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한 지 6개월 정도가 지난 시점에 우리에게 큰 프로젝트가 떨어졌다. 바로 스토어 내 상세페이지 전체 수정하기였다.
나는 사실 이러한 일이 일어날 것을 입사하기 전부터 짐작했다. 그 이유는 이 회사에 지원하기 전 운영하는 사이트를 살펴봤을 때 상세페이지에 통일성이 확실하게 잡히지 않은 게 내 눈에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일을 혼자서 감당하긴 어려웠고, 같이 일해야 하는 선임은 잦은 수정 요청으로 업무 관련해선 이미 진절머리가 난 상태였기에 말을 꺼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 이후엔 일하느라 완전히 잊고 있었는데 결국엔 이 일이 코앞에 닥치고 말았다.
보다 못한 경리가 나서서 사장의 의견을 중재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미 선임은 과중한 업무가 떨어진 상황 자체에 열이 받아 있었다. 그래서 애꿎은 경리에게 왜 나서서 일을 벌이냐, 안 하겠다 등의 화풀이를 했다.
‘싫으면 관둬야지. 징징거려서 어쩔 건데?’
물론 굉장히 귀찮은 일이지만, 적어도 월급 받은 만큼은 일을 하자는 주의의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이었다. 결국엔 나와 선임이 각각 다른 콘셉트로 상세페이지의 초안을 만들기로 했다.
나는 영상 편집 업무를 하면서 초안을 만들었다. 그리고 고참에게 전해들은 바에 의하면 선임은 본 업무는커녕 다른 일도 없이 거의 놀고 있으면서 고참과 함께 해야 하는 일조차 안 한다고 했다. 걱정은 됐지만, 성인인데 본인 일은 알아서 해야지, 하는 생각에 참견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즈음 선임과 고참의 관계가 좋지 않다는 소식을 들었다. 제보에 의하면 선임은 자리에 계속 없고 고참과 밥도 같이 먹으려 하지 않는다고 했다. 참다못한 고참이 선임에게 직접 그 이유를 물으니 집안일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다고만 하고, 제대로 된 대답을 회피해서 참으로 답답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어찌됐건 나는 나에게 주어진 일을 꾸준히 해서 완성된 상세페이지 초안을 사장에게 보여주었고 선임에게도 그 사실을 알려주었다. 이틀 뒤 선임 또한 부랴부랴 본인이 만든 걸 사장에게 전달했다.
그 결과는 다음날 오후가 돼서야 알 수 있었다. 정확한 사유는 모르겠으나 사장이 선임에게 찾아가 노발대발했다는 걸 고참이 알려준 것이다.
“아 정말……. (사장님이) 왜 그러는 걸까요?”
다 같이 으쌰 으쌰 해도 벅찬 일인데 담당자한테 소리쳐서 득이 되는 게 뭐가 있는지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경리에게 물었다. 담당자에게 직접 말하지 않고 전혀 관계없는 사람을 통해서 말한다거나 절차 따위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일하는 등 평소에도 사장의 말이나 행동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지만, 특히 이번 일은 전혀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없었다.
다행히 경리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사장님이 좀 옛날 마인드를 가지고 계세요. 그거 있잖아요. 사람을 열받게 만들면 그걸 극복하기 위해서 더 잘할 것이다, 같은 거요.”
“전혀 이해할 수 없네요.”
사람마다 동기부여 받는 요소가 다 다를 텐데. 게다가 요즘엔 저렇게 화를 내면 “이런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 더 잘해야지!”라는 생각보다는 오히려 “왜 저래?” 할 확률이 99.9%이지 않을까 싶었다.
아무튼 고참은 사장과 선임의 대화를 구체적으론 듣지 못해서 둘이 무슨 말을 나누었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다들 궁금해했지만 선임의 상태는 더욱 악화되어 아무도 이에 대해 물어보지 못했다.
선임과 고참의 관계도 더 안 좋아져, 이젠 퇴근까지 따로 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솔직히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가 뻔한데. 꽁해 있는 선임이나 속 시원하게 묻지 못하는 고참 둘 다 답답했지만 둘이서 풀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해 내버려 두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나는 선임과 고참이 있는 사무실에서 해야 할 일이 있어 그쪽으로 출근을 했다. 혼자 하는 일이라 선임과 마주치지 않아도 상관없었지만 이왕 여기까지 온 거 사장과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해 선임에게 일부러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여기서 일할 거 있어서 왔어요.”
선임은 머뭇거리며 인사를 받아주더니 내 눈치를 살폈다. 나는 이때다 싶어 스몰 토킹으로 분위기를 푼 다음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사장님하고 무슨 대화 했는지 물어봐도 돼요?”
사실 사장이 했던 말은 별거 없었다(사장이 시키는 대로 했는데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욕을 크게 먹은 것이었음). 그러나 선임은 이미 이 회사와 사장에게 상당한 불만을 가지고 있었는데 거기에 부당한 비난까지 받아 기분이 많이 상한 상태였다. 그렇게 기분도 제대로 풀지 못하고 퇴사도 못하는 상황에 그는 모든 걸 방치하던 중이었다.
나는 그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열심히 입을 놀렸다. 같이 일해야 하는 사람이 계속 꽁해 있으면 나까지 손해니까.
“아유 그렇죠. 그러니까 이런 걸 방지하기 위해서는 실장이 그걸 중재하거나 시스템을 구축하거나 해야 하는데 실장도 방치를 하고 있으니…….”
“아 그러니깐요! 전에 어떤 일이 있었냐면…”
말문이 터지자 선임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나 또한 이 회사의 불만 사항이 있었기에 그의 말에 열심히 동조를 했다. 20분 정도가 지났을까. 선임은 하고 싶은 말을 어느 정도 했는지 흥분이 점점 가라앉았다.
그러고는 기분이 풀렸는지 먼저 업무에 관련된 이야기를 꺼냈다(어찌 됐건 일을 해야 하니까). 상세페이지는 내가 만든 것이 선택돼서 그걸로 진행하면 된다. 그리고 제품 여러 개를 빠르게 촬영하기 위해선 촬영할 제품을 제작팀에 요청해서 다 가지고 와야 한다. 똑같은 연출샷을 한 번에 다 찍고 그다음 연출샷으로 넘어가는 게 좋다. 이와 같은 팁도 알려주었다.
다시 며칠이 지나 상품 촬영 당일이 되었다. 선임과 함께 출근부터 퇴근까지 사진만 찍는 강행군에 토가 나올 지경이었지만 작업을 해본 적 있는 선임과 같이하니 조금은 수월했다. 그리고 고참과 선임이 서로 어색해하는 분위기가 느껴졌는데, 며칠간 계속 이어지자 나 또한 불편해졌다.
'이 답답이들!'
이대로 내버려두면 가까운 시간 내에 절대 해결되지 않을 거라는 판단이 섰다. 그래서 둘의 사이를 한 번 풀어야겠다 생각하고 사진 찍던 중 잠깐의 짬이 생겼을 때 선임에게 말을 걸었다.
“오지랖이긴 한데……. 만약 퇴사 이후에도 계속 고참 씨랑 연락할 거예요?”
둘이서 2년 동안 정말 친하게 지냈고 퇴근 이후나 주말에도 가끔 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 그렇게 물었다.
“아마 그렇겠죠?”
“퇴사 이후에 안 볼 사이면 어떻게 행동하든 상관없는데, 앞으로도 계속 잘 지낼 거라면 둘이서 잘 얘기했으면 좋겠어요. 내가 며칠간 봤을 때 둘이 뭔가 불편해하는 게 보여서요.”
이렇게 말하는 도중에 고참이 촬영실로 들어오는 바람에 내가 말하려고 생각했던 걸 제대로 얘기하지 못했다. 하지만 오히려 잘 됐다 싶었다. 둘 다 나이가 어린 것도 아니고 나와 관련된 것도 아닌지라 당사자들끼리 푸는 게 뒤탈이 없을 터이니.
“너 내가 불편하냐?”
선임이 고참에게 묻자 “왜? 뭔데?” 하며 고참이 모른체했다.
그 이후 터놓고 확실하게 풀진 못했으나 사이가 다시 좋아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솔직히 둘이 저렇게 친한데 왜 터놓고 말하지 못하는지 아직까지 이해를 못 하겠다.
그래도 나 또한 회피형 인간이었던 사람으로서 동질감 및 안타까움이 느껴졌기에 그 상황에 개입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던 듯싶다.
정작 본인은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정확히 감지하지 못하는데 상대방이 보기엔 그 감정이나 행동의 이유가 파악되는 경우가 있다. 마치 어린아이를 바라보듯이 상대방이 훤히 보였던 적은 처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