를 그의 위대한 연가곡이자 지상 최고의 사랑 노래, <시인의 사랑(Dichterliebe, Op. 48)>과 함께 따라가 보려 합니다. 슈만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1840년 '노래의 해', 하이네의 시에 곡을 붙여 오직 사랑하는 클라라를 위해 바쳤던 그 노래를 따라서 말이죠.
이 세상에서 당신처럼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은 없어요.
-시인의 사랑을 들은 클라라 슈만-
나는 당신과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노래를 쓸 수 없었을거요.
-로베르트 슈만-
아름다운 5월에 온갖 꽃봉오리가 움터 오를 때
그때 내 마음속에서 사랑이 솟아났네.
아름다운 5월에
온갖 새들이 노래할 때
그때 나는 그녀에게 고백했네
내 그리움과 갈망을
나는 음악의 도시, 라이프치히(Leipzig)에 도착했다. 라이프치히 중앙역 플랫폼에는 세계 최정상급 악단인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로고가 방문객을 맞이한다. 음악의 아버지 바흐를 필두로 리하르트 바그너, 펠릭스 멘델스존, 에드바르 그리그, 구스타프 말러와 같은 거장들이 머물렀던 도시. 과연 최고의 음악 도시라 불릴 만하다.
1828년, 라이프치히 법대생 로베르트는 츠비카우를 떠나 이곳에 도착했다. 대도시가 낯설었던 그는 츠비카우에서 친하게 지냈던 카루스 부부를 만나 많은 음악가를 알게 되면서 점차 이 도시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나도 낯선 여행지 라이프치히의 번화가를 설레는 마음을 안고 청년 로베르트처럼 천천히 걸어본다.
번화가인 그리마이셰 슈트라세를 걷다 보면 어느 한 상가건물의 벽면에 붙어있는 동판을 볼 수 있다. "클라라 비크, 프리드리히 실러, 장 파울이 이곳에 살았다." 독일의 유명한 음악가와 극작가, 소설가가 이 한 곳에 살았다니 정말 놀랍다. 그중 내가 주목한 것은 바로 클라라 비크다.
1828년 3월 13일, 슈만은 카루스 부부의 소개로 라이프치히의 유명한 음악 선생님 프리드리히 비크와 함께 그의 딸 꼬마 클라라를 처음 만난다. 인사를 나누고 소녀는 피아노에 앉아 연주하기 시작했다. 피아노 연주에 나름 자신이 있었던 로베르트는 어린 소녀에게 조언을 해줄 부분이 있을까 싶어 집중해서 들었고, 연주가 시작되자 깜짝 놀랐다.
무려 아홉 살의 어린 나이에 게반트하우스에 데뷔한 이 천재 소녀의 엄청난 피아노 연주는 라이프치히 법대생 로베르트 슈만의 가슴속 깊이 잠들어 있던 음악 세포들을 깨웠다. 슈만은 곧장 클라라의 아버지 비크 선생님에게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고 요청을 했고, 비크는 흔쾌히 수락했다.
비크 가정에 자주 가고 있어요.
제 피아노 선생님 집이거든요.
도시에서 활동하는 최고의 음악가들이 오기 때문에
거기서 그들을 매일 만나지요.
- 1828년 어머니에게 보낸 슈만의 편지-
나는 이 라이프치히 번화가의 한 상가건물을 바라보며 그날을 상상해 보았다. 아홉 살 클라라의 놀라운 연주를 듣는 열여덟 살의 로베르트의 모습을. 소녀는 소년에게 음악이라는 꿈을 선물했고, 이들은 훗날 불멸의 음악가이자 클래식 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부부가 된다. 200년이 지난 오늘, 이 역사적인 장소에서 사랑하는 부부의 첫 만남을 그려보니, 마치 나 또한 그 순간에 함께 있는 듯한 생생한 감동과 함께 이들의 어린 시절 순수한 모습이 떠올라 흐뭇했다.
그렇다면 당시 아홉 살 클라라는 어떻게 피아노 신동이 되었을까? 물론 클라라의 뛰어났던 재능도 있었지만, 그녀의 아버지 프리드리히 비크의 조기교육이 한몫했다. 그는 의심할 여지없이 뛰어난 음악 교육자였다. 클라라의 재능을 가장 먼저 알아보고 세계 무대에 세운 것도, 훗날 슈만의 재능을 일찍이 간파하고 자신의 집에 거주하게 해 준 것도 그였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딸의 삶을 자신의 '모차르트 신동 프로젝트' 실현의 도구로 삼으려 했던 고압적인 아버지의 모습이 숨어 있었다. 클라라의 모든 것을 통제했던 그는 심지어 딸의 일기마저 자신이 불러주는 대로 쓰게 해 신동 이미지를 만들었다.
가장 순수하고 해맑아야 할 아홉 살. 클라라는 세상과 단절된 채 오직 피아노만을 연주하는 인형의 삶을 살았다. 그런 그녀의 닫힌 세계에, 따스한 햇살처럼 한 사람이 들어온다. 바로 그녀보다 아홉 살 많은, 아버지의 새로운 제자 로베르트 슈만이다.
문학을 사랑하고 상상력이 풍부했던 청년 슈만은 클라라와 어린 동생들에게 더없이 다정한 친구가 되어주었다. 그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끝없이 들려주고, 때로는 직접 인형극을 꾸미거나 으스스한 유령 이야기를 실감 나게 펼쳐 보이며 아이들의 삭막했던 세계에 웃음과 활기를 불어넣었다. 클라라에게 로베르트는 생애 처음으로 만난,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유일한 친구이자 다정한 오빠였고, 그녀는 그런 그를 진심으로 따르고 좋아했다.
풋풋한 우정을 나누던 시절도 잠시, 슈만은 더 넓은 세상으로 여행길에 오른다. 그 여행 중 프랑크푸르트에서 마주한 파가니니의 경이로운 연주는 그의 삶의 항로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지난 글 참조) 마침내 가슴속 깊이 타오르는 음악에 대한 열망을 확인한 슈만은, 모든 것을 걸고 본격적인 음악가의 길을 걷기로 굳게 결심하고 다시 라이프치히로 돌아왔다.
다시 돌아온 라이프치히. 이곳에서 누구보다 그를 반갑게 맞이한 이는 클라라였다. 그녀는 더 이상 슈만이 기억하던 마냥 어리고 앳된 아홉 살 소녀가 아니었다. 클라라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성장해 있었다.
슈만의 재능을 일찍이 간파했던 프리드리히 비크는 제자가 자신의 집에서 하숙하며 오롯이 음악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기꺼이 배려했다. 꿈을 향한 뜨거운 열정으로 똘똘 뭉친 슈만은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피아노 연습에 매진했다.
하지만 남들보다 늦게 음악을 시작했다는 조급함이 문제였을까? 네 번째 손가락의 힘을 기르기 위해 특수기구를 사용한 무리한 연습은 결국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불렀다. 슈만이 스물두 살이 되던 1832년, 그의 오른손 네 번째 손가락은 끝내 마비되었고, 피아니스트를 꿈꿨던 그의 희망은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달리기를 사랑하던 내가 장기 부상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던 경험이 떠올라, 피아니스트의 꿈을 잃은 슈만이 느꼈을 참담한 좌절감에 더욱 깊이 이입하게 된다.
피아니스트의 꿈이 꺾인 절망감에 더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랑하는 형 율리우스마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슈만은 깊고 어두운 슬픔의 나락으로 빠지고 만다. 슈만의 음악을 들을 때면, 사무치는 아름다움에 숨이 멎을 듯하면서도,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먹먹한 슬픔이 차오르곤 한다. 불협화음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피어나는 눈물겹도록 처연한 아름다움이, 실은 그의 삶을 드리웠던 깊은 불행과 고통 속에서 어렵게 피워낸 꽃이기에, 그의 섬세한 감수성을 사랑하는 나는 때론 그의 음악 앞에서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운명은 그에게 가혹했지만, 모든 길을 막아서지는 않았다. 피아니스트로서의 날개는 꺾였지만, 그에게는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문학적 재능이라는 또 다른 날개가 남아 있었다.
깊은 우울의 터널을 지나던 1834년, 24살의 슈만은 친구들과 함께 보수적이고 속물적인 음악계에 반기를 들며 '음악 신보(Neue Zeitschrift für Musik)'를 창간했다. 그는 이 잡지에서 가상의 단체 '다비드 동맹(Davidsbündler)'을 조직했다. 다윗이 돌팔매 하나로 거인 골리앗을 쓰러뜨렸듯, 진정한 예술을 위해 예술을 갉아먹는 속물들과 싸우겠다는 결의였다. 슈만은 자신의 내면을 불같이 열정적인 '플로레스탄'과, 사색적이고 꿈꾸는 듯한 '오이제비우스'라는 두 개의 필명으로 나누어 글을 썼다. 두 자아는 지면 위에서 서로 대화하고 논쟁하며 독창적인 비평 세계를 펼쳐나갔다. 이렇게 비평가로서의 명성은 쌓여갔지만, 가슴속 선율을 직접 연주할 수 없다는 좌절감이 그를 짓눌렀다.
나의 눈물에서 수많은 꽃이 피어 나오고.
나의 한숨은 밤꾀꼬리들의 합창이 되리.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면이 꽃을 모두 그대에게 바치리라.
그리고 그대 창가에 밤꾀꼬리의 합창이 울려 퍼지리.
깊은 좌절과 슬픔으로 힘겨워하던 슈만의 곁을 지킨 것은 클라라였다. 피아노라는 공통의 관심사로 함께 음악을 나누며 보내는 시간들은 외로웠던 서로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고, 두 사람의 마음속에는 사랑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슈만이 스물다섯, 클라라가 열여섯이 되던 1835년 11월. 두 사람은 떨리는 첫 키스를 나누며 서로의 마음에 새겨진 깊은 사랑을 확인한다.
나는 손을 다쳤기 때문에
클라라 당신이 내 오른손이에요.
당신에게 어떤 나쁜 일도 일어나지 않도록
스스로 잘 돌보세요.
-로베르트 슈만-
클라라가 태어났던 집에서 그리마이셰 슈트라세를 따라 5분 정도 걸어가면 이 뜨거웠던 사랑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 사이로, 어느 건물 벽면에 붙어있는 하얀 현판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젤리어 호프 앞 건물에서 클라라 비크가 유년시절의 한때를 보냈다. 1825년에서 1835년까지 프리드리히 비크가 여기 살았고, 로베르트 슈만도 1830년부터 1831년까지 이 집에서 살았다.
하이델베르크에서 음악가로서의 뜨거운 꿈을 안고 돌아온 슈만. 그는 이곳에 머물며 그 꿈을 향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그리고 오랜만에 다시 만난 클라라. 두 사람이 이곳에서 함께 보낸 1년 남짓 한 시간 동안, 서로에게 스며들며, 사랑의 씨앗이 싹트기 시작했다.
나는 수많은 사람이 지나가는 이곳에서 그들의 사랑을 상상해 보며 시간을 잊은 채 한참을 서 있었다. 전시품 하나 없이 현판만이 붙어있는 건물이 내게는 그 어떤 박물관보다 더 깊고 황홀한 시간을 선물했다.
사랑을 사랑했던 음악가가 진심으로 사랑을 하기 시작했던 이곳에서 이어폰을 꽂고 들었던 슈만의 <환상곡 Op.17>은 잊을 수 없다. 몰아치는 열정과 애틋한 그리움이 뒤섞인 선율이 온몸으로 파고들었다.
감정에 젖어 눈가에 맺힌 눈물을 미처 닦지 못한 채 서 있는 내게, 곁에서 부어스트를 팔던 상인 한 분이 나를 사연 많은 사람으로 보셨는지 괜찮냐며 말을 건넸다. 괜찮다고 말을 하며, 슈만의 사랑에 대해 간략하게 이야기를 들려드렸더니 자기는 매일 여기서 영업을 하는데 오늘에서야 처음 알았다며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로베르트와 클라라의 뜨거운 사랑 이야기가 시작된 곳, 이곳을 떠올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때의 깊은 울림과 함께 가슴 저릿한 감동이 다시금 파도처럼 밀려온다.
그대의 눈을 바라볼 때면,
내 고통이며 아픔 모두 사라지고
그대와 입을 맞출 때는
내 상처가 씻은 듯이 낫습니다.
그대의 가슴에 기댈 때면,
천상의 기쁨이 내려오고
그대가 내게 '사랑해요'라고 말하면
나는 쓰라린 눈물을 흘릴 것입니다.
두 사람의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클라라는 로베르트의 풍부한 문학적 감수성과 다정함을 좋아했고, 로베르트는 클라라의 따스하고 차분한 성품,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의 경이로운 피아노 연주를 사랑했다.
클라라는 연주 여행을 떠나기 전, 자신의 머리카락 한 줌과 함께 '돌아오면 꼭 다시 만나요'라는 애틋한 마음을 담은 메모를 로베르트에게 남겼다. 로베르트 역시, 그들이 함께 맞이하는 클라라의 첫 생일에 멀리서나마 자신의 변치 않는 사랑을 전하려 귀한 황금 시계를 선물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여느 평범한 연인들처럼 설렘 속에서 사랑을 키워갔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사랑에 시련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이 무렵, 슈만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이미 여러 차례 가족을 잃는 아픔을 겪었던 슈만에게, 정신적 지주였던 어머니의 죽음은 감당하기 힘든 공포였다. 너무나 큰 슬픔은 때로 현실을 부정하게 만든다. 슈만은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현실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결국 그는 그 견딜 수 없는 슬픔으로부터 도피하듯 장례식장 대신, 자신의 유일한 안식처인 드레스덴의 클라라에게로 향한다. 그리고 바로 이 드레스덴에서의 만남으로 두 사람의 깊어진 관계를 아버지 프리드리히 비크가 알아차리고 만다.
딸에 대한 깊은 애정이 지나친 통제로 굳어버린 아버지. 클라라를 세계 최정상 피아니스트로 만들겠다는 비크의 야망은 진심이었지만, 그것이 사랑인지 집착인지 경계는 모호했다. 경제적으로 불안정하고 미래가 불투명한 작곡가 지망생 슈만은 결코 자신의 딸에게 어울리는 상대로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타올랐다.
로베르트는
자신의 손가락을 불구로 만든 멍청이고,
허영심으로 가득하며,
중증 알코올의존증에다가
진정으로 클라라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이용하려는 생각뿐이다.
-프리드리히 비크-
비크는 두 사람을 갈라놓기 위해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한다. 그는 1836년, 클라라를 데리고 라이프치히를 떠나 무려 1년여에 달하는 긴 연주 여행길에 오른다. 이제 막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뜨거운 사랑을 시작하려던 두 젊은 연인은, 그렇게 아버지의 냉혹한 반대 아래 서로의 얼굴조차 볼 수 없는, 기약 없는 기다림과 애끓는 그리움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1837년은 슈만에게 특히 가혹한 해였다. 사랑하는 클라라를 만날 수 없는 고통에 더해, 절친했던 친구 두 명마저 세상을 떠나며 그는 깊은 절망감에 휩싸였다.
이런 절망의 한가운데서도 그의 예술혼은 더욱 불타올랐다. 앞서 그리마이셰 거리에서 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뜨거운 눈물을 쏟게 했던 바로 그 불멸의 걸작, '환상곡 Op.17'을 탄생시켰다.
당신의 눈물 한 방울마다
내가 키스해 줄게요.
그러면 당신 마음이 밝아지겠지?
우리 두 사람 신혼의
첫여름을 상상해 보면 황홀해!
-로베르트 슈만-
어제 당신의 황홀한 환상곡을 받고
난 정말 너무 기뻤어요.
창가로 끌려가서
그대로 아름다운 봄 속에 몸을 던지고
한여름 꽃을 품 안에 껴안고 싶었어요.
당신의 환상곡을 읽으면서
찬란한 꿈을 꾸었답니다.
-클라라 비크-
이 무렵, 슈만은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으로 부임한 젊은 거장, 펠릭스 멘델스존을 만나 음악적 교류를 나누며 힘든 시기에 또 다른 위안을 얻는다. 한편, 아버지의 엄격한 감시 속에서도 클라라의 사랑은 더욱 단단해졌다. 1837년 라이프치히로 돌아온 그녀는 마치 보란 듯이 슈만의 '교향적 연습곡'을 자신의 프로그램에 넣어 연주하며 사랑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두 사람은 더욱 대담하게 사랑의 확신을 키워나갔다. 1838년, 슈만은 연주 기교에 힘겨워했을 클라라가 어린아이처럼 자유롭고 순수한 기쁨 속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어린이 정경'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렇게 뜨겁게 타오르는 두 사람의 사랑을 더 이상 막기 어렵다고 판단했던 것일까? 냉정했던 아버지 비크도 마침내 한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슈만이 빈에서 성공적인 기반을 다지고 돌아온다면, 클라라와의 결혼을 고려해 보겠다는 것이었다.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1838년, 슈만은 음악의 도시 빈으로 향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그곳에서의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야심 차게 준비했던 '음악 신보'의 발간 계획은 검열에 발목이 잡혔고, 결국 이렇다 할 성과 없이 깊은 실망감과 함께 쓸쓸히 라이프치히로 돌아와야만 했다.
나는 작년에 이어 이번 여행에서도 오스트리아 빈을 찾았다. 나는 슈만이 뜨거운 꿈을 품었지만 쓰라린 좌절을 맛보았던 흔적이 남아있는 거처로 향했다. 그곳은 관광객이라곤 한 명도 없는 현지인들의 일상만이 조용히 묻어나는 어느 한적한 골목 길가에 있었다. 이곳 주민들이 낯선 여행자인 나를 바라보는 시선처럼, 슈만에게는 한없이 낯설고 외로운 곳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의 마음은 얼마나 복잡했을까? 오래된 건물 앞에 마침내 섰을 때, 설명하기 힘든 먹먹함이 가슴을 채웠다. 사랑의 열병과 예술가로서의 깊은 고뇌로 몸부림치던 청년 로베르트. 나는 이곳에서 방황하던 그를 떠올렸다. 마음속으로 그에게 가만히 말을 건네본다.
"로베르트, 당신의 사랑은 1년 뒤면 아름다운 결실을 맺을 거예요. 아주 조금만 더 힘을 내세요."
나 원망하지 않으리, 마음이 부서지더라도.
나는 울지 않으리, 가슴이 찢어지더라도.
빈에서의 쓰라린 실패는 슈만에게 또 다른 좌절감을 안겨주었지만, 클라라를 향한 그의 사랑은 결코 꺾이지 않았다. 비크의 완강한 반대가 계속되자, 더 이상 다른 방법이 없다고 판단한 로베르트와 클라라는 그들의 사랑을 법적으로 인정받기 위한 소송을 제기한다.
그렇게 시작된 법정 소송. 젊은 연인들에게 이 시간은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둡고 깊은 터널과도 같았을 것이다. 절박한 심정으로 슈만은 클라라에게 편지를 보낸다.
당신의 마음은
여전히 진실하고 확고한가요?
흔들림 없이 나는 그대를 믿어요.
하지만 세상 하나뿐인 연인에게
아무 기별을 못 듣는다면
아무리 강한 용기마저도 길을 잃기 마련이에요.
그 여인은 내게는 당신입니다.
수천 번 모든 것을 되새기고
또 스스로에게 말해 보았어요.
우리가 원하고 움직인다면,
꼭 그렇게 해야 할 겁니다.
저한테 그냥 간단히'네'라고 적어주세요.
-로베르트 슈만-
그냥 간단히 '네'만 하라고요?
그 짧은 말 한마디가
그렇게 중요하다니.
당신 마음은 내 마음처럼
말할 수 없는 사랑으로
가득 차 있는 게 아니었나 보죠?
그래요. 할게요.
내 가장 깊은 마음을 다해 당신께
'네'라는 말을 속삭일게요.
영원히요!
-클라라 비크-
확신을 받은 슈만은 클라라의 남편으로서 자격을 증명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예나 대학에 명예박사 학위를 받고, 멘델스존을 비롯한 지인들에게 탄원서를 모아 법원에 제출했다. 자신이 결코 형편없고 불안정한 사람이 아님을 세상에 증명해야만 했다.
1년여에 걸친 피 말리는 법정 다툼 끝에, 1840년 마침내 법원은 두 사람의 사랑을 인정해 주었다. 5년간의 험난했던 투쟁이 결실을 보았다. 승소의 가능성이 커지던 1840년 초부터 슈만은 기쁨으로 가득 차 창작의 열꽃이 화산처럼 피어났다. 1년 동안 무려 140여 편에 달하는 주옥같은 가곡들을 작곡했다. <시인의 사랑>, <여인의 사랑과 생애> 등 불멸의 연가곡들이 바로 이 시기에 탄생했다.
그리고 결혼식 바로 전날, 슈만은 클라라에게 평생 잊지 못할 선물을 건넨다. 바로 스물여섯 곡의 아름다운 노래로 엮은 가곡집, <미르테의 꽃(Myrthen), Op.25>이다. 미르테는 결혼식 화관을 만드는 데 쓰이는 꽃이다. 공교롭게도 결혼식 다음 날인 9월 13일은 클라라의 스물한 번째 생일이었으니, 이 가곡집은 두 사람의 결합을 축복하는 결혼 선물이자, 사랑하는 연인의 생일을 축하하는 달콤한 선물이기도 했다.
그대는 한 송이 꽃처럼,
그토록 사랑스럽고 아름답고 순결하구나.
나 그대 바라보니,
애틋한 그리움이 내 마음속으로 살며시 스며드네.
내게는 마치 나의 두 손을
그대 머리 위에 얹고 기도해야 할 것만 같아,
신께서 그대를 길이 지켜주시기를,
이토록 순결하고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마침내 1840년 9월 12일 토요일 오전 10시. 오랜 기다림과 눈물겨운 시련을 모두 이겨낸 두 사람은 라이프치히 근교의 작은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슈만은 서른 살, 클라라는 스물한 살이었다.
당시 클라라의 곁에서 그녀를 돕던 친구, 케퍼슈타인은 그날의 벅찬 풍경을 이렇게 기록으로 남겼다.
주위에서 환호가 계속 이어지고
행복감과 황홀감이 넘치도록
가득한 광경이었다.
슈만의 눈은 눈물을 글썽거리면서도
기쁨으로 반짝거렸다.
슈만은 먼저 클라라를 꼭 껴안았고,
이어서 한 사람씩 모두 포옹했다.
여태까지 그렇게 기뻐하며
말이 많은 슈만의 모습은 본 적이 없다.
모든 고난을 넘어 마침내 사랑의 결실을 맺은 슈만은 "영원히 당신의 것(Ewig Dein)"이라는 간절한 맹세를 하며 클라라를 향한 변치 않는 사랑을 다짐했다. 그들의 결혼식에는 화려한 팡파르 대신, 오르간의 잔잔하고 경건한 연주만이 조용히 울려 퍼졌다고 한다. 세상 그 어떤 웅장한 음악보다도 더 깊고 진실한 사랑의 선율이, 두 사람의 앞날을 축복으로 가득 채웠다.
나는 그 사랑이 완성된 곳, 세네필트 교회(Schönefeld Church)를 찾았다. 라이프치히 중앙역에서 기차를 타고 20여 분을 이동한다. 창밖으로 한적한 시골 풍경이 스칠 때마다 내 마음은 점점 더 1840년 9월의 어느 특별한 날로 향하고 있었다.
마침내 도착한 세네필트 교회. 나는 로베르트와 클라라 두 사람의 청첩장을 품고 찾아온 오랜 친구처럼, 조심스럽고도 설레는 마음으로 교회 앞에 섰다. 고요한 교회 문은 안타깝게도 굳게 닫혀 있어 내부를 직접 들여다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담장 너머로 보이는 소박하면서도 정갈한 교회의 모습과, 주변을 감싼 평화로운 풍경은 그 자체로 깊은 울림을 주기에 충분했다. 마치 오랜 세월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며, 두 사람의 성스럽고도 간절했던 약속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듯했다.
교회 앞 작은 벤치에 가만히 앉아, 나는 이어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들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을 담아, 슈만이 결혼 전날 클라라에게 바쳤던 그 뜨거운 사랑의 노래, <헌정(Widmung)>을 들었다.
https://youtu.be/u2YPmWWmWVM?si=8CLlfaxppJmf3Fat
당신은 나의 영혼이자 나의 심장이고
당신은 나의 기쁨이자 나의 고통이자
당신의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자
내가 날아오르는 하늘이기도 합니다.
나의 선한 영혼과 나보다 더 나은 나.
로베르트의 진심이, 그의 모든 것이 담긴 그 절절하고도 아름다운 선율이 귓가를 넘어 내 마음속 가장 깊은 곳까지 파고들었다. 가사가 그의 목소리가 되어 클라라에게 영원한 사랑을 고백하는 듯한 그 순간, 뜨거운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나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축복의 인사를 건넸다.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로베르트, 그리고 클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