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수영을 합니다

by 굴러가유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진 6시 기상.

화들짝 눈이 떠지고 나면 새벽수영으로 단련된 내 신체리듬에 비해

내 정신리듬은 아직 로딩 중이다.



'아. 쉴까. '



이 고민은 지금까지 3주 정도 다니면서 안 한 적이 없다.

단지 이 고민이 들어오는 동시에 이미 몸을 일으켰다면 그대로 가는 거고,

몸이 움직이지 않으면 이 고민이 지속되어 점점 갈등의 소용돌이에 휩싸인다.


그렇게 미적대기를 오분. (많이도 아니다.)

생각하기를 포기하고 몸을 바로 세우다 보면

알아서 양치하고, 양말 신고, 수영용품들을 체크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그렇게 아직 자고 있는 우리 집을 뒤로한 채 숨죽여 문을 열고 나간다.

그렇다고 해서 생각이 멈춘 건 아니다.


' 아직 여름은 아닌가 보네. 춥다 좀. '

' 아 피곤해 눈이 안 떠진다.. 감고 가야지.'

' 아 파란불... 뛸ㄲ.. 아냐 걷자..'

' 아 시험 얼마 안 남았는데.. 수영은 사치였나. 공부할걸 그랬나'

' 아 토익시험 날짜 미룰까.. 성적 너무 안 좋을 거 같은데.'

' 아 샤워실 자리 없다.. 좀 더 일찍 올걸'

' 아으 오늘 왜 이렇게 물이 차가워..'


아, 아, 아, 줄줄이 이어지는 아 세례에 아침인데도 머리가 산만하다.


아침 출근준비 하시는 아빠랑 인사한 걸 빼면

그 어떤 타인과도 대화하지 않는다.


남들이 보기엔 그저 겨우 걷는 좀비같이 보일 수 있지만

끝없이 내 안의 갈등과 고민, 스트레스를 해결하느라 아침부터 바쁘다.


그러다 7시.

선생님의

"발차기 2바퀴, 출발!" 신호를 듣고

25미터 레일 끝을 향해 벽을 밀치고 나아가는 순간.


어지럽게 내 머릿속을 맴도는 온갖 잠념이 그대로 stop!

그대로 얼음! 한 상태로 오로지 이 공간엔 '나'와 '물'만 존재한다!


공복으로 가벼운 몸이 출렁이는 물살을 헤쳐 나아갈 때 느껴지는 해방감!

생각보다 빠르게 잘 나간다고 느끼며 흡족하다가도

금세 숨이 차오르고 자세가 무너지면서 '거만했다!' 잠시 자책하기도 한다.


한 바퀴, 자유형을 할 때 숨을 쉬려고 고개를 바짝 들어 올리니 몸이 무너진다. 체크!

두 바퀴, 왼쪽 팔을 끝까지 귀 옆에 붙이려고 노력해야 하는구나. 체크!

세 바퀴, 아 배영은 약한데, 일단 해보자. 고!

네 바퀴, 배꼽은 들어 올리고, 턱은 당기고, 팔을 돌릴 땐 롤링, 무릎은 튀어나오면 안 돼. 체크!


그렇게 나는 나를 계속 관찰하고 수정해 나간다.

수영까지 하면 몸이 남아나지 않겠다고?


전혀.

수영은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어서

오히려 힐링이 되는 시간이라고!



50분은 생각보다 빠르게 흘러가고

샤워실 자리는 눈치싸움으로 빠르게 선점, 후다닥 씻고 덜 말린 머리카락을 털며 나오면


정말 그렇게 행복하지 않을 수가 없다.


여전히 쿵쾅대는 심장, 맑아진 시야, 차가운 머리카락 사이사이로 흘려들어가는 상쾌한 바람.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쌓일수록 점점 원래의 나로 돌아온다.


' 오늘은 꼭 자소서 마무리하고... 토익 공부한 다음에.. 자격증 공부도... 아..ㅠㅠ

어라. 나 이 생각들을 수영할 땐 아예 안 했네?'


"몰입"을 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인지하면서

그런 어려운 걸 나 자신이 해냈다니, 기특하고 멋지다.


덜 말린 머리카락이 이제 막 깨어난 아침공기와 햇살에 어우러진다.


이 맛에 새벽수영을 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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