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너는 내 마음을 아는 것 같아
모두는 파양 된 강아지였어요.
어떤 강아지를 키우고 있는 아주머니가 계셨는데, 그 강아지의 나이가 12살이 넘어가다 보니, 그 강아지의 미래의 빈자리를 걱정해서였는지는 몰라도, 그 아주머니의 아들이 아기강아지 한 마리를 분양받아 자기 어머니께 선물을 했다고 해요. 그런데, 기존에 키우던 강아지가 너무 나이 들고나서, 다른 젊은 강아지를 입양하면, 서로 친구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이 자기 자신을 손절하고, 젊고 건강한 강아지로 갈아타는구나" 하고 생각한다고 한다더라구요. 그 아주머니는 기존에 키우던 강아지를 보호하려는 마음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새로 입양된 아기강아지를 제대로 돌보지 않고, 구박하고 윽박지르며 사랑과 관심을 주지 않고 길렀나 봐요.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아들이 그 아기 강아지가 안쓰러웠던 나머지, 더 이상 어머니 댁에서 키우면 안 되겠다고 생각해서, 새로 입양할 사람을 찾기로 했데요. 그렇게 그 아기 강아지는 임시로 이 집에서 2달, 저 집에서 3달씩 옮겨 다니다가, 대구까지 내려와서 고모집을 거쳐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혼자 지내시는 할머니댁까지 오게 되었어요.
강아지라고 생각하지 않고 개라고 평생 생각해 오신, 가족이라 생각하지 않고 키우는 짐승이라 평생 생각해 오신 할머니께서, 그 아기 강아지를 제대로 케어하신다는 것은 불가능했지요. 목욕을 제대로 못해 늘 지저분하게 있었고, 피부병을 달고 살았어요. 공교롭게 할머니의 낙상사고로 병원에 잠시 입원하시게 되었는데, 그 사이에 그 아기 강아지는 저희 부모님 집으로 오게 되었고, 이곳이 생후 1년이 조금 넘은 강아지의 안정된 집이 되었습니다.
이 강아지의 이름을 "모두"라고 지었어요. 작명에 대한 영감은 다른 고모네 집에서 키우는 "사랑"이와 "해요"에게서 얻었습니다. 모두는 견종이 푸들로 알고 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말티즈가 조금 섞인 말티푸에 가까운 견종이 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한 쪽 뒷다리를 조금씩 저는 것을 보면 유전병인 슬개골 이슈가 있는 아이라, 강아지 공장에서 태어난 아이라고 추측하고 있구요. 그리고, 생후 1년 내에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고, 사회화 과정을 겪어야 하는데, 그 골든타임을 놓쳐서 사람과의 교감능력이 떨어지는 것인지, 주인이라는 개념이 없는 것인지는 몰라도, 이기적이고, 제멋대로인 면모가 있습니다. 그래도, 그런 모두를 우리 가족 모두 사랑하고 좋아합니다.
이유는 모르겠습니다만, 모두는 저를 유독 따릅니다. 물론, 모두는 부모님 댁에서 살고 있고, 모두의 밥도, 목욕도, 산책도 대부분 부모님께서 시켜주고 계시지만, 제가 부모님 댁에 오면 저에게 딱 붙어서 잠도 같이 자고, 산책도 같이 나가자고 조릅니다.
모두를 보면 말로 표현하기 힘든, 조금은 공감되는 감정이 생깁니다. 마치 "너도 여기저기 떠돈다고 힘들었구나, 나처럼"이라는 감정을 서로 공유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모두는 또 버려질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사람에 대한 불신 때문인지, 처음 모두가 부모님 댁에 와서 마음의 문을 여는데 까지, 제법 시간이 걸렸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모두를 온전한 가족으로 받아들였을지 몰라도 어쩌면, 모두는 아직도 수 년 째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열고 있는 중인지도 모릅니다. 마치 모두의 눈빛이 저에게 "또 버려지거나 내쳐지는 것이 두려워 아무에게나 마음을 열기가 쉽진 않지?"라는 메세지를 보내는 것 같은 느낌처럼요.
모두는 제 마음속에, 어느 한 군데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기만 하는 감정을 과연 알아차린 것일까요? 휴직을 하기 전, 회식 등으로 인해 술을 마실 일이 있어 부모님 댁에서 잠을 잘 때에도 모두는 제 곁을 밤새 지키며 잠을 잤고, 모두가 보고 싶어서 부모님 댁에 갈 때에도 저와 좋은 친구가 되어주었습니다. 붙임성이 없고, 이기적인 강아지가 저에게는 곁을 떠나지 않는 츤데레가 되어 위로를 해 주는 것 같아, 강아지 이상의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소중한 가족구성원입니다.
휴직을 하면서 버킷리스트에 적었던 것들 중 하나가, "모두와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기" 였어요. 같이 살지 않기 때문에 어머니처럼 매일 함께 살 맞대로 살 수는 없지만, 모두와 함께 보내는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했습니다. 일방적이긴 해도 모두와 대화도 많이 나누고 싶었습니다. 다른 강아지들과 달리, 실내배변을 하지 못해서 하루 세 번은 밖에 산책을 나가야 하고, 나갈 때마다 제 갈 길을 사람이 따라오게 만드는 얄미운 면모가 있긴 하지만, 서로 고집을 부리며 티격태격했던 산책도 지금 이 시점에서 즐겁고 아름다운 추억이네요. 집에 들어가기 전, 집 앞 벤치에 나란히 앉아서 제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 무슨 말인지 알아듣는 것인지 아닌지 몰라도, 눈을 껌뻑이며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던 것도 많이 생각날 것 같습니다.
오라고 해도 잘 오지 않는 강아지, 터그놀이 하고 싶을 때만 다가오는 강아지, 외출할 낌새에 따라나가려고 조르는 강아지가 모두이지만, 잠을 잘 때나 기분이 울적할 때에는 이제 적당한 거리에서, 적어도 저를 위로해 줄 수 있는 그런 강아지가 되어 준 것 같아 모두에게 참 고맙습니다.
휴직기간 동안에 날씨가 좋은 가을까지는 함께 공원도 자주 가서 뛰어놀기도 하고, 바다로 바람을 쐬러 가기도 하고, 단풍구경도 같이 갔었죠, 마치 형제처럼요. 모두는 저에게 좋은 대화상대였습니다. 제가 하는 말을 공감하고 이해한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사람보다 이야기하기가 편할 때도 많았고, 따뜻한 체온과 등을 내어주는 스킨십으로 위로를 받을 때도 많았습니다.
한참 울적하고 기운이 없을 때에는, 여김 없이 부모님 댁에 모두를 보러 갔었던 것 같아요. 언제나 얼굴을 핥아주며 반겨주는 모두를 만나면, 마음이 조금 밝아지는 것을 느꼈었으니까요. 저만의 착각이라도 상관없지만, 그동안 모두는 저의 마음을 알아주는 좋은 친구이자 형제가 되어주고 있었습니다.
혼자서도 씩씩하고 고고하며, 쿨하게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지만, 난 형아의 마음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아.
라고, 모두는 매번 저에게 이야기하면서요.
얼마 전, 어머니와 모두와 저는 셋이 함께 겨울바다로 차박캠핑을 다녀왔습니다. 추워서 아무도 없었던 해변에서 목줄 없이 한 번 뛰게 해 주었어요. 부르면 도통 오질 않으니, 산책을 나가서 목줄을 풀어놓아도 되는 환경이 있어도, 위험할까봐 그럴 수가 없어서 그동안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집보다 춥고 좁은 차 안에서 옹기종기 붙어서 하룻밤을 보내는 것으로, 아마 저의 여섯 달 동안의 휴직기간 마침표를 찍었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동안, 모두와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낼 수 있어서 참 행복했었습니다. 그리고, 모두의 이야기는 들어줄 수가 없다는 것이 미안하고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