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자포자기한 것인지 상실이 무서웠던 것인지
휴직기간 동안 당연히 소득은 줄어들어요. 그럼에도 여섯 달 동안 두 번의 금전적 타격을 받았어요. 그러나, 여느 때와는 다르게 그 타격은 오히려 무감각하게 느껴졌습니다.
휴직을 하면 급여 관련 규정에 따라 일정 기간 동안 기본급의 정해진 요율을 지급받습니다. 저축은 할 수 없고, 공과금과 집세정도 내고 나면 남을 만큼의 금액이었어요. 휴직기간동안 하지 못했던 저축 역시 기회비용이며, 오르지 않는 호봉도 기회비용입니다. 육아휴직은 자녀의 양육이라는 금전적으로 측정하기 힘든 가치가 있으니, 실과 익에 대해 언급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지만, 질병휴직은 단기적으로도 장기적으로도 생각보다 비싼 의사결정이었어요.
물론, 그게 어디냐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공공기관에서 근무하며 얻게 되는 안정성을 한 번 이용했다고 스스로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철저하게 호봉에 따라 급여를 받고, 정부지침에 따라 급여가 평생에 걸쳐 오르며, 인센티브가 있다 하더라도 그 상한액이 닫혀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기회소득이 한정적이니, 기회비용이라도 줄여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도 듭니다.
줄어든 생활비, 원치 않았던 기회비용, 회사 내 경력에 그어진 한 줄 등이 참 쓰라리긴 했습니다. 도망칠 곳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선택했던 외통수라고 생각하니 억울했습니다. 그렇다고 아르바이트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 손실을 메꿀 수 있는 것은 투자수익밖에 없었어요. 마이너스통장에서 큰 돈을 꺼내서 나름대로 소스를 얻었다고 생각한 주식종목을 샀습니다. 미국주식이나 코인을 했으면 큰 돈을 벌었겠지만, 안타깝게도 국내주식을 샀고, 하락장에 스트레스 받는 것이 싫어서 얼마 견디지 못하고 손절하며 내던져버렸습니다.
저에게는 오래된 친구가 있습니다. 자주 연락하진 않지만, 1년에 한 두 번 정도 연락합니다. 그 친구는 결혼을 해서 최근 아이가 생겼고, 저는 아직까지 독신입니다. 서로 인생의 관심사가 점점 달라지고 있어, 공통된 대화소재가 사라져 가고 있는 그런 시기를 겪고 있는 그런 사이입니다.
1년에 한 두 번 정도 연락해도 저는 가장 가까운 친구라고 생각합니다. 그 친구와 그 친구의 배우자는 아파트 투자에 관심이 많았어서, 코로나 전후로 큰 돈을 벌었습니다. 그 후에도 비싼 가격을 지불하고서도 아파트 매입을 계속해 나갔었다고 합니다. 가용할 수 있는 모든 대출을 다 받아서 대기업에 다님에도 월급은 이자로 모두 나가고 있는 지경이라고 했습니다. 부동산 가격이 꺾이며, 전세가격도 자연스레 꺾이기 시작했고, 비싼 가격을 주고 매입했던 아파트들의 역전세로 형편이 녹록지 않다며, 언제까지 갚을 테니 천만 원만 빌려달라는 전화를 어느 날 받았습니다. 20년을 넘게 알아오던 사이, 서로의 성향을 서로 안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이, 만나면 옛 생각에 마음을 청춘으로 만들어 주는 사이는 "미안하지만, 나 언제 갚을 수 있을지 몰라."라는 메세지를 조그만 쪽지에 적어 몰래 건네주었어요. 저는 받는데 오래 걸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빌려주었습니다.
저도, 그 친구도 누군가한테 무엇을 빌리거나 빌려주는 것을 굉장히 싫어합니다. 그리고, 빌려주고 나면 못 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편안하게 다른 사람의 계좌로 천만 원을 송금해 주었습니다.
저는 "기왕 이렇게 된 것 더 잃을 것이 무엇이냐라는 마음"으로 자포자기하고 싶었던 마음이었을까요, 아니면 "그렇지 않아도 없고 고독한 삶 더 이상 잃으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인간관계로 부터 더 고립되는 것이 두려워서였을까요, 리스크와 예상했던 타격에 오히려 무덤덤했거나 무덤덤한 척 스스로를 속이고 있어 생각보다 멘탈이 흔들리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주식도 친구에게 빌려준 돈도 기회의 보전을 원했던 것인지, 상실을 두려워했던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풀옵션 소나타 한 대를 날리고 나서야 어떤 마음이었던지 간에, 그 순간 선택에 대한 후회가 크지는 않지만, 다친 마음을 보살피지 못했던 순간이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어요, 마음이 다쳐서 휴직하고 있는데 말이지요. 이 것이 줄어든 급여 등 눈에 보이는 기회비용보다 훨씬 더 큰 보이지 않는 기회비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휴직기간에는 리스크에 대한 스트레스 없이 온전하게 마음을 보살피는 것이 기회비용을 최소화하는 방법인 것 같습니다.
참고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주식은 하지 않았을 테고, 친구에게 돈은 빌려줬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