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잔인했던 2025년 4월을 기억하며
소견서를 받아 집으로 향하는 길, 바로 심장 진료를 보는 대형병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내 주변엔 심장 쪽으로 꾸준히 진료를 받는 지인들이 많았다. 그래서 고맙게도 자신들이 알고 있는 병원 정보들을 알려줬고, 덕분에 병원 후보가 빠르게 추려지게 되었다. 주말이었기 때문에 월요일인 4월 28일에 여러 병원에 전화를 걸어 예약을 잡기로 했다.
4월 28일, 운이 좋게도 빠르게 병원 예약이 잡혔다. 불과 이틀 후였다.
하지만, 이틀이 2년 같을 정도의 지옥같은 시간들이 찾아왔다. 몸이 급격하게 나빠지기 시작했다. 마치 곧 병원에 간다는 걸 아는 듯이.
음식만 먹으면 다 게워냈고, 일어서기만 하면 어지러워서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있어야만 했다. 그뿐인가? 오한과 고열은 그 와중에도 계속됬다. 또, 갑작스럽게 허리가 미친듯이 아파 엉엉 울면서 고통스러워할 정도였다. 그런 나를 보고 가족들은 119를 불러야 하는 게 아니냐고 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금새 괜찮아지길 반복해서, 그래서 나와 가족들 모두 조금만 참자는 심정으로 이틀을 버텨냈다.
이틀 후, 예정대로 병원에 방문했다. 의사선생님께 소견서를 제출했고, 그동안의 증상을 말씀드렸다. 내 이야기를 들으시며 소견서를 유심히 보시던 선생님은 심장초음파를 받은 후 바로 응급실로 가라는 말을 하셨다. 외래 진료에서 응급실로 갈 수가 있나? 싶었지만, 별 거 아닐거라 생각하며 심장초음파를 받으러 떠났다.
사실 심장초음파를 받는 순간에 알았던 것 같다. 오늘 내로 집에 갈 수 있을 병이 아니라는 걸. 나의 심장초음파를 봐주시던 간호사 두 분이 계속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시는 걸 봐버렸기 때문이었다. 그 모습 때문에 괜히 더 불안해져 별 거 아닐거란 희망을 애써 가지며 되새겼다.
그 때의 내 혈압은 60까지 떨어진 상태였다.
사람이 많아 겨우 들어간 응급실에서의 상황은 더 심각했다. 나의 맥박을 재는 기계가 계속해서 경고음을 울려대며 쉴 틈을 주지 않았다. 오죽하면 옆에 누워있던 한 아저씨가 계속 울려댄다며 자신의 보호자에게 한 마디 했을 정도였으니까. 나와 아빠는 그저 불안한 경고음을 들으며 몇 시간을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점점 늘어가는 채혈 횟수, 굵어지는 주삿바늘과 갑자기 꽂힌 소변줄을 바라보며.
여기서부터는 잘 기억이 안 난다. 아빠의 말로는, 어느 순간 응급의학과 교수님까지 내려오셔서 다른 의사선생님들께 나의 상황을 보고받았고, 갑자기 나를 응급실 구석의 처치실로 데려가라고 했다. 그 때부터 나는 인터넷에서만 듣던 '그 상황'을 직접 겪게 되었다. 모든 의료진분들이 나에게 다 달라붙는 상황을. 그리고 곧 나는 아빠를 뒤로하고 처치실로 들어갔다.
처치실에 들어가선 더 분주했다. 모든 의료진분들이 긴박하게 무언가를 준비했고, 곧 내 허벅지에 무언가가 꽂힌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 시점에서 나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 한데다 오한으로 인해 덜덜 떨리는 몸, 게다가 갑자기 내 허벅지에 무언가를 꽂는다니. 애꿎은 의료진분들께 "추워요, 목말라요" 라는 말만 수십번 되풀이하다 갑자기 허벅지에 꽂힌 바늘에 비명을 질렀다.
인생을 살면서 병원에서 그렇게 큰 비명을 질러본 적 있는가?
지옥같은 시간이 지나가고, 곧 나는 "심장내과 중환자실" 로 올라간다는 소리를 들었다. 아직도 기억난다, 그 때의 당혹감은. '내가 중환자라니?' 응급실을 걸어 들어온 내가 순식간에 중환자가 되었다니. 생각할 틈도 없이 아빠는 의료진분들께 이런저런 설명을 듣고, 내 짐을 모조리 챙겨 나에게 짧은 인사를 한 뒤 먼저 응급실을 나섰다.
모두가 잠든 깜깜한 중환자실에 들어왔다. 거기서도 상황은 끝나지 않았다. 의료진분들은 나의 옷을 갈아입히신 뒤 갑자기 추후 어떤 상황을 대비해야 한다며 내 목에다 바늘을 꽂은 후 꿰매듯이 작업을 하셨다. 처치실에서처럼 소리를 지른 후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그동안의 과정들이 아프긴 아팠지만 아직 정신은 있었기 때문이다. 나를 봐주시는 간호사 한 분께 "제 대학 동기랑 똑 닮았어요. 놀랐어요" 라고 힘겨운 스몰 토크(?)를 할 정도였고, 나의 머리를 양갈래로 묶어야 한다는 말에 "저 머리 짧아서 안 묶일거예요..." 라는 정보 제공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후론 기억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