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개월 후 회사 경제 상황이 완전히 안 좋아졌다. 사실상 내가 입사할 때부터 살짝 휘청거렸는데 사장이 그땐 명확하게 인지하지 못하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확실하게 느낀 것이다. 결국 6개월 뒤에 지금 지역을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그 과도기 기간 동안 공장 인원을 줄이고 선임과 고참을 주 3일 정도씩 현장에서 근무하게 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일이 있었다. 근시안적인 사장의 좋지 않은 선택들로 인해 결국 선임 및 핵심 인력들이 퇴사를 했고 근무 인원이 절반 정도로 줄어들었다.
입사 후부터 지금까지 북적북적한 사람들과 사건들 사이에 있었다 보니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졌다. 동일한 폭으로 좌우로 움직이는 시계추처럼 큰 재미를 느낀 만큼 공허함도 많이 일어난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여러 일이 겹쳐 힘들었었다. 키우던 고양이가 알 수 없는 이유로 한 달간 설사를 계속했고(노화가 원인이라는 게 나중에 밝혀졌다.) 집에서는 물난리가 일어났다. 그 외에도 여러 상황이 연달아 일어나 우울함이 극으로 치달았다.
선임이 관둔 탓에 내 일거리가 많이 늘었지만 제품을 개발하는 인원이 많이 줄은 터라 이전과 같은 업무량이 아니어서 버틸만했다. 하지만 일거리가 적어지니 의욕이 많이 사라졌다.
남은 사무직원 모두 공장 일을 매일 1시간가량 했는데 반복업무 작업으로 시간이 빠르게 흐르고 무언가 완성했다는 성취감은 있었다. 그러나 이걸 장기간은 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이전부터도 느꼈지만 단순 반복 업무나 고객을 상대하는 일은 나랑 전혀 맞지 않았다.
그래도 공장 일은 긴 시간 하지 않아서 할만했다. 그동안 회사의 재고도 업로드하고 다른 업무도 맡다 보니 시간은 빠르게 흘러 이사 날이 왔다.
새로운 사무실엔 나, 대리, 경리만 고정 출근을 했다. 공장이랑 완전히 분리되어 불편한 점은 있었으나 결과적으론 다른 직원들의 업무가 줄어들었다. 대신 새로운 문제가 대두되었는데 바로 대리의 행실에 관한 것이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지금까지의 대리는 회사의 궂은일을 도맡으면서 감정의 큰 변화 없이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이었다. 이전까지의 회사에서 직책이 있는 사람들의 감정적인 말과 행동들로 많이 힘들었던 터라 대리의 이런 모습은 나에게 안정감을 많이 주었다. 내가 힘들고 버티기 어려울 때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사 후 대리에 대한 나의 평가가 완전히 달라졌는데 그 이유는 타인에게 배려를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새 사무실은 복층 구조였다. 1층은 신발을 신지만, 2층은 사무공간이라 슬리퍼를 착용해야 하는 터라 2층으로 올라가야 할 경우 신발을 갈아 신어야 했다. 그러나 화장실이나 식사 등의 일로 신발을 하루에 여러 번 갈아 신어야 하니 신발장에 두지 않고 바닥에 두었는데, 이것 때문에 사건이 벌어졌다.
나와 경리는 타인이 불편할 것을 생각해서 계단과 떨어진 곳에 신발을 두었는데 대리는 계단 바로 앞 정 중앙에 둔 것이었다.
“저 아까 넘어질 뻔했잖아요.”
왜 저럴까 생각을 하던 차에 경리가 대리 신발 때문에 사고가 날 뻔했다고 했다.
“제가 얘기할까요? 그렇게 두지 말라고?”
“아뇨. 말하지 말아요.”
‘직접 얘기하지 않으면 바뀌지 않을 텐데…….’
이렇게 생각했지만 상대방의 말을 무시하고 나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중에 보니 대리의 신발이 사이드로 쏠려있어 드디어 해결된 건가 했는데 아니었다. 경리가 일부러 신발을 옆으로 치워둔 것이었다.
이렇게 간접적인 행동을 대리가 알아차리나 싶었지만 내 생각 보다 눈치가 없는 사람이었는지 전혀 깨닫지 못했다.
‘그럼 그렇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 또한 대리의 신발 때문에 넘어질 뻔했고, 이에 대해서 경리와 이야기를 했다.
“여기 선임이랑 고참이 있을 땐 신발을 바닥에 두지 않고 무조건 신발장에 넣어 두었거든요. 그때처럼 하면 이런 문제가 없을 것 같은데…….”
경리 내 말을 듣고 그 당시 대답을 하지 않았으나 다음 날 아침. 출근하자마자 신발장에 신발을 넣어두었다. 나 또한 그 행동을 이해하고 바로 따라 했다. 대리는 우리가 그러는 모습을 보곤 아무런 말 없이 똑같이 했다. 해결된 것이었다.
이후 경리에 대한 나의 평가도 달라졌다. ‘능동적이나 구태여 나서지 않는 사람.’
다시 시간이 흘렀다. 나는 새로운 프로젝트로 바빠졌고, 다른 직원들도 새로운 거래처 건 등으로 정신없었다. 그 와중에 사장이 우리 모두에게 미션을 부여했다. 또다시 공장일이었다.
공장과 분리되어 드디어 현장 업무에서 탈출하나 싶었는데 아니었다. 기존에 있던 공장 직원들을 정리했지만, 새로운 직원을 뽑지 않았던 터라 손이 부족했다. 그래서 우리에게 이 일이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이사 오기 전에 매일 1시간씩 했던 거니까.”
사장의 말에 세 사람 모두 체념하고 받아들였다.
초반에는 이전처럼 다 함께 모여 공장일을 했다. 그러나 다들 바빠져서 어느 순간 각자가 할 수 있는 시간에 하는 것으로 되어버렸다. 그런데 이런 행태가 지속되다 보니 어느 한 사람이 너무 많이 한다거나 누군가가 잘 안 하거나, 하는 척 시간을 때우는 게 보였다.
각자 1시간씩은 꼭 하자거나 일정 분량은 해야 한다 말을 해도 대리는 본인이 내키는 대로 행동을 하는 등 나아지는 게 없었고, 본사에서 요청하는 현장 업무도 점점 많아져 각자 1시간씩 하는 데에도 힘이 부쳤다. 결국 공장일을 가장 많이 한 경리의 분노가 점점 커졌다.
“아 이거 어떻게 해야 해결할 수 있죠? 전처럼 다 같이 하는 게 감시도 하고 빨리 끝날듯한데.”
“아침에 바로 하는 게 좋지 않겠어요? 저희 아침 1시간은 전화 안 받잖아요. 그때 다 같이 공장일을 하면 서로 감시하니까 더 빨리 끝낼 수 있지 않을까요?”
“오 좋은데요? 내일부터 바로 하죠.”
퇴근길 경리의 말에 깊게 생각하지 않고 대답을 했는데, 바로 좋다는 말이 나왔다. 다음날부터 출근 직후 다 함께 1시간씩 공장 일을 함으로써 불만사항이 사라졌다. 아침 이외에도 간간이 함께 작업을 하여 공장 일을 완전히 다해놓은 덕에 본사에서 급하게 요청할 일 자체도 없애버렸다.
성향이 다 능동적이었으면 이러한 사건 사고 없이 재미있게 일을 할 수도 있겠지만 회사는 내가 선택할 수 있어도 그 안의 사람은 내가 선택할 수는 없지 않은가? 있는 사람끼리 잘 지내는 게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남은 사람도 몇 없는 마당이라 서로 도와가며 시간을 잘 보내고 있다.
여러 가지 사건과 경험 덕에 나에 대해서도 많이 알게 되었다. 지금은 내 몸이 힘들다는 신호를 바로 감지할 수 있고 바로 해소할 수도 있다. 그리고 나의 부족한 부분을 외부의 것들로 채울 수 있게 되었다.
전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생겼으며 불합리한 상황에서 바로 이야기할 수도 있다. 나의 이러한 변화도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