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수동적 인간의 첫 번째 사회생활

01 취직, 부딪침

by 서다비


20대 중반. 사실 후반까지도 내 성격에 대해 '나쁘지 않다.'라고 생각했다. 예민하지 않은 무던한 성격이라 다른 사람들과 부딪칠 일이 없었고, 지인들은 그런 내 성격을 부럽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 성격에 대해 큰 고민 없이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웹디자이너로 일을 시작하기 전엔 웹툰 작가를 목표로 살아왔기에 직장이란 내가 웹툰 작가가 되기 전 생활비를 벌 수단이었을 뿐이어서 잘 해야겠다는 생각도 없었고, 누군가와 부딪칠 일도 거의 전무했던 덕분이었다. 그리고 직장 자체도 전문성이 있는 일보단, 특별한 자격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서비스 직종이나 사무 보조 등을 했기에 사회생활 능력이나 능동적인 사고에 대한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했었다.


그러다 어느 계기로 웹툰 작가의 꿈을 완전히 접고 난 후 웹디자이너 및 영상편집의 일을 배우게 되었는데 다행히 나와 너무나 잘 맞았다. 게다가 사회에서도 수요가 많아 그야말로 직업 바꾸기 적합한 타이밍인데다가, 지인 쪽 회사에서도 내가 가진 능력을 필요로 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이지만 취직까지 바로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직장생활을 좀 해보신 분이라면 아마 이 이후의 이야기를 보지 않아도 어떤 일이 펼쳐질지 어느 정도 감이 잡힐 것이다.


내가 취직했던 곳을 잠깐 설명하자면, I 회사는 스타트업 기업이었지만 오프라인 매장이 10여 개가 넘는 곳이었고, 이제 온라인 사업을 키워나가기 위해 담당자를 물색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들 온라인 쪽은 잘 모르는 터라 어떻게 컨트롤을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아 완전히 새로운 사람을 뽑기도 애매하던 차에, 내가 마침 A씨의 지인으로 온라인 쇼핑몰 일을 담당하게 되었다. 오프라인 매장이 많아 회사에서 근무하는 인원은 많았지만, 실질적으로 나와 직접 소통하는 사람들은 3명뿐이었다.

사장 – 오프라인 매장 nn년 경력. 성격은 매우 급하지만 돌려 말하는 화법을 즐겨 쓴다.
부장 – 판매할 물품을 매장으로 가져다주는 배송 담당. 성격도 급하고 기분도 확확 바뀐다. 타인의 의견을 물어보지도 않고 혼자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A씨 – 사장 조카이자 경리 업무 담당. 예민하여 분위기를 잘 읽고, 답답한 것을 견디지 못해 능동적인 성격이 되었다. 사무실에 주로 A씨와 나만 있다.


내가 입사하기 전 A씨는 회사에서 한 달 먼저 근무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A씨 또한 처음 해보는 업무에, 부장과 성격이 맞지 않아 힘들어하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나는 새로운 타입의 사람들과 적응하기 바빴고, 나에게 주어진 일을 감당하기도 급급한 판국이라 신경 쓰지 못했다. 아니, 사실 셋 사이의 묘한 신경전을 알아차리기엔 내 눈치가 더럽게도 없었다.


게다가 내 업무는 처음부터 고난의 연속이었다. 온라인으로 매장도 알리고 판매도 시작해야 하는데 매장마다 판매하는 상품군과 수량이 통일되지 않은 데다가 오프라인 매장이 많다 보니 그 장점을 부각시켜야 하고, 판매하는 상품이 식물이 주이다 보니 배송하기에도 난이도가 굉장히 높았다.


이 모든 걸 부각시켜야 하는데, 내가 가진 데이터베이스는 하나도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으나, 우선 바로 판매하기에도 편리하고 오프라인 매장의 장점을 살리는 픽업 위주의 상세페이지를 만들기로 했다. 그리고 이제 시작인데 결과물이 늦어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여기저기 물어가며 빠르게 하나를 완성했고 피드백을 받아 업로드를 했다. 하지만 바로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다음 제품을 촬영해야 했는데 일하는 공간인 사무실에는 판매 하는 제품이 하나도 없었던 것이었다. 부장에게 이것을 언급하자 이런 답변이 나왔다.


네가 직접 매장을 돌아다니면서 찍어 와. 여길 홍보하려면 매장이랑 상품들을 직접 눈으로 봐야 하지 않겠어? 겸사겸사 거기 직원들하고도 안면 트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난감함을 느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벽하게 맞는 말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일단 대부분의 매장에서 보유하고 있는 상품이 어떤 게 있는지도 모를뿐더러, 매장에서 직접 촬영하기엔 찍을 수 있는 구도나 연출이 너무도 한정되어 나는 가급적 사무실에서 촬영하길 원했다. 그래서 매장에서 대표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상품 및 가격을 무엇인지 알려주고, 가능한 제품을 사무실로 가져와달라고 얘기하자 부장이 농담으로 혹 떼려다가 혹 붙였다는 말을 했다.


한소리 듣긴 했지만, 어찌 됐건 한고비를 넘기고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또다시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내가 찍었던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아니면 좋은 소품이 눈에 들어왔는지 정확한 의도는 알 수 없으나 부장이 요청하지도 않은 촬영 소품들을 여러 개 샀던 것이었다.


“그거 써서 사진 찍어.”


툭하고 내뱉은 부장의 말에 속으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나와 A씨가 보기엔 부장이 산 소품들은 우리가 판매하는 제품들과 어우러지지도 않았고, 그래서 사용할 수 있는 것도 한정적이었다. 하지만 회사 돈으로 구매한 이상 아예 쓰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 어느 정도의 성의는 보여야 하니 초반에만 조금 쓰다가, 결국엔 필요했던 작은 소품들은 내 돈으로 직접 사서 사용했다.


그 이후론 혼돈의 상황 속에서 꾸역꾸역 시간이 흘러갔다. 완전 처음 해보는 업무에 선입 없이 주도적으로 일을 해야 하는 나. 마찬가지로 처음 해보는 일에다가 사람들에게 이래저래 치여 스트레스받던 A씨. 사무실에 인원이 늘자 본인이 편한 대로 활용해야겠다 생각했는지 매장으로 심부름을 보내거나, 폐업 매장 정리 및 신규 매장 오픈, 점장회의 등 업무 외적인 일을 간간이 시킨 부장. 앞에서는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돌려 말하고 뒤에서는 다른 사람들한테 불평을 얘기하는 사장.


기가막히게 맞는 게 하나도 없는 톱니바퀴들이었지만, 어찌어찌 일이 굴러갔던 건 A씨의 노력 덕분이었다. 나는 새로운 타입의 사람들과 일거리에 어버버 하며 적응하기 바빴고, 다른 사람들 또한 이런 상황을 컨트롤하기에 급급했다. 그런데 A씨는 사람들의 성향 및 일의 진행 상황을 전체적으로 파악하고 중간에서 조율해 주었기 때문에 큰 어긋남 없이 일이 흘러갈 수 있었다.


A씨는 특이하게도 수동적인 일을 하고 있었지만, 능동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무언가를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하는 나를 가끔 컨트롤 해주어 위기를 벗어나게 해주었다. 퇴근 후 종종 저녁을 같이 먹으면서 그날 있었던 일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었고,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에서는 ‘그럼 이렇게 얘기해 보자.’며 다른 방법으로 말을 건넸다.


다행인 점은 내가 매일매일 괴로워하는 와중에도 도망치거나 회피하려는 생각은 잘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A씨가 나를 위해 많은 말을 해주었는데, 그것도 애정이 없으면 하지 못하는 일이라는 걸 아니까 잘 해서 그 마음에 보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적지 않은 나이에 신입으로 새로 이직해서 원하는 업무 및 새로운 것들을 배울 수 있었기에 보람도 있었고 더 많이 배우고자 하는 생각도 있었다.

이전 01화프롤로그. 이전의 나를 돌아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