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첫 능동적 행동

by 서다비

유튜브 촬영은 6개월가량 했는데 그때처럼 일 자체가 재미있어서 시간이 빠르게 흘렀던 적은 드물었다. 여태까지의 일 대부분은 타인에 의해 내 생각과 행동이 좌지우지되었었다. 그런데 이번 일은 내가 그 안에서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일의 마무리까지 내 손으로 확실하게 지었던 적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게 체감되었다.


물론 이렇게 좋았던 점만 있진 않았다. 여러 사람이 참여를 한 프로젝트였기에 그 안에서의 이해관계와 갈등상황이 조금씩 생겼다. 그중에서 가장 큰 문제는 고참이 아무런 아이디어를 내지 않으면서, 기껏 경리가 낸 콘텐츠들을 이런 저런 이유로 퇴짜 놓은 것이었다.


사실상 경리가 처음에 냈던 아이디어 중 2/3가 그런 이유로 사라졌고 이후의 의견들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게 보였다. 그래서 경리가 속상해했고 나는 그런 상황이 눈에 거슬리긴 했지만 딱히 다른 의견이 없었기에 둘 사이엔 개입하지 않았다.


대신 둘이 출연하지 않는 다른 콘텐츠를 영상으로 만들어 시간을 벌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뿐,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한계가 왔다.


촬영 날짜가 다가오는데 당장 할 콘텐츠는 결정된 게 없었다. 경리는 다음날 연차라 출근을 하지 않았고, 아이디어를 짤 날짜는 하루뿐이었다. 게다가 다른 사람들이 아이디어를 가지고 올 거라는 기대가 전혀 없는 상황이라 내 속은 답답해졌고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만 점점 커졌다.


‘그래. 내가 한 번 보여줘야겠다.’


퇴근 후 이러한 걱정 때문에 잠들지 못하고 침대에서 뒤척이다가 결국 마음을 다잡았다. 이전 회사에서 A씨가 주도권을 갖기 위해선 먼저 선수를 쳐야한다고 말했던 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결국엔 회의에서 콘텐츠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할 텐데, 그건 별로라느니 하기 싫다 같은 이야기로 지지부진하게 흘러갈 확률이 클 게 분명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아이디어를 내지 않는 사람들한테 뭐라고 하다가 기분이 상해, 촬영 자체가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고. 그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내가 그들에게 뭐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무기 하나는 가지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바로 핸드폰을 켜서 눈여겨봤던 유튜브 채널의 최근 콘텐츠들을 빠르게 훑어봤다. 재미있게 촬영할 수 있겠다 싶은 영상의 링크 몇 개를 나에게 보내두고 다시 핸드폰을 껐다.


‘자세한 구상은 내일하자.’


이렇게 결론을 내리니 잠도 빠르게 찾아왔다.


다음날 회사에서 본 업무를 하면서 틈틈이 콘텐츠를 찾아봤다. 대단한 아이디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총 9개를 기획했다. 퇴짜에 대한 부담감은 전혀 없었다. 설령 그들이 아무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더라도 내 몫은 제대로 한 거니까.


월요일은 다 함께 회의를 하는 날이라 평소보다 10분 일찍 출근을 해야 했다. 그렇지만 이번엔 기선제압도 해야 하니 옷도 평소보다 더 신경을 썼고, 늦지 않기 위해 더 빠른 시간에 집에서 나왔다. 그리고 사장이 주도하는 회의가 끝난 후.


“어디 가세요? 콘텐츠 회의 해야죠.”


자리에서 일어나는 유튜브 팀원들을 향해 내가 말을 했다. 촬영하는 주엔 원래 본 회의를 마친 후 콘텐츠 회의를 하는데, 결정된 사항도 없이 바로 가려는 사람들을 보자 열이 확 올랐다. 하지만 꾹 참고 자료들을 나눠주며 설명을 했다.


다들 내 아이디어를 썩 마음에 들어하는 기색이 아니었으나 그보다 더 나은 게 없었기에 결국 내가 기획한 것이 채택되었다. 이후 경리와 함께 아이디어를 구체화시키고 다음날 촬영까지 수월하게 마쳤다. 내용도 풍부해서 편집을 해 보니 2회 분량이 나왔다. 업로드 이후 조회수도 잘 나와 만족스러운 결과까지 이루어냈다.


그 이후 콘텐츠로 골머리를 앓았으나, 생각보다 오래 골치 아프지 않았다. 경리가 퇴사하여 기획자&출연자를 잃었기에 더 이상 촬영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핵심 인력을 잃자 유튜브 촬영에 대해 말을 꺼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6개월간의 유튜브 프로젝트는 어이없이 막을 내렸다.


그래도 이러한 일이 있던 덕에 분위기를 주도한다는 게 무엇인지, 그로 인한 장점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계기가 됐다.


이전까지는 이와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내가 이러한 분위기를 명확하게 인지하기 전에 타인이 먼저 나서서 해결하거나, 누군가 참지 못하고 성질을 내 사건이 다른 식으로 흘러갔다. 아니면 곪다 못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파악하거나 내 감정을 깨닫기엔 나 스스로가 기본적으로 무던한 스타일이었고, 이런 경험 자체가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었기에 이제야 전체적인 흐름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경리와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여 몇 개월간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는 이것이었다. 타 지역에서 유튜브 촬영 후 둘이서 본 사무실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경리가 나에게 질문했다.


“예상 면접 질문 중에 신기한 게 몇 개 있었는데, 실제 면접 중에 질문받았다고 생각하고 답변해 주세요.”


‘한 달 뒤 퇴사 예정이라 다른 회사 면접 보려고 예상 질문들을 많이 보고 있구나.’고 생각하며 질문하라고 말했다.


“실험이 진행되고 있어 외부 생물이 들어와선 안 되는 실험실에 비둘기가 들어왔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눈치를 채지 못한 상황에, 이 비둘기를 자극하지 않고 내쫓을 방법을 생각해서 대답해 주세요.”


나는 3초간 침묵한 후 떠오르는 대로 말했다.


“우선 저 혼자 비둘기를 잡을 도구나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 주변 동료들의 도움을 구합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을 그대로 말할 경우 누군가 소리를 질러 비둘기를 자극할 수 있기 때문에, 당황하지 않을 사람에게 먼저 얘기하고 차분히 소식을 전해 사람들에게 알린 후 다 함께 잡아서 내쫓겠습니다.”


이와 비슷한 질문을 들어본 적이 없어 평소에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술술 나오는 대답에 나 스스로가 신기했다.


‘오 잘 대답했다. 이 정도면 질문의 의도인 순간 상황 대처 능력이랑 협동력 등등을 잘 표현했겠지?’


이렇게 생각하고 옆을 봤는데 경리가 오 하는 표정을 지은 것을 보고 뿌듯했다.


“이 정도면 대답 잘 했나요?”


시간이 지나도록 경리가 말이 없자 직접 물어보았다.


“오 네. 저는 그렇게까지 생각 안 했어요. 그냥 ‘어떻게 잡지?’에만 집중했는데…….”


이후 다른 신박한 면접 질문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 택시가 사무실 근처로 도착해 대화가 끝났다.


솔직히 내 대답에 가장 놀란 사람은 나이지 않을까 싶다. 주변 상황에 전혀 관심 없던 내가 찰나의 순간에 타인에 대해 생각할 줄이야. 타인과 함께 상황을 헤쳐나가야겠다고 판단을 할 정도로 내가 생각이 많이 달라졌구나 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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