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영부영 시간이 흘러 한 해가 지나고 1월 초가 되었다. 웬일로 오전에, 부장의 주최로 사무직원끼리 회의를 가졌다. 굉장히 드문 일이라 긴장한 채로 부장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신규인원을 채용하면 인건비를 일부 지원받을 수 있는 정부 지원 사업이 있는데, 이것으로 사무인력을 늘리는 건 어때? 아무래도 온라인 쪽은 혼자 작업하기엔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지원금을 받고 인원을 늘리면 회사에 도움이 될 거 같은데. 다들 어떻게 생각해?”
부장이 말한 정부 지원 사업을 찾아보니 예상보다 지원금이 꽤 컸고, 지원 기간도 적당해서 사장과 A씨도 괜찮다고 말했다. 나도 이정도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으나 한편으론 마음이 편치 않았다.
‘사람이 많을수록 작업시간이 빨라지긴 하겠지만…. 나 혼자도 헤매고 있는데 다른 누군가와 같이 일을 해야 한다고? 100%.. 여러 번 욕먹겠네. 하하.’
또 다른 난관을 직감했지만, 어차피 지금처럼 있는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질 리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정말 사람이 늘어나면 도움이 되냐는 A씨의 물음에 맞다고 대답을 했다.
'그래. 그래도 둘이서 하면 일을 빨리 할 수 있으니까. 그럼 지금보단 낫지 않을까?'
최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하며 부장의 제의에 찬성을 했고, 사장도 동의를 하여 지원 사업을 신청하기로 하고 회의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지금의 사무실은 거주용 오피스텔이어서, 인원이 추가되면 업무하기 불편할 게 분명했기 때문에 넓은 사무용 오피스텔로 가기로 결정했다. 공간도 좀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선반과 파티션을 구입하고 새로운 컴퓨터를 장만하는 등 순식간에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그러는 동안 정부 지원 사업도 승인이 나 구인을 했고, 일주일 만에 직원을 구했다.
새로 입사한 직원은 직장 생활이 처음인 완전한 신입이자 나와 비슷한 성향의 조용한 사람이었다(앞으로 B라고 칭한다). 디자인을 배우긴 했지만 아직 잘 만들지 못하는 B에게 수정사항을 구체적으로 지시하면서 성장하도록 도와주어야 했는데, 나도 아직 디자인에 대해 잘 모르는 데다가 처음으로 직속 후배를 둔 터라 컨트롤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A씨에게 혼나가면서 후배를 대하는 법을 조금씩 배워나갔다.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다사다난한 일들이 펼쳐졌으나 다행인 건 A씨가 확실하게 기획자로서 팀을 이끌겠다는 다짐을 해 의지가 되었다.
구인을 시작한 날 A씨는 퇴근 후 나를 데리고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제는 회사 홍보 영상 아이디어였는데, 다양한 아이디어를 척척 내는 A씨를 보면서 나는 2가지를 느꼈다. 첫 번째는 내가 기획자로서의 재능이 없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내 방식대로 잘 소화시킨다는 것이었다.
이전까지는 식물이라는 관심 없는 주제를 가지고 아이디어를 짜야 하니 당연히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식물하고의 연관성 없이 이것저것 만들어내고 싶다는 A씨의 말을 듣고 있자니 이건 취향의 차이가 아닌 기획 능력의 차이가 있다는 게 분명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A씨가 쏟아내는 아이디어들이 무조건 해야 하는 일처럼 무겁게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어떤 건 ‘회사 홍보랑 무슨 상관이 있지?’ 싶었던 생각들도 있었으나, 어떤 건 당장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런 생각들은 머릿속에서 어떤 식으로 촬영을 해야 할지, 편집은 어떻게 해야 할지 자연스럽게 머릿속으로 그려졌다.
사람이 늘자 새로운 프로젝트들도 많이 늘었지만, 재미있다고 느껴지는 순간 또한 많아졌다. 시간이 없어 하지 못했던 영상 작업도 하고, 상세페이지도 우리만의 특징을 살려 잘 만들었다. 그리고 나 또한 선임으로서 우스워 보이진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항상 긴장하고 한 발 빠르게 생각하고 움직이는 등의 노력을 했다. 또 B씨를 가르치면서 배우는 점도 있어 고달프지만 보람 있는 직장 생활을 했다.
그렇게 새로운 사람이 추가가 됨으로써 일이 수월하게 돌아갔다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은 나의 희망 사항일 뿐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모두의 신경이 조금씩 날카로워지는 게 느껴졌다.
사장은 직원 관리에 대한 부담을 느꼈고, A에게 말하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했다. A씨는 안 그래도 기분 좋지 않은 출근에 시도 때도 없이 사장의 불평을 들으며 점점 더 예민해졌고, 심지어 두통을 호소하며 출근하지 못한 적도 있었다. 나 또한 매일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는 A씨의 눈치를 보기 바빴으며(어느 날 이것에 대해 물어봤더니 출근 자체가 스트레스인데 어떻게 기분 좋을 수 있냐는 말이 돌아왔다.) 그러다 보니 사무실에 항상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나 또한 본 업무를 체계화함으로써 빠르게 진행을 했지만 매장 직원 채용관리, 포스기 관리, 부장이 오픈한 추가 매장 관리까지 맡게 되면서 스트레스가 쌓여갔다.
부장은 새로운 사무실에 배송물품들이 한가득 놓고, 매일 출고할 물품들을 준비하라고 시켰다. 이건 담당자가 B로 정해졌는데 준비가 오래 걸리자 결국 A씨의 분노를 샀다. 이처럼 점차 날카로워진 A씨의 말과 행동에 마음 편할 날이 없어 나는 점점 우울해졌고 출근길에 교통사고가 나길 바라는 생각이 시간이 갈수록 간절해졌다.
그즈음 현실을 잊고 시간을 보내기 위해 영화를 자주 봤다. 역경을 딛고 일어나는 주인공들을 보니 나도 이러한 역경을 극복할 기운이 생기는듯해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하지만 이 행동 또한 스트레스를 받곤 했다. 영화관의 경우 장시간 스크린에 몰두해야 하는데, 회사 업무 특성상 바로 픽업하려는 주문 건이나 문의하는 사람들을 즉각적으로 처리해야하기에 영화를 보는 중간중간 핸드폰을 확인해야 했다. 다른 사람들도 함께 확인하긴 했지만, 이 일의 메인은 나라고 생각해 책임감이 컸기 때문이다.(실제로 주문 문자는 내 핸드폰으로 왔다)
주말에는 잠에서 깨도 일어날 기력이 없어 침대에 계속 누워 있다가 다시 잠드는 나날들이 반복됐다. 돌이켜 보면 언제 일이 터질지 모르는 불안한 상태로 매일 회사 생활을 했고, 주말에도 고객 문의나 주문을 해결해야 했기에 항상 긴장한 상태라 회피성으로 잠에 빠져드는 방법을 선택했던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