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회사에 입사한 지는 1년 3개월이 되었고 새로운 직원인 B가 들어온 지는 3개월째가 되었다. 그동안 I 회사의 온라인 스토어는 완전히 새롭게 거듭났고, 주문량도 점차 늘어났다.
사무실은 이전과는 다르게 활기가 생겼으며, 다들 새로운 분위기에 익숙해졌다. 하지만 그런 기분도 잠시. 큰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은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일어났다. 솔직히 아직까지도 이 일이 어떻게 시작됐는지 모른다. 짐작하기론 점장들만 있는 단체방이 있고, 그 안에서 일부 점장들의 불평불만이 쌓이다가 터졌다고 예상할 뿐이다.
A씨는 특유의 예민한 감각과 사장과의 소통으로 무언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때까지도 눈치가 없었고, 회사에 관심도 없어 무언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그 이외에도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은 여러 일들이 있어 그 과정을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여러 이해관계 속에 가장 모난 돌이었던 내가 타깃이 되어버렸다는 걸 알게 되었다. 퇴근 후 갑자기 점장 방에서 내 이야기가 언급이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작업했던 것에 대한 불만이 단체방에 장문으로 올라왔지만, 나는 그 내용을 파악하기 힘들었다. 사실상 내가 무슨 잘못을 했거나 언급이 될만한 사건이 일어났다면 수긍을 하겠는데, 나는 누구와 갈등 관계도 없었고 내 일을 했을 뿐이라 이들이 하는 말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미 다 수정된 사항 가지고 왜 언급을 하는 거지? 이건 그냥 나 자체가 싫은 거 같은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A씨에게 전화가 왔다.
“바로 사장님에게 전화를 해서 네가 앞으로 잘 하겠다고 얘기해.”
A씨는 이런 식으로 말하라고 계속 얘기했으나 나는 왜 그래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나에 대해 말 한 건 점장인데 왜 사장에게 전화를 해야 하는지, 잘 하겠다는 말이 무슨 소용이 있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에서야 이유를 돌이켜 보면 점장이 저렇게 단체방에 언급을 하기 전까지 온라인 일에 대한 불만을 사장에게 여러 번 어필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장은 나에게 직접 말하기보단 A씨에게 이야기를 했고, A씨는 나와 함께 최선을 다해 불만사항을 해결했다. 하지만 점장은 사실 이게 완벽하게 해결되길 바란 게 아닌 그냥 나란 사람 자체가 싫었던 듯했다. 언급한 것들을 다 해결하고 났는데도 불구하고 공식적으로 얘길 했으니 말이다. 아무튼 그때의 나는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상태로 A씨가 시키는 대로 사장에게 전화를 했고, 앵무새처럼 들었던 말들을 그대로 얘기했다. 사장은 알겠다고 했고 통화가 끝났다. 이 이후로 다시 A씨에게 전화를 걸어 통화 내용을 전달했다.
“잘했어. 그러고 내일 사장님한테 면담 신청해서 앞으로 네가 매장 돌아다니면서 발 빠르게 움직이겠다고 말해.”
A씨는 이 말 이외에도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었으나, 이번에도 나는 이유를 모른 채 알겠다고 대답하고 통화를 마쳤다.
‘B씨가 들어온 이후 여러 차례 매장을 돌아다니면서 홍보도 하고, 온라인도 리뉴얼 다 했는데. 지금 많이 움직인다고 해서 그게 의미가 있나?’
의문이 계속 들었지만 가만히 있는 것보단 뭐라도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해, A씨의 말대로 다음날 출근 후 사장에게 연락을 해 면담 신청을 했다. 하지만 사장과의 직접적인 대화도 어제와 별 차이없이 흘러갔다. 나는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조차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했고, 사장은 알겠다는 말을 반복했다. 대화가 끝난 후 나는 별생각 없이 일을 하러 갔다.
이 이야기의 결론이 지어진 것은 다음날이었다. 회사에서 점심을 먹고 난 후 사무실로 들어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부장이 나타났다.
"할 말이 있는데 , B는 잠시 나가있고 나머지는 앉아봐."
B는 의아한 표정으로 밖으로 나갔고, A씨는 뭔가 알고 있는 듯 결연한 표정으로 부장의 옆에 앉았다. 잠깐의 침묵 후 부장은 사장이 나를 해고했다는 말을 했다.
"아. 그랬군요."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덤덤하게 그 말을 받아들였다. 이때 들었던 감정은 두 가지였다. 억울한 마음과 드디어 이 힘들었던 싸움에서 해방되었다는 마음.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이런 능동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어찌어찌, 아등바등 견디며 버티고 있었는데 더 이상 그런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에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마치 끝없는 줄다리기를 하다가 '너는 졌으니 더 이상 힘들여서 줄을 당기지 않아도 돼.'라는 말을 듣고 강제로 줄을 놓는 상황이 되었달까. 한순간에 맥이 빠졌다.
‘내 노력이 무의미한 것이었나.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이들처럼 될 수 없는 걸까.’ 이런 생각에 너무나 우울했고, ‘그래. 그동안 고생했네. 드디어 이 상황을 더 겪지 않아도 된다!’ 하는 해방감도 들었다. 그리고 이 상반된 두 생각과 감정에 헛웃음과 함께 눈물이 흘러 나왔다.
부장은 이런 내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고, 나는 부장에게 지금의 심정을 이야기하며 그 결정을 받아들인다고했다. 이후 부장은 자리에서 일어났고 사무실엔 A씨와 나 둘만 남겨졌다.
“괜찮아?”
“시원섭섭하네요.”
실컷 울고 나자 개운해졌다. A씨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고생했다는 말을 했고, 오늘은 B와 함께 일찍 퇴근하면서 퇴사하게 됐다는 말을 직접 하라고 했다. 그래서 퇴근 후 B에게 나의 퇴사 소식을 전하며 계속 회사를 다닐 것이냐고 물었다. B는 회사의 정부 지원 사업을 통해 들어온 터라,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6개월을 계약 기간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이제 내가 없으니 원한다면 정직원으로 쭉 일할 수 있게 되었다.
“아뇨. 안 다닐래요.”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이 말에 A씨는 아쉬워했으나 솔직히 나는 그럴 것이라고 예상했다. B가 이 회사에 다닌 것은 3개월뿐이지만, 내가 이 회사에서 하고 있는 일이 어떤 취급을 당하는지 알기엔 충분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내가 없으면 그것을 B가 감당해야 하는데, 나와 비슷한 성향의 사람으로서는 버티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다.
퇴사일은 1개월 뒤였다. 나는 그 시간 동안 인수인계를 할 생각이었는데, 해고 통보를 받은 일주일 뒤쯤 부장이 다시 나에게 말을 걸었다.
“사장님이 결정을 번복하셨어. 사무직원을 이렇게 많이 써보기도 처음이고, 이래저래 심난해서 급하게 결론을 내리셨다 하더라고.”
이해는 했다. 주주들 사이의 갈등, 매장 운영의 어려움, 점장 및 직원들과의 마찰, 운영비, 인건비 등등을 해결해야 하는 자리이다보니 문제를 해결하기보단 없애버리는 게 마음이 더 편할 수 있겠지. 게다가 성격도 엄청 급하신 분이니까 실수도 할 수 있고. 하지만 그건 사장의 입장일 뿐 내가 받아들일 이유가 되진 않았다.
‘게다가 근본적인 원인은 사장과 나 사이가 아니라, 점장과 나 사이이지 않나?’
이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리고 이미 이곳을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후련함이 더 커진 상태였기에 그대로 퇴사하겠다고 대답했다. 사실 후임이 있는 지금이 이곳을 수월하게 탈출할 수 있는 기회라는 이성적인 판단도 있었다.
그 즈음 A씨가 나에게 자주 말을 걸었다. 나는 내 얼굴을 보지 않아서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잘 몰랐다. 특히 그 시기엔 방어적으로 내 감정이나 생각에 벽을 치고 깊게 파고들지 않았던 터라 뇌가 텅 빈듯이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냥 내가 해야 할 일만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표정이나 분위기는 그렇지 않았나 보다. A씨는 신경이 쓰였는지 일하는 중간중간 나를 데리고 나와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둘이 따로 있게 되면 이상하게도 말을 하기 시작할 때 자동적으로 눈물이 나왔다. 아무 생각이 없는 것 같았지만 속으로는 여러 생각들이 있었나보다. 다른 회사에서도 적응하지 못할 것 같은 걱정이라던가 불안함, 우울함 등이 있었다.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고나니 어느 순간은 더 이상 아무런 생각이 없었는데, A씨가 계속 묻자 아무 얘기나 한 적도 있었다. 그냥 속에 담아두고 아무에게도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했다. 뭐랄까, 상처를 드러내고 싶진 않았지만, 뭐라도 말해야 이해시킬 수 있을 것 같아서. 납득되는 무언가를 이야기해야 그 자리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에 이런저런 말을 했던듯싶다.
어찌 보면 회사라는 건 작은 울타리일 뿐이었는데 그 안에서조차 적응하지 못했다는 게 한심했고, 또 아는 사람이 있으니 창피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사회라는 큰 사파리안에서 부딪치기엔 나는 아직도 초보자인걸. 그래도 이전보다 경험치가 쌓였단 생각이 한켠에 있었다.
그렇게 한 달의 시간이 흘렀고 모두가 힘든 시간을 겪었던 시절이 그렇게 끝이 났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실패한 직장 생활이라던가 후회할 만한 시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직업을 바꾼 이후 여러 가지를 경험해 볼 수 있었다. 매달 오프라인 이벤트를 진행해 보기도 하고, 온라인 쇼핑몰 이미지 제작 및 관리, SNS 운영, 영상 촬영 및 편집까지도 해봤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 내 성향을 온전히 알게 되었다. 의외로 내가 나를 잘 알지 못했다는 것을 파악했다. 나는 나 스스로밖에 살아오지 못했기 때문에 이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하지만 스스로의 나는 알아도, 타인들 속에서의 나는 잘 모를 수밖에 없다. 타인과 한계까지 부딪쳐본 적이 잘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 대부분은 부딪치지 않으려 배려하거나 회피하려고만 하니까. 그리고 나 또한 이곳에 있었을 땐 내 감정이나 생각들을 구체적으로 인식하지 못했다. 나 스스로나 상황을 직면하기엔 내가 강인하지 못하기에, 일부러 감정을 인식하지 않으려고 더 움츠렸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