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백패킹
휴직기간동안 해보고 싶었던 것들 중 하나가 백패킹이었어요. 백패킹이라 함은 텐트와 침낭과 매트, 그리고 여벌의 옷과 음식을 포함한 박짐을 가방에 넣고, 그 가방을 메고 트레킹이나 등산을 하고, 자연 속에서 숙영지를 찾아 텐트를 설치하고, 식사를 하고,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 짐을 정리하고, 귀신같이 원래 오지 않았던 것처럼 그 자리를 복구시켜 놓고 떠나는 행위를 말합니다. 어른들은 비박이라고 부르시구요.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선천적으로 다리의 근력과 지구력이 약해서 등산을 잘하지 못하고, 가파른 오르막을 유독 힘들어합니다. 무거운 베낭을 메고 등산을 하면 더더더욱 힘이 들겠지요. 그래서, 백패킹도 출발하기 전에 다가올 힘듦에 제법 무서워하는 편이고, 출발하기 전부터 대답하기 어려운 줄 알면서도 얼마나 힘드냐고 앵무새처럼 물어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패킹을 해보고 싶었던 이유는 장비놀음을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아직 연락이 닿는 군시절을 같이 보냈던 선임하사가 있습니다. 저희 둘의 공통점은 힘든 건 싫어하는데 아웃도어 활동을 좋아한다는 점입니다. 즉, 이러이러한 장비로 자연에서 오늘 하루 살아남았다는 것에 쾌감을 느끼는 성격이라는 겁니다. 필요 없는 장비일 수 있지만, 굳이 그 장비를 활용할 명분을 만드는 것을 좋아하며, 창의적인 발상으로 기존의 장비를 대체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에 희열을 느낍니다. 근데, 그 선임하사는 자동차를 타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을 하고, 저는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이동을 해서 그 선임하사가 저보다 좀 더 뚱뚱합니다. 백패킹은 장비놀음과 생존능력 확인욕구를 백패킹이 충족시켜 주기 때문에, 무거운 짐을 지고 등산하는 것이 힘들지라도 한 번 해보고 싶었습니다.
자전거를 탈 일이 뜸해질 때 즈음, 저도 저만의 주말을 보내기 위해 백패킹 동호회를 찾아 가입을 했습니다. 값비싼 백패킹 용품을 구비함에 있어서 중복투자를 하지 않으려면, 다른 사람들이 어떤 용품을 사용하는지 관찰해 보고 후기를 들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산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단체로 있는 것이 구난이나 구조요청에 있어서 안전합니다. 마지막으로, 날이 어두워지고 나면 별로 할 일이 없기 때문에,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싶거나, 생각할 것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외롭고 고독합니다. 동행들끼리 옹기종기 모여서 담소를 나누며 음식을 먹고 술 한잔 기울이는 재미도 있고, 처음에는 어디로 떠나야 할지 모르는 박지정보도 동호회를 통해 공유되기 때문에, 종종 혼자 백패킹을 간다 하더라도 같이 백패킹을 정기적으로 할 사람이 없다면, 백패킹 동호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 둘 백패킹 용품과 옷가지를 사기 시작하니, 수백만 원 쓰는 것은 일도 아니었어요, 중고로도 많이 샀는데 말이지요. 사계절이 너무 뚜렷한 우리나라는 여름용 장비, 간절기용 장비, 겨울용 장비가 완전히 구분되기 때문에 여러 종류를 살 수밖에 없었던 것도 많은 비용이 들었던 이유 중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붙임성이 좋고 낯을 가리지 않는 성격은 아니라서, 모임에 많이 나가지는 못했지만 나름 산이며 계곡이며 바다며 많이 다녔던 것 같습니다. 물론, 혼자 떠난 적도 있었구요.
백패킹의 매력에 대해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여느 아웃도어 의류매장에서 어떤 티셔츠에 적힌 문구 중에 아주 인상 깊은 문구가 있었어요.
We hike because people sucks.
사람들 사이에서 치이는데 지친 자들이 하이킹(백패킹)을 간다는 뜻인데, 격하게 공감이 되었었어요. 1) 박지에서는 나 또는 우리밖에 없다면, 사람들에게 치이지 않고 즐겁게 웃어도 되고, 크게 대화를 해도 되지요. 2) 제가 술을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잘 마시는 편도 아닌데, 박지에서 마시는 소주는 이상하게 맛이 있습니다. 3) 너무 늦지 않는 적당한 시간(대개 밤 10시에서 11시 사이)에 자리를 파하고 각자의 시간을 가지니, 내향인들에게도 큰 부담이 없습니다. 4) 남들이 오지 않는 시간에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아름다운 것들이 많습니다. 멋진 아침 일출이라던가, 쏟아질 것 같은 별이라던가, 멋진 야경이라던가, 발 밑에 펼쳐진 수묵화 같은 아침의 운해 같은 것들처럼 말이죠. 5) 각자의 음식과 술과 물은 각자가 챙겨 오기 때문에 "너 먹을 것만 챙겨 왔냐?" 하는 식탐문화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가방이 무거우니 음식을 과하게 싸오지 않고, 다른 사람들 먹을 것까지 골고루 다 챙겨 오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지요. 보통 준비할 음식을 나누거나, 아니면 알아서 각자 챙겨 오는 것이 국룰입니다.
Pack it in, Pack it out.
6) 싸서 들어간 것, 싸서 나오라는 뜻입니다. 다음날 아침 모든 것을 철수했을 때, 아무것도 남지 않은 지난밤 나의 잠자리를 보면 기분이 뿌듯합니다. 허투루 가져온 음식이 없다는 이야기며, 설거지 등 각종 휴지나 물티슈 같은 것들을 최소화해서 사용했고, 쓰레기봉투에 잘 담았다는 뜻이며, 야외에서도 가방에 그 많은 짐들을 차곡차곡 잘 넣었다는 증거이자, 어제 먹은 음식과 물만큼 가방이 가벼워졌다는 이야기니까요. 7) 그리고 마지막으로, 생각할 시간이 많습니다. 밤에 소주 한잔 걸치고 조금 쌀쌀한 바람맞으며 술을 깨고 있노라면, 이런저런 생각이 들면서 상념에 잠기기도 하고, 괜스레 울적해지기도 하는데, 복잡한 생각이나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아도, 나름 감정이 정리될 때가 많습니다. 자조적으로 정리되거나 자포자기형으로 정리될 때도 있어서 문제 이긴 하지만요.
생각보다 백패킹 박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국립공원에서는 야영이 무조건 금지되어 있구요, 국립공원이 아니더라도 야영이 가능한 산과 그렇지 못한 산이 구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박지정보는 동호회의 자산과 같은 것이라, 공유를 잘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박지정보의 수집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따라다녀야 합니다.
이 동호회 역시 한국사람들이 운영하는 곳이라, 다툼이 자주 일어나기도 하고, 인성이 좋지 않은 사람들도 걸러지지 않고 종종 있습니다. 주사가 심한 사람도 있고,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한 번 만나면 적어도 1박 2일은 같이 보내기 때문에 다른 모임에 비해 쉽고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그리고, 헤어질 때 "다음 박지에서 만나요!" 하고 헤어지니, 상호 간의 관계도 깔끔하게 정립되는 편이구요. 사석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웬만하면 백패킹을 통해서 만나는 일이 더 많으니까요.
미혼이거나 연애를 하고 있지 않다면, 정기적인 취미활동으로는 좋은 것 같습니다. 매번 새로운 경치를 볼 수 있어서, "굳이 해외여행을 가야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다만, 건강한 무릎이 필요하니, 경험해 보실 거면 미루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백패킹을 위해서 필요한 장비(간절기 기준)들을 간략히 소개해드리며 글을 갈무리하겠습니다.
1. 텐트
2. 침낭
3. 백패킹용 매트리스
4. 운행복 상의(inner layer, 고어텍스 바람막이, 플리스 또는 합성소재로 된 middle layer)
5. 운행복 하의
6. 박지용 상의(마른 inner layer, 경량패딩, 필요시 브린제 상의)
7. 박지용 하의(부티 - 발 시려요, 우모복 바지 또는 운행복 하의 그대로 착용, 잘 때 입을 브린제 하의)
8. 등산양말 3켤레(첫날, 박지, 둘째 날)
9. 젓가락
10. 수저
11. 앞접시
12. 컵
13. 가열기구
14. 팬
15. 물통(날진물통 추천)
16. 베낭
17. 등산스틱
18. 등산화
19. 반다라(땀 닦는 손수건)
20. 헤드랜턴
21. 박지용 랜턴(골제로 등)
22. 방석
23. 백패킹용 경량의자
24. 좌식용 테이블
25. 입식용 테이블
26. 물건들을 정리해서 넣을 D팩
27. 텐트 등 펙을 박을 경량 펙망치
28. 알콜샤워티슈
29. 세면도구 등
30. 핫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