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수동적인 능동적 행동

by 서다비

그 뒤로 경리가 나가고 새로운 경리가 들어왔다. 새로 입사한 사람은 대리보다 나이가 있었는데 기존 직원들과 어울릴 생각이 없는듯해 서먹하게 지냈다.


그동안 박람회에도 참여하는 등 여러 일들이 있었었는데 가장 다행인 점은 선임이 다시 의욕적으로 움직였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회사에서 야심 차게 제품을 하나 출시했는데 이게 문제를 많이 일으켰다.


사실 제품 자체는 괜찮았으나 그 주변으로 말이 많았다. 제품은 2가지의 옵션이 있었는데 가격이 2배 가까이 차이가 났다. 하지만 기능에는 차이점이 없고 사장도 별도의 지시가 없었기에 상세페이지 하나에 옵션 2개가 같이 들어갔다. 그런데 이미 완성이 다 된 상태에서 사장이 가격 문제 때문에 상세페이지를 나누자고 해서 선임이 그렇게 했더니 제작자를 대변한 다른 사람이 이것 때문에 문제제기를 했다.


“…그 문제 외에도 상세페이지를 봤을 때 구매 욕구가 전혀 안 생기잖아요. 이걸 보고 사고 싶겠어요? 사용하는 거나 연출적인 장면이 하나도 없잖아요.”


“그 구매 포인트가 뭔데요? 제품만 딱 던져주고 상세페이지를 만들라고 했을 때, 잘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개발제품 제안서도 보여준 적도 없고, 뭐가 판매 포인트인지도 제대로 모르는 상황에서 완벽하게 만들기는 어렵지 않을까요?”


이 일이 대변자와 고참의 말싸움까지로 이어졌다. 웃긴 점은 중간에 상세페이지를 나누라고 한 건 사장이었는데 본인은 모르는 척 쏙 빠져나갔단 것이었다.


아무튼 우리는 이 제품을 잘 사용하지 못하는 터라 연출 장면을 다른 직원이 찍어왔다. 그리고 또 다시 수정을 했는데 또 다시 이 제품에 관련한 이야기가 들렸다.


사실상 이 제품 이야기가 3주가 다 됐던지라 선임의 피로도가 꽤 누적됐을 거라 예상했다. 이 회사에서 나 또한 이미지 완성 이후 자잘한 수정 요청을 빈번하게 받아 스트레스가 쌓인 상황이었다. 그 고통을 알기에 또 다른 수정이 나오지 않게 하려고 "이런 식의 말이 나왔는데 내 생각엔 이렇게 변경하는 게 나중에 말이 안 나오는 방법이 아닐까 한다."라는 말을 선임에게 했다.


그런데 선임은 그 제품이 주제로 꺼내진 순간부터 흥분하더니 내 말의 의도나 내가 말한 내용을 깡그리 무시한 채 혼자서 이말 저말하다가 결국 이렇게 이야기했다.


다음부턴 개인 의견 빼고 회사 전달사항만 주세요.”


처음부터 내 생각이라고 언급을 했고, 일을 시킨 것도 아니었고, 좋게 마무리를 짓기 위해서 의견을 냈을 뿐인데. 불똥이 최종적으로 나에게 튀어서 분노가 확 솟구쳤다. 선임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구구절절 이야기를 하고 속을 풀어내고 싶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이미 저렇게 자기 좋을 대로 결론을 내린 사람한테 말해서 뭐하겠어. 내 마음만 더 답답해질 뿐이지.’ ‘싸워서 얻는 이득이 뭐가 있다고. 내버려둬. 평생 그렇게 살라고 그래.’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속으로 삭히기는 힘들어 대리와 경리에게 이에 대해 물어보았다.


“이거 제가 잘못한 건가요? 막 따지고 싶은데 어떻게 하죠?”


두 사람 모두 얘기해서 좋을 것 없다고 했다. 이성적으론 괜히 일을 키우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끓어오른 화가 해소되지 않아 답답했다.


‘어떻게 해야 이걸 풀 수 있지?’


요즘의 나는 확실하게 해결되지 못하는 상황을 견디지 못했다. 마무리되지 않는 일들은 신발 안의 작은 돌처럼 계속해서 신경을 거스르게 했고 지속적인 피곤함을 안겨주었다.


그렇지 않아도 육체적이나 정신적 체력이 남들보다 약한 나에겐, 이렇게 해결되지 않는 사건은 치명적인 일이나 다름없었다. 어떻게든 결론이 지어져야 했다.


나는 선임과 개인적인 일뿐만 아니라 일적으로도 대화하기 싫었지만 같은 회사에 있는 한 부딪칠 것임이 자명했다.


‘그렇다면 아예 대화를 할 일 자체를 만들지 않고 이와 관련해서 스트레스도 받지 않을 방법이 있을까?’


무의식이 계속 방법을 생각해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결론도 나왔다. 하지만 이건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라 도움이 되어줄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대리님 저 앞으로 선임하고 말하기조차 싫은데. 중간에서 대신 전달해주실 수 있나요?”


“네 그럴게요.”


흔쾌한 대답에 마음이 편해졌다.



그 이후 이 사건의 여파는 예상보다 꽤 오래갔다. 선임의 그 말을 마지막으로 그와는 간접적으로도 대화 한 번 나누지 않았지만 나는 오히려 그게 너무 좋았다. 사장은 주로 내가 있던 사무실에서 업무 이야기를 했는데, 내가 하기 번거로운 것들을 선별해서 선임에게 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젠 업무를 지시하는 대상이 대리였기 때문에 선임은 일에 대한 험한 말을 조금 덜 했다.


하지만 선임은 가끔 “이미 일을 하고 있는데 또 일이 생겼나요.” 같은 말을 했으나 내가 직접 상대하지 않아서 스트레스 받을 일도 없었다.


가끔이지만 업무 때문에 선임이 있는 사무실로 출근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때는 친해진 고참에게 도움을 받아 잘 해결을 했다.


결국엔 선임이 먼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사과도, 업무 관련 애기도 아닌 별거 없는 말이었지만 이만하면 됐다 하고 받아주었고 이전처럼 잘 지냈다.



이전이라면 이런 상황에 아무런 개입을 하지 않았거나, 개입 후 비난하는 말을 듣고 혼자 속상해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불똥이 튀지 않아 다행이다 생각하거나 후회했을 것이다. 괜한 오지랖을 부렸다고 생각하면서.


하지만 나는 이런 식의 참견이 좋다. 그만큼 타인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의 반증이니까. 내가 타인들의 오지랖으로 성장을 했으니 돌려주고 싶은 마음에서 우러나온 행동이라서 더 좋았다. 이 참견으로 인해 결과적으론 서로가 기분이 좋지 않게 끝났지만, 어찌 됐건 이런 과정을 통해서 하나 더 배우게 되었다.


내가 컨트롤 할 수 없는 상황이 왔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범위는 여기까지이고, 이 이후는 내 손에 달린 게 아니니까 여기서 생각이나 감정을 멈추자.’라고 생각하고, 그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구하는 법을. 재미있게도 이렇게 하면 사람들이 십시일반 도와주어 잘 흘러가게 된다.


나는 주변에 도움을 잘 구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이건 내 문제니까 내가 해결해야 해.’ ‘나도 잘 모르겠는데 다른 사람들은 더 모르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의외로 사람들은 도움을 구하면 최대한 할 수 있는 범위 내에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해준다.


그래서 이 이후엔 고민이 생기면 주변에 물어보고, 또 상대방이 도움을 요청하면 최대한 말해주거나 행동을 한다. 사실 그런 행동은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게 더 크다. 말하고 행동하면서 스스로 얻는 위로가 있으니까.


그래서 타인을 위한 행동을 할 때 오히려 ‘나는 이런 말을 듣고 싶었구나,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구나.’ 하고 나에 대해 더 잘 알게 된다.


생각이나 감정을 속으로만 담아두면 그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부정적인 감정들을 가지고만 있으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 결국엔 함께 깊이 잠겨버린다. 털어놓아야 그 뒤에 이겨낼 힘이 생긴다. 신뢰할 수 있는 타인에게 이야기해서 다음 스텝으로 넘어가는 게 좋다. 어렵지만 한번 해보고 나면, 그다음은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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