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온다.
참 해맑게 떨어진다. 이래서 함박눈인가.
하늘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얼굴로 흰 말을 풀어놓고,
우리가 우산이 없든 재설제가 넉넉하지 않든
미끄러져 휘청이거나 보도 안에 잠시 고립되어도
눈은 제 갈 길을 안다는 듯 성실하게 내린다.
내 눈엔 네가 참 순수하다.
생긴 것답게.
아무것도 모른 채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누군가의 어깨, 누군가의 속눈썹
혹은 이름 없는 바닥을 향해
망설임 없이 떨어지는 것.
그래서 슬프다.
깨끗한 것일수록
먼저 더러워지거나 먼저 사라진다는 걸
모른 채 내려오는 동안만큼은
마지막까지 해맑게 떨어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