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회사는 총 30명이 넘는 인원이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나와 소통하는 건 사장과 실장을 제외하고 4명뿐이었다.
대리 – 장기근속 15년 차. 온갖 일을 다 하지만 궂은 말 잘 하지 않는 무던한 타입
경리 - 나이는 가장 어리지만 본업무인 회계, 고객 상담 외 라이브 방송 MC, 프로모션 관리 등을 맡은 가장 능동적이고 창의적인 성격
선임 - 스토어 상세페이지 제작, 수정 담당. 주어진 업무 외의 일은 잘 하지 않는 수동적인 성향. 본업은 아주 잘함. 타 지역에서 근무 중.
고참 – 5년 차 제품 제작자. 경리와 함께 라이브 방송 MC를 맡음. 타 지역에서 근무 중.
대리와 경리는 같은 사무실에서 일해 조금씩 친해졌으나 선임과 고참은 다른 지역에서 근무하는데다가 성별도 달라 거리감이 있었다. 그러나 연령대가 비슷하고 이미 다들 친해진 터라 나 또한 문제없이 이 집단에 잘 녹아들었다.
그 이후로 평화로운 일상이 이어졌다. 평소엔 SNS 운영을 하다가 라이브 방송 진행 보조도 해보고 하루 2시간씩 공장일도 해보는 등 이 회사의 맞춤형 인재로 조금씩 성장했다.
여기 사장도 “빨리빨리”를 외치는 편이었는데 직전에 정말 성격 급한 사장 밑에서 일을 했다 보니 빠르게 일을 처리하는 습관이 이미 몸에 배어있어 압박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사장이란 사람들은 다들 성격이 급하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어려운 일이나 스피드한 일을 요구할 때가 간혹 있었는데 그땐 주변에 도움을 요청해서 해결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너무 퀄리티가 나오지 않으면 ‘여기까지가 내 능력의 한계인가 보지 뭐.’ 하고 할 수 있는 데까지 열심히 했다.
서로 의지할 수 있는 팀이라는 게 무엇인지, 회사 일이 체계적으로 돌아가는 게 어떤 것인지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작게는 웹 디자인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선임(상세페이지 제작)과 나(SNS 홍보)의 업무가 나뉘어 각자의 장점들을 살려 잘 만들어 낸다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온라인 담당이라는 큰 카테고리 안에 사장(키워드 광고), 대리(여러 온라인 업체 관리), 경리(온라인 업체 프로모션 관리)의 역할이 있어 이쪽 분야에 대해 이전보다 더 넓게 알게 되었다. 또한 각자의 분야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떻게 하면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는지 고민하게 되기도 했다.
“이번에 라이브 방송 준비하면서 브이로그도 찍으면 좋을 거 같은데.”
사장이 경리와 라이브 방송에 대해 회의하던 중 이런 말을 꺼냈다. 내 업무와 관련된 이야기라 둘의 대화에 귀가 솔깃해졌다.
“그럼 그렇게 해볼까요?”
조금의 망설임도 없는 경리의 대답에 귀동냥으로 듣고 있던 나는 컴퓨터에서 영상이라는 이름의 폴더를 만들고 유튜브에서 브이로그를 검색했다.
그리고 잠시 후 경리가 와서 이번 라이브 방송에서 브이로그도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방송 준비와 홍보만 하는데도 꼬박 한 주가 소요되는데, 영상 제작까지 해야 한다니. 해야 할 일은 많았으나 시간이 넉넉해서 해볼 만했다. 경리에게 촬영해야 할 내용을 정리해서 추후에 알려주겠다고 한 뒤 영상편집에 필요한 레퍼런스를 찾아보았다. 다행히 브이로그가 많이 활성화될 때라 참고 자료들이 많았다. 시간도 넉넉하니 최대한 철저하게 사전 준비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지금 회사에서 한 영상 업무라고는 상세페이지 내 GIF 삽입 같은 간단한 일만 해왔기에 사실상 제대로 된 첫 영상 제작 요청이었다. 그리고 수습 기간 종료가 머지않았기에 제대로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해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퀄리티를 내기 위해 관련 자료 수집을 많이 했다.
그리고 방송이 끝난 후 최대한 빠르게 영상편집을 끝냈는데 관련 직원 모두 너무 좋아해서 뿌듯했다. 나 또한 혼자 기획부터 촬영, 편집 전부 감당하지 않고 동료들과 함께 역할 분담해서 한 프로젝트를 끝내니 부담도 적어졌고 재미도 있었다.
그렇게 잘 마무리가 됐구나 싶었을 때 며칠 뒤 경리가 나에게 말을 건넸다.
“이왕 이렇게 유튜브 시작한 김에, 계속 촬영해서 업로드 하는 건 어때요?”
안 그래도 기존의 업무가 슬슬 지겨워진 참이었다. 그리고 영상을 편집하는 일 자체가 시간을 많이 쏟아야하기에 힘은 들지만, 그만큼 완성 후 보람이 크기에 재미가 있어 그렇게 해보자고 대답을 했다.
‘기획과 출연 모두 가능한 인재가 옆에 있으니까 괜찮겠지.’
이후 경리는 나와 촬영 및 업로드 일정을 얘기하더니 30분도 되지 않아 파일을 보냈다. 열어보니 2개월 분량의 유튜브 촬영 콘텐츠 아이디어였다.
“오 아이디어 좋은데요?”
대단한 콘텐츠는 아니었지만 짧은 시간 동안 다양한 아이디어를 낸 게 신기했다.
내 대답을 들은 경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파일을 프린트하고 실장에게 가서 말을 꺼냈다.
“실장님. 브이로그 업로드 한 김에 회사 유튜브를 활성화 해보는 건 어떨까 싶어서 콘텐츠 기획안을 짜봤습니다. 저희 본 업무에 지장이 없도록 촬영은 2주에 한 번으로 하고, 한 번에 2회분을 촬영하려고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 자료를 확인해주시면 됩니다.”
“응. 사장님하고 의논해볼게.”
실장은 받은 종이를 보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옆에 내려놓았다. 그럼 그렇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장은 빠르게 행동하는 성격이 아닌데다가 툭하면 결정을 미루거나 까먹었다는 식으로 넘어가는 사람이었다.
입사한 지 몇 주 되지도 않은 나도 아는 사실인데 나보다 훨씬 오래 다닌 경리는 실장의 성격을 더 확실하게 알 터였다. 1시간 뒤 사장이 사무실로 출근했고, 경리는 직접 사장과 얘기해서 결판을 지었다.
“다음 주부터 촬영하면 돼요.”
경리는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말했다.
2주에 한 번씩, 반나절 동안 2개 분량을 촬영하고 일정 요일에 매주 업로드. 물론 기존 업무도 병행하면서. 쉽지 않은 일정이었지만 이걸 지속적으로 진행 할 수 있었던 건 약식으로나마 팀이 있던 덕이었다.
경리가 초기 기획을 하면 내가 의견을 내어 보완을 했다. 이후 경리와 고참이 출연하여 재미있게 진행을 하고 선임이 보조를 해주어 촬영을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 편집 이후엔 반응이 좋아 그게 원동력이 되어 다음 과정을 이어갈 수 있었다.
나 혼자였다면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콘텐츠들이 많았다면 유튜버가 됐지 직장을 다니진 않았을 테니까. 이런 생각을 할 만큼 영상 제작은 나에겐 어려운 일이었다.
나에겐 기획력이 부족하다는 약점이 있다. 나 스스로도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기획이 필요한 일은 잘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을 통해 약점은 협력으로 보완할 수 있다는 걸 몸소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전에도 능동적인 성향을 보였던 경리가 마음에 들었는데 이렇게 아이디어도 많고 빠르게 행동하는 추진력까지 보면서 더 좋아하게 되었다.
사실 이전까지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다. 그런데 경리가 인간으로서 왜 좋은가 생각하니, 나와는 다르게 어떠한 상황을 민감하게 알아채고 행동력이 좋아서 라는 것을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물론 이렇게 능동적인 게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그렇게 나섬으로서 곤란한 상황이 발생한 경우도 있었지만 나서지 않는 것보단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었기에 기분 나쁘지 않을 수 있었다.
사람은 자신과 반대되는 사람에게 끌리기 마련이다. 사소하게는 생머리인 사람이 곱슬머리인 사람에게, 크게는 감정적인 사람이 이성적인 사람에게 말이다(그 반대도 마찬가지).
하지만 그것은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끌림일 뿐이지 결국엔 본인이 원하는 성향에 맞춰 살아가게 된다.
나는 적극적으로 행동하고자 하는 욕구가 드문 편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 지금까지 열정적인 사람,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을 좋아했다. 그 덕에 적극적인 주변 사람들에게 자극을 받아 조금씩 수동적 사고에서 탈피할 수 있게 되었던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