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화 누르기

9화. 누구를 미워하는 마음일까?

by Cafe du Monde
난 어쩌다 이런 '특별한' 선택을 하게 되었는가?


출처 : Pixabay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은 직장 내 괴롭힘이었어요. 예민한 사람은 스스로에 대한 의심이 많다고 합니다. 제가 미움받을 짓을 했는지, 제가 일을 잘 못 처리 한 것인지, 제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것인지, 심지어 그가 기분이 나쁠 때, 제가 그의 눈앞에 있었던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 대한 자기검열이 날이 갈수록 깊어지면서, 겨우 꼿꼿하게 세워놓았던 자존감은 다시 쭈그려 앉게 되었습니다. 주변에서 "저분이 N번째 타깃인가 봐."라는 말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마음의 긴장이 조금 풀리며, 저를 보듬어 줄 여유가 생겼던 것 같습니다.


제 앞에 다른 타겟이었던 분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저항을 했거나,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신고를 했다고 합니다. 저는 조직에서 취해줄 조치에 기대기보다 저 스스로 떠나 드리자는 마음으로 휴직을 결정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다른 말로, 조직에서 취해줄 조치를 신뢰하지 못하기에, 번번이 소용없었던 신고보다 휴직이라는 회피를 선택했다는 말이지요. 또한, 휴직은 잔뜩 약해져서 쪼그려 앉아 제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나름대로 생각해 낸 가장 평화적인 저항이기도 했습니다.


ai-generated-8973952_1920.png 출처 : Pixabay


직장 내 괴롭힘은 괴롭히고자 하는 마음을 잘 숨길 수가 있기 때문에, 악행이 최소한으로만 드러난다는 것과 저 화살이 나에게 오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는 방관자들이 많아 고독하다는 것이 가장 힘들더군요. 그리고, 괴롭힘을 참지 못한 것은 저의 사회적 평판에 부정적으로 반영이 되지만, 괴롭힘을 참아냈다는 것은 아무 득이 되는 것이 없다는 것도 조금만 더 견뎌보자는 마음가짐을 오래 먹지 못하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선택한 결정이니 할 말은 없습니다만,


왜 피해자가 피해를 봐야할까?


person-2244036.jpg 출처 : Pixabay


하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습니다. 여섯 달 동안 무엇으로 채울지 몰라 혼란스러운 마음, 무기력함과의 처절한 싸움, 경제적인 타격, 하루 세 번씩 먹어야 하는 약, 고립된 외로운 생활 등 어려움들이 있을 시간 등 다른 어려움들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그 어려움들이 종종 올라오는 화를 통해 저를 고통스럽게 만들기도 하고 나쁜 감정을 일시적으로 분출시켜 주기도 하겠지요.


golf-1372528.jpg 출처 : Pixabay


화라는 것은 고통의 자서전을 쓰게 만들더군요. 그래서 쉽게 풀리지 않는 감정이 되나 봅니다. 화가 잔뜩 나셔서 허공에다 대고 화를 내고 계신 분들을 길거리에서 보면, 그분이 어쩌다 저런 행동을 하시게 되었는지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저렇게 되기 전에 화를 잘 눌러야 하는데, 그게 쉬웠다면 허공에 화를 내고 계시진 않겠지요.


bullying-7375847.png 출처 : Pixabay


처음에는 괴롭힌 그분에게 화가 났고, 그 분과 같은 분들이 한 두 명이 아닌 조직문화와 회사에 화가 났고,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가길 희망하시고 강권하신 부모님께 화가 났고, 가진 것이 없어서 그만두지 못하는 저의 통장잔고에 화가 났어요. 그리고 결국, 들판에서 아직까지 헤메 뚜렷한 자아도 없이 이리차면 이리로 가고 저리차면 저리로 갔던 저의 지난날과 제 자신에게 화가 나더라구요.


ai-generated-8325999.png 출처 : Pixabay


그리고는 결국 제 자신에게 화가 나기 시작하니, 고통의 자서전의 페이지는 빠르게 그 숫자가 늘어나기 시작하고, 그 속에는 검증되지 않은 왜곡되었을지도 모르는 기억과 감정이 채워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 결국 내가 멍청했어."라고 생각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향하는 화를 막아본다고, 막아지는 것은 아니더라구요. 나를 멍청하게 만든 이유들을 다시 찾기 시작하며, 두 번째, 세 번째 속편이 계속해서 발간될 테니까요. 분노의 자서전을 쓰는 것을 멈추지 않으면, 결국 유년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가깝고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고 그들의 마음까지 할퀴게 되기도 하더라구요.


물론, 그 시작은 다른 사람이었고, 저 역시 스스로 망쳐버린 그 사람의 관계이자 할퀴어버린 마음이겠지요. 그러나, 그로 인해서 저도 담아둘 가치가 없는 기억이 생겼고, 그것이 저의 소중한 것들까지도 화로 물들이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deaf-3737373.jpg 출처 : Pixabay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라.


저는 이 말이 가장 무책임한 말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런 말을 자주 하는 사람들이 상처 주거나 무책임한 말을 많이 하는 편이었고, 월급은 욕먹는 역할이 포함된 댓가라며, 인격을 팔아서 버는 돈이라는 구시대적 사고를 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물론 오롯이 제 경험에 의한 확증편향입니다.


귀와 귀 사이에는 뇌가 있고 그 뇌가 그 말을 먹어버렸는데, 어찌 다른 쪽 귀로 흘러나갈 수 있단 말입니까. 특히, 오늘 하루만 만나고 말 사람이 아니라면 더더욱 실천하기 어려운 말이지요. 내일도 모레도, 그 사람을 볼 때마다 상기될 말이고, 그 말을 잊기도 전에 다른 말이 또 한 귀로 들어올 테니 말이지요.


fist-1148029.jpg 출처 : Pixabay


아무렇지 않은 척 살 수는 없었습니다. 배가 가라앉고 있을 때 착한 얼굴로 웃으며 참는다고 다시 떠오르는 것은 아니니까요. 뇌 속에 쌓여버린 흘려버려야 하는 정보들 때문에 나게 되는 화는, 결국 스스로에게로 향하기도 하는 것이 화를 누르기 가장 어려운 이유 중 하나였어요. 성인군자가 아니기 때문에, 용서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인격이 더 성장한다면 가능할지 몰라도, 당장에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은 적어도 1명은 넘습니다.


woman-6028423.jpg 출처 : Pixabay


아직도 오늘의 제 문체에서 화가 묻어 나오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일기든 블로그든 휴직기간 동안 아무런 외부자극이 없을 때, 글을 써보는 것이 나 스스로와 깊은 대화를 나누어 보고, 그동안 겪었던 경험을 상기하며 느꼈던 점들을 정리하며, 자아를 부축하는 데에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름 모를 익명의 분들이지만 꾸준히 제 글을 읽으러 방문해 주시는 사람들 덕분에, 고독과 고립속에서 불안정한 감정이 무작정 커지거나 망상으로 빠지지 아니하고, 제 감정을 공감받는 것 같아 화를 건전하게 누그러뜨리는데 효과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적어도, 정기적으로 약을 타러 가며 한정된 시간 동안 한정된 주제에 대해 상담을 나누고, 처방전을 받아오는 의사 선생님만큼 말이지요.


구김살이 만들어 질 수 밖에 없는 환경에서 지냈지만, 기왕 생긴 구김살, 적당히 다리고 칠해서, 저의 구김살 타인에게 위로가 되는 것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