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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alnuke Jan 09. 2025

하고 싶은 것, 금세 안 떠오르던데요.

8화. 취미나 특기가 혹시 있으신가요?

지금 생각해 보면 제게 필요했던 것은 길잡이였지 않았나 싶습니다.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가장 크게 변화했던 점은, 고등학교 때까지 경험했던 "좋은 대학으로의 진학을 위한 공부에 대한 강한 독려"에서 "거의 완벽에 가까운 방치"였던 것 같아요. 아무도 가만히 있는다고 잔소리하는 사람도 없었고, 잔소리하는 사람이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이제 "공부"라는 것이 더 이상 "수능"을 특정하는 것이 아닌, 너무 광범위한 범주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그 잔소리의 목적어가 뚜렷하지 않았지요. 


출처 : Pixabay


어른들은 자식의 빠른 경제적 독립을 누구라도 원할 터, 대학에 갔으니 빠른 취업을 했으면 좋겠지만 이제 무엇을 독려해야 하는지 그들 역시 몰랐기 때문에 방치하는 마음이 마냥 편하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반면, 자식들은 공부에만 쏟아부었던 그 많던 시간들을 이제 어디다 써야 할지 잘 알지 못해서, 무엇이라도 시작을 하고 싶은데, 어디서 찾아야 할지 몰라, 마음속으로 발만 동동 굴렀던 마음을, 호기롭게 아무렇지도 않은 척 참석했던 미팅과 각종 술자리로 가렸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출처 : Pixabay


시간이 지나고, 군대를 다녀오면 그때서야 장래를 고민하게 되는데, 최상위권 대학교를 다녔다면 자대 대학원으로 진학한 선배들이 많은 경우는 자연스레 그 길을 따라 대학원으로 진학하여 특정 분야의 전문가로서 장래를 도모하였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선행사례가 흔치 않을 테니, 대학원 진학이라는 선택지가 자연스럽게 고려되는 분위기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일찍이 대학교 성적에 대한 장래가치를 갈음했던 친구들 중에서는, 각종 고시나 각종 전문대학원으로의 진학을 준비해서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공직이나 전문직으로 진로를 일찍이 정하여 준비했던 것 같습니다. 형편이 여의치 않았거나, 아니면 정보가 닿지 않아 다른 선택지를 몰랐거나, 너무 순진했거나, 오히려 그것을 애초에 원했던 나머지는 대부분 취업준비를 시작하게 되었지요. 일반화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제 기억과 생각은 그랬었습니다.


출처 : Pixabay


고등학교 때 공부에 더 전념하지 못한 것을 후회했던 저는 대학교에 들어가서, 여기서라도 열심히 해보자는 마음으로 학과공부에 전념을 다하게 되었습니다. 대학교수들은 교등학교 선생님들처럼 진로를 안내해 주는 멘토들이 아닌데, 그들의 인정이 저의 진로에 대한 불안을 일시적으로 해소시켜 주니, 더 학과공부에만 매진했던 것 같아요. 영어시험 성적 등 정량적으로 계량되는 점수들을 제외하고, 뚜렷한 세부종목이 정해져 있지 않은 취업준비활동을 할 때, 비로소 친구들 각자의 성향이 처음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제일 주관이 뚜렷하고, 대세를 찾아가는 유형, 그 유형을 따라가는 유형, 틈새시장을 노리는 유형, 양적실적을 노리는 유형, 질적실적을 성취해 내는 유형 등 다양한 유형이 있었습니다. 2010년 전후 당시의 취업준비활동은 뚜렷한 방향성이나 목적성 없이, 취업시장에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부족한 학력을 조금이라도 만회해 보려는 한 치 앞을 예상하기 힘든 혼란스러운 활동 같았습니다. 지금에서야 무슨 분야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어떤 회사에서 어떤 분야가 중요시되는지 알려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참 좋았겠다 싶은 생각이 들지만, 당시엔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는 이미 안정성, 연봉, 근무강도를 감안하여 취업을 하기 위한 보이지 않는 회사별 "문턱스펙"이 대학교 입결처럼 존재했고, 그 순위에 저도 목을 메었던 것 같습니다, 저의 성향이나 적성은 돌아보지 못한 채.  


출처 : Pixabay


기죽은 10대를 보냈지만, 20대 대학생이 되어서는 학과성적이 좋았던, 그래서 자존심인지 자존감인지 구분되지 않는 감정이 과도했었던 저는, 오만한 생각인지는 몰라도 따르고 싶었던 멘토를 만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점점 시간이 흘러가니, 결국 "나는 나만의 길을 만들어가겠다" 하고 선언하고서는 양적실적에 집중을 했습니다. 높은 영어성적을 만들고, 각종 자격증을 취득하고, 보여주기식 봉사활동 실적 한 두 개 정도 넣고 나니, 높은 대학교 학점과 장학생 이력이 비로소 취업 경쟁력이 되긴 하더라구요. 그 경쟁력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를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그 내용보다 결국 본인의 자신감에 대한 객관적 타당성인데 말이지요. 저는 길잡이 없이 혼자서도 제 길을 잘 헤쳐나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의식 중에는 좋은 길잡이를 간절히 원하고 있으면서도요. 뚜렷하지는 않지만 저의 성향과 적성에 대한 성찰이 갈무리가 될 무렵, 당시에는 "문턱스펙"이 제법 높았던 공기업에 합격을 하게 되었지요. 부모님의 희망과 "문턱스펙"에 대한 아쉬움은 그 갈무리를 채 끝내지 못한 채, 제가 그 문턱을 넘게 만들었습니다.


출처 : Pixabay


시간이 지날수록 "만들고 가고 있었던 나만의 길"은 황량한 벌판 속에서 헤매다가, 조그만 오솔길이나 냇물이라도 만나면 몰입해서 따라가게 되는 반가운 마음과, 그것들이 막다른 길이었거나 고여있는 물웅덩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 또는 끝까지 따라가보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려야 할 때 느끼는 허망함의 반복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외면했었던 것 같아요. 제가 가고 있었던 길은 공공분야에서 생활하기에는 맞지 않는 길이며, 저에게도 예외는 아닐 텐데 말이지요.




그렇게 매 번 오솔길과 냇물만 따라가다 돌아왔다를 반복하다 보니, 어렸을 땐 장점이었던 다양한 것을 경험했던 삶이, 중년을 바라볼 때에는 어느 하나 꾸준하게 해 본 적 없는 삶이 되어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리고, 슬프게도 나만의 길의 종착지를 찾으려고 여러 가지 시도를 하고 변화를 추구했던, 어느 하나 꾸준하게 해 본 적 없는 삶은, 특기는 커녕 취미의 부재라는 부작용을 낳더라구요. 컴퓨터 게임도 어릴 때 해야 잘하는데, 이젠 다른 사람과 어울리지 못 할 만큼의 넘지 못할 실력의 벽이 생겨버렸고, 악기를 배우려고 해도 감당하지 못할 많은 시간적 자원을 투입해야 하지요. 


출처 : Pixabay


여섯 달의 휴직기간, 그것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지 금세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다시, 오솔길과 냇물을 찾으러 떠나야 합니다. 그 여정은 여섯 달 보다 더 길지도 모르는데 말이지요.


출처 : Pixabay


현재 상황이 어려워서 휴직을 고민하고 있는 분들, 그중에서 독신이신 분들 중, 뚜렷한 취미 없이 앞만 보고 열심히 달리셨거나, 저처럼 벌판에서 헤매고 계셨던 분들 중 저와 같은 고민을 하고 계신 분들이 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헬스PT, 수영, 백패킹, 여행, 영어스터디, 산악자전거, 요가, 강아지 사랑하기, 글쓰기, 지난 사진 정리하기를 어떤 것은 짧게, 또 어떤 것은 길게 해 봤었어요. 여섯 달이 끝나가는 지금 이 순간, 즐거웠거나 의미있었다고 생각하는 오솔길과 냇물들은 백패킹, 요가, 강아지 사랑하기, 글쓰기, 지난 사진 정리하기(밑줄은 해당 글 링크입니다) 였던 것 같아요.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고, 선호가 다르겠지만, 저는 그랬었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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