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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alnuke Jan 03. 2025

제주도 한달살이?

2화. 과연 나도 떠남을 원했던가?

야, 나 같으면 요즘 날씨도 좋은데, 제주도 한달살이부터 해보겠다.


제가 휴직을 했다는 소식이 스며들듯 퍼져나가며, 한 두 명씩 연락이 오는 지인들에게 자주 들었던 말 중 하나였던 것 같아요.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휴직인데, 아직 마음 다스리기가 시작되지 않았고, 강한 자극으로부터 갑자기 해방된 마음은, 오롯한 무관심과 고독에 적응을 해야 했어요. 쉽게 말해서, 한동안 아무 생각이 없을 것이고, 스스로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기를 원하는지 모른다는 말이에요. 무슨 생각이 있어서, 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 선택한 것이 아니니까요.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갈망하는 제주도 한달살이를 해 보면 어떤 기분이 들는지 궁금하기도 했어요. 평일도 자유로운 백수가 되었으니, 가장 저렴한 평일 항공권을 끊어, 7박 8일의 여정으로 제주도 한달살이에 대한 제 마음을 탐색해 보기 위해 제주도로 떠났습니다.


제주공항에 도착해서는, 7박 8일 동안 잡은 성산일출봉 근처 숙소로 박짐을 메고, 버스를 타고 이동했어요. 한라산 근처 도로를 경유하여 종점인 성산까지 약 1시간 조금 넘게 걸렸던 것 같고, 그동안 저는 멍하니 창문만 바라보았던 것 같아요. 게스트하우스에 도착 후, 스테프의 도움을 받아 숙소에 체크인을 하려고 하는데, "7박 8일 맞으시죠?"라고 물어보는 스테프의 질문에 별로 신이 나지 않더라구요. 오히려, '아, 너무 길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제가 원했던 것은 떠남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피부로 와닿았어요. 맞아요. 저는 떠남을 원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스테프에게 양해를 구한 뒤, 그 자리에서 일정을 5박 6일로 조정을 하고 비행기표도 바꿨어요. 


우도에서 하루 백패킹을 하고, 올레길 1코스를 걸어보고, 사려니 숲길도 한 번 걸어보고, 처음 가 보는 LP 카페도 가보고 하니, 시간은 참 잘 갔었습니다. 그리고, 그걸로도 저는 충분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후 나는 왜 떠남을 원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어요. 끊임없고 잦으며 예측불가한 변화로 인해 생겼던 괴로움 때문에 휴식을 하기로 결정했고, 그전에는 다양한 요구사항을 충족시키기 위해 업무적/정치적 이해관계 속에서 여기저기 눈치를 보느라 힘들었었어요. 그전에는 정치적 이유로 해야 하는 업무들과, 앞선 세대로부터 상속받은 것들 중 바뀌어 있지 않은 것들에 대한 변호업무로 무력함을 느꼈었고요, 잦은 업무변경과 주거지 및 환경의 변경으로 어디 한 곳 마음 붙이고 지낸 장소가 없었다는 것, 집에 가고 싶은데 어디가 집인지 몰라 혼란스러웠다는 것, 무엇 하나 꾸준하게 하는 것을 시도하기는 커녕, 무엇을 하고 싶은지 탐색한답시고, 짬짬이 시간을 내고, 먼 길을 떠나, 이것저것 시식만 해왔다는 것이, 제 삶을 피곤하고 고독하게 만들었던 것 같아요. 같은 활동을 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 보다 많은 에너지와 자원을 써야 하고, 그런 환경에 처한 저의 주거환경에 정을 붙이지 못했던 것, 그리고 그 주거환경조차 주기적으로 바뀌었다는 것이 더 이상 제가 "떠남"을 원하지 않게 된 이유이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정말로 원한 것은 "떠남"이 아니라 그동안 그토록 갖기 힘들었던 "정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출처 : Pixabay


"좋은 여행 되세요. 다음에 기회 되면 또 뵙겠지요." 하고 기약 없는 작별을 고해야 하는 동행자가 아닌, "다음주에 또 만나." 하고 인사할 수 있는 지인들을 원했었고, 추억으로 곱씹을 그 때, 그 순간 설레는 감정이 아닌, 내일의 그것도 오늘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보통의 사랑을 원했었으며, 꾸준하게 같은 곳 같은 장소에서 나를 돌볼 수 있는 규칙적인 일상생활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물론, 현대사회에서 유토피아적인 사고와 욕망이라는 것 알고 있는데, 그렇게 따지면 제주도 한달살기나 세계여행은 그런 사고나 욕망이 아니던가요? 성장한 곳과 대학교, 대학원, 직장 내 여러 개의 부서들의 지리적 위치가 달라서 여기저기 이동해야 했던 저에게, 마음 붙이고 살 집과 꾸준히 연결되는 사회관계망이 저에게는 정착이라는 이름의 욕망이었던 것 같아요, 어떤 사람은 떠남이 그것일 수도 있겠지만요. 그래서, 불나방처럼 여기저기 돌아다니지 않고, 한 곳에 정착하는 것에 집중하는 6개월을 보내기로 마음먹어 보았습니다.


출처 : Pixabay
출처 : Pixabay


현재 살고 있는 곳으로 돌아온 저는, 6개월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기로 합니다.

그리고, 그 생각을 하는데 한참이라는 시간이 걸렸었어요. 많은 시행착오도 겪었었구요.

도심에서 규칙적이고 안정적인 삶을 직업 없이 살아야 한다면, 그 시간은 무엇으로 채워 넣어야 하는지 생각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동안 출근을 해왔던 관성을 극복해야 했고, 이렇다 할 취미도 없었으며, 컴퓨터 게임을 즐겨하는 것도 아니었었어요. 아무런 흔적 없는 들판에서 어쩌다 작은 오솔길이나 냇물이라도 만나면 그것들에 심취해서 무작정 따라가고, 사라지면 공허해 할 제 자신을 잘 알기에 더욱 조심스러워질 수 밖에 없을 거란 것도 알고 있었지요. 적당한 오솔길과 냇물이 적당히 모여있는 곳을 찾아 심리적으로 정착하는 것이 우선순위 같아 보이더라구요. 작은 도시는 대도시보다 선택지가 많지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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