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근묵자흑

by 서다비

“이전 회사에서 어떤 업무를 하셨나요?”


본인을 실장이라고 지칭한 면접관이 그렇게 물었다.


“오프라인 매장이 많은 곳이어서 판매촉진을 위해 매달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스토어랑 SNS에서 전반적인 관리를 맡았습니다.”


그 외에 여러 질문과 답변이 오갔으나 사실상 나에 대한 질문보단 면접을 본 회사에 관한 이야기를 더 많이 들었다. 그리고 대화가 소소하게 흘러가자 ‘설마 이게 면접 끝인가?’ 싶었을 때 실장이 이렇게 말했다.


내일부터 출근 가능한가요?


가능하다는 대답을 했지만 속으론 ‘뭐지?’ 싶었다.


‘이런 식으로 급하게 사람을 구하는 곳은 좋은 직장이 아니던데…….’


의심이 피어올랐지만 이미 다음날 출근하겠다는 대답까지 한 뒤였다. 게다가 이력서를 넣은 곳 중 여기보다 더 나은 회사가 없었기에 애써 떠오르는 불안함을 지우며 인사를 마치고 건물 밖으로 나왔다.


‘오히려 잘됐다. 며칠 지나서 출근했는데 나하고 맞지 않으면 시간 낭비하는 게 되니까. 차라리 빨리 경험해보고 빠른 결론을 내리는 게 좋지!’


내가 다니는 회사는 예상대로 규모가 있는 곳이었다. 건회사는 물의 한 층을 통째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사무실엔 나 포함 5명의 사무 인원과 현장에서 일하는 10명가량의 공장 사람들이 있었다. 그 외 다른 지역에도 공장이 있었는데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은 다른 사무실이지만 내 분야의 선임자가 있다는 것이었다.


한 분야를 오롯이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은 덜었으나 일을 시작하려 하자마자 한 가지 문제점을 발견했다. 디자인을 하기 위해 필요한 프로그램들이 하나도 설치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었다.


“여기 컴퓨터에 프로그램들이 깔려있지 않은데, 누구한테 얘기하면 되나요?”


“아 그거 어제 설치하려고 했었는데 시간이 늦어서 못했어요. 오늘 저녁에 해둘게요.”


옆자리에 앉은 경리에게 묻자 퉁명한 답변이 돌아왔다. 바쁘면 그럴 수 있지, 라고 생각하며 프로그램이 설치되면 바로 작업할 수 있도록 자료조사를 먼저 했다.


내가 담당한 일은 SNS 관리였다. 회사에선 판매하는 제품이 꽤 많은데도 불구하고 홍보를 제대로 한 게 없어 내 역할이 시급해 보였다. 그래서 판매하는 제품의 특징을 확인하고 효과적으로 홍보할 컨셉을 찾는 것에 시간을 썼다. 생각보다 아이디어가 많이 떠올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작업을 했고 다음날 완성하여 업로드할 생각에 만족해하며 퇴근했다.


그런데 다음날에도 프로그램이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어제 바빠서 못했어요. 오늘은 꼭 할게요.”


경리에게 묻자 어제와 비슷한 대답이 흘러나왔다.


진짜로 못한 게 맞는 건가? 일부러 나를 테스트하는 건가? 같은 여러 의문이 들었는데 어찌 됐든 누가 해결해주길 기다리고만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다 해서요. 시간 나실 때 알려주시면 제가 할게요.”


“아……. 그럼 이따가 알려드릴게요.”


이 이후 여러 방법을 시도하고 사장에게 결재받는 등의 귀찮은 과정이 있었으나 결과적으로 그날 프로그램을 설치하여 골치 아픈 문제를 완벽하게 처리했다.


사실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고 굉장히 사소한 일이었지만 누구의 도움 없이 빠르게 판단을 내리고 행동해서 좋은 결과를 이끌어낸 게 뿌듯했다.


이전의 나였다면 한 번 더 기다리고 속으로 전전긍긍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작은 행동으로 사건을 해결함으로써 수동적 사고에서 한걸음 벗어난 기분이 들었다.


매일 운동을 하면 근력이 키워지듯이, 사고 또한 매일 훈련을 반복하다 보면 바뀔 수 있다. 이전 회사에서 매일 A씨의 사고와 행동을 직접 보고 들으면서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멋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계속 자극받다 보니 그러한 사고방식이 나에게 점차 스며들게 되었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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