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의 종류
아들은 스타벅스를 참 좋아한다. 여름에는 시원한 아이스 초코를, 겨울에는 따뜻한 핫초코를 마시며 태블릿으로 게임을 하거나 유튜브를 보는 것이 그의 작은 즐거움이다. 그날도 아들과 스타벅스에 들렀다. 나는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했고, 아들은 늘 하던 대로 핫초코를 선택했다.
핫초코를 홀짝거리던 아들이 물었다.
"아빠, 커피는 맛있어요? 왜 어른들은 커피를 이렇게 좋아해요?"
"음, 커피는 어른들에겐 기호식품 같은 거야. 맛도 있고, 잠을 깨우기도 하고, 뭔가 여유를 즐기게 해 주거든. “
커피를 음미하다가 생각해 보니 우리 주변에 커피 파는 집이 너무 많다. 반경 500미터 안에 커피를 파는 곳만 30개가 넘는다. 도대체 이 많은 커피숍들은 어떻게 다들 살아남는 걸까? 스타벅스 같은 이름난 프랜차이즈부터 작은 개인 카페, 심지어 편의점에서도 커피를 판다. 거기에 베이커리와 식당들도 커피 메뉴를 갖추고 있으니, 커피는 이제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이 동네의 필수품처럼 보인다.
이렇게 많은 커피숍들이 있다면, 당연히 경쟁이 치열할 것이다. 그런데도 매장마다 손님들이 꽤 있는 것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과연 매출은 올리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이런 커피숍을 보며 떠오른 두 단어가 있다. 바로 경쟁과 독점이다. 경쟁은 말 그대로 여러 가게나 회사가 서로 손님을 끌어오기 위해 경쟁하는 상황이다. 반면, 독점은 하나의 회사나 가게가 시장을 완전히 차지한 상태를 말한다.
"경쟁과 독점 중에서 뭐가 더 좋을까?"라는 질문은 단순히 좋고 나쁨을 떠나, 시장의 구조를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우리 주변의 모든 상품과 서비스는 특정한 시장 구조 안에서 거래된다. 커피숍처럼 많은 가게들이 비슷한 상품을 팔면서도 각자 조금씩 다르게 경쟁하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특정 회사가 시장을 독점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상품과 서비스가 거래되는 시장은 크게 네 가지 구조로 나눌 수 있다. 각 구조는 경쟁의 정도와 소비자 선택의 폭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보여준다.
먼저, ‘독점 시장’은 한 회사가 시장을 완전히 지배하는 구조다. 이 회사가 상품이나 서비스의 가격을 결정하고, 소비자들은 그 가격에 맞춰야만 이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전기나 수도 같은 공공서비스는 대부분 독점적으로 운영된다. 전봇대나 수도관을 여러 회사가 중복으로 설치하는 것은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독점은 비용을 줄이고 서비스의 안정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독점 시장의 문제는 소비자들이 선택권이 없고, 독점 기업이 가격을 높게 책정할 경우에도 대안이 없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한때 통신 서비스가 독점적이었던 시절이 있다. 이 시절에는 비싼 요금과 느린 서비스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은 불만을 감수해야만 했다.
비슷한 사례로,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 운영체제도 독점의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마이크로소프트는 거의 모든 PC에 윈도를 기본 운영체제로 설치하며 시장을 지배했다. 이로 인해 다른 운영체제는 경쟁하기 어려운 환경이 조성되었다. 그리고 사용자들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정한 가격과 조건에 따라야 했다.
이 독점적 위치는 미국 정부의 반독점법 위반 조사로 이어졌다. 1998년, 미국 법무부는 마이크로소프트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미국 법무부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시장 지배력을 남용해 경쟁을 억제하고 소비자 선택을 제한했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은 반독점법의 중요성을 대중에게 알린 대표적인 사례로 남아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사건은 결국 법적 합의로 마무리되었지만, 이 과정에서 독점의 문제점과 그 규제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졌다. 이 사건은 독점이 단순히 기업의 성장 전략이 아니라, 소비자 선택과 공정한 시장 구조를 위협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중요한 사례다.
다음으로, ‘과점 시장’이 있다. 과점 시장은 몇몇 대형 회사가 시장을 나누어 가지는 구조다. 자동차 시장이 대표적이다. 현대차, 테슬라, 도요타와 같은 몇몇 주요 회사들이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여러 브랜드 중에서 선택할 수 있지만, 그 선택지가 제한적이라는 특징이 있다. 과점 시장에서는 서로 몇몇 회사들이 경쟁하면서도, 경쟁의 강도가 완전 경쟁 시장만큼 치열하지 않다.
항공사 시장도 과점 시장의 대표적인 사례다. 특정 노선을 운영하는 항공사가 몇 개에 불과하다면, 이들 간의 경쟁은 제한적일 수 있다. 항공권 가격이 갑작스레 오르거나, 여러 항공사가 비슷한 가격대를 유지하는 현상을 목격했을 때, 이는 과점 시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협력적 행동의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가격 협조는 때로 명시적인 담합으로 이어질 수 있어 불법이다. 그래서 가격담합이 은연중에 이루어질 수도 있다.
과점 시장에서는 경쟁뿐만 아니라 기업 간의 묵시적 협력도 나타날 수 있다. 이는 기업들이 직접적으로 합의하지 않더라도, 서로의 행동을 예측하며 암묵적으로 협력하는 현상을 뜻한다. 이때 중요한 개념이 게임이론이다. 게임이론은 기업들이 어떤 전략을 선택할지 분석하는 도구로, 과점 시장의 기업들이 가격 정책을 결정하거나 협조 여부를 고민할 때 사용된다.
예를 들어, 한 회사가 가격을 내릴 경우, 다른 회사도 가격을 내리며 가격 경쟁이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결국 모두의 이익을 줄이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반대로, 모두가 가격을 유지하기로 묵시적 합의를 한다면, 기업들은 서로 손해를 줄이고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 이러한 행동은 시장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소비자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
한국의 통신 시장이 대표적인 사례다. SKT, KT, LG유플러스라는 대형 3사가 과점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이들은 과열된 가격 경쟁 대신, 암묵적으로 가격을 비슷하게 맞추며 안정적인 수익을 유지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소비자 입장에서 선택지는 많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격이 쉽게 내려가지 않고 서비스 요금이 높게 유지되는 결과를 낳는다. 이는 과점 시장의 기업들이 경쟁보다는 협력을 선택할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게임이론은 이런 과점 시장의 복잡한 의사결정을 이해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 하지만 다소 깊고 난해한 부분이 있으므로, 게임이론의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에 더 자세히 설명하도록 하겠다. 중요한 점은, 과점 시장에서는 기업들이 경쟁하면서도 서로를 의식하며 행동을 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특성은 소비자에게 긍정적인 결과를 줄 수도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선택권을 줄이고 가격 부담을 가중시키는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세 번째는 ‘독점적 경쟁 시장’이다. 앞서 얘기한 커피숍들이 독점적 경쟁 시장이다. 독점적 경쟁 시장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뭔가 모순처럼 느껴진다. 독점과 경쟁은 정반대의 개념인데, 어떻게 한 시장에서 이 두 가지가 함께 존재할 수 있을까? 이 시장에서는 독점과 경쟁이 동시에 작동한다는 점이 독특하다.
우선, 모든 회사는 특정 측면에서는 독점적이다. 커피숍도 ‘커피’라는 주제에서는 독점적이다. 하지만 각 가게는 자신들만의 독특한 메뉴, 서비스, 분위기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우리 가게는 다르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커피숍은 고급 원두와 섬세한 핸드드립 방식으로 특별함을 강조한다. 이 순간, 그 가게는 고유의 경험을 제공하는 한 독점적인 존재가 된다.
하지만 동시에, 이들은 치열한 경쟁 속에 놓여 있다. 바로 옆 블록에 있는 다른 커피숍은 트렌디한 인테리어와 SNS에서 인기 있는 음료를 통해 소비자를 끌어들인다. 소비자는 여러 가게 중 하나를 선택할 자유가 있기 때문에, 모든 가게는 경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아이러니가 독점적 경쟁 시장의 핵심이다. 가게나 회사들은 독점처럼 자신만의 고유함을 만들어 내는 동시에, 소비자들을 붙잡기 위해 경쟁해야 한다. 이 균형 속에서 독점과 경쟁은 마치 양면의 동전처럼 함께 작동한다. 이를 통해 시장을 더욱 흥미롭고 다양하게 만든다.
또 다른 예로 치킨 시장 역시 독점적 경쟁의 좋은 예다. 프랜차이즈 치킨만 해도 수십 개의 브랜드가 있다. 각 브랜드는 바삭한 튀김, 매운 양념, 특별한 소스 등 자신들만의 특색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한 브랜드는 배달 서비스의 신속함을 강조하고, 또 다른 브랜드는 오프라인 매장의 가족 친화적 분위기를 내세운다. 이런 차별화를 통해 경쟁하면서도, 기본적으로는 모두가 "치킨"이라는 동일한 상품을 판다는 점에서 독점적 경쟁 시장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다른 흥미로운 사례로는 원조 논란을 들 수 있다. "원조"라는 단어는 특정 상품이나 서비스가 본래 자신들의 것임을 주장하는 일종의 차별화 전략이다. 예를 들어, 한국의 전통음식인 설렁탕이나 칼국수를 전문으로 하는 가게들이 종종 "원조"라는 이름을 내세우며 경쟁한다.(특히 족발도...) 같은 지역에 있는 두 가게가 모두 "원조"를 내걸며 서로 자신들이 진짜임을 주장하는 경우도 흔하다.
원조 논란은 독점적 경쟁 시장의 흥미로운 특징을 잘 보여준다. 이 시장에서는 경쟁자들이 비슷한 상품을 팔지만, "원조"라는 이름이나 스토리텔링을 통해 차별화를 시도한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진짜 원조는 어디일까?"라는 호기심과 함께 자신의 경험과 취향에 따라 선택을 하게 된다.
독점적 경쟁 시장의 장점은 소비자들에게 다양한 선택권과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너무 많은 선택지가 있을 경우, 소비자가 혼란을 느끼거나 품질의 기준이 모호해지는 단점도 있다. 결국, 독점적 경쟁 시장은 "나는 독특하지만, 너희와 경쟁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이 모순적인 조화는 독점적 경쟁 시장을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포인트다.
마지막으로, 완전 경쟁 시장은 모든 회사가 동일한 상품을 팔고, 소비자들이 완벽한 정보를 가진 이상적인 시장이다. 농산물 시장이나 우유 시장이 이와 유사한 구조를 가진다고 생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쌀은 생산자들이 거의 같은 품질로 공급하고, 소비자들은 가격과 수급 상황을 보고 자유롭게 구매를 결정한다. 우유 역시 기본적으로 비슷한 품질의 상품으로 보인다. 브랜드나 포장이 다를 뿐, 본질적으로 우유라는 동일한 상품을 제공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완전 경쟁 시장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먼저, 상품의 차별화가 모든 시장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농산물조차도 친환경 인증, 재배 방식, 지역 특산물 같은 요소로 차별화된다. 우유 또한 단순히 흰 우유로만 판매되는 것이 아니라, 무지방, 유기농, 고칼슘 등 다양한 특성을 추가하며 브랜드마다 독특한 포지션을 구축한다.
또한, 완벽한 정보의 부재도 큰 이유다. 소비자들은 상품에 대한 정보를 모두 알 수 없기 때문에, 광고나 브랜드 이미지에 의존해 선택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우유를 살 때조차, 품질이나 가격을 넘어 '이 브랜드가 더 신선할 것 같아'라는 막연한 느낌으로 구매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시장 진입의 제한도 완전 경쟁 시장을 어렵게 만든다. 생산자들은 기술적, 재정적, 또는 규제적 이유로 시장에 쉽게 진입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우유를 생산하려면 목장 설비, 유통망, 브랜드 마케팅 등 막대한 초기 비용이 필요하다. 이런 진입 장벽은 완전 경쟁의 전제 조건인 "모두가 자유롭게 진입하고 퇴출할 수 있는 시장"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든다.
따라서 완전 경쟁 시장은 이론적으로만 존재하는 이상적인 개념에 가깝다. 현실에서는 완전 경쟁의 요소를 일부 포함한 시장이 있을 뿐, 진정으로 완전한 경쟁이 이루어지는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는 시장에서 상품과 서비스가 항상 독특한 차별화를 통해 소비자와의 관계를 형성하려는 본질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시장의 네 가지 종류를 알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일상적으로 커피를 마시고, 치킨을 주문하고, 자동차를 구입하는 데 있어 시장의 구조를 꼭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구조를 이해하면 우리가 선택을 할 때 어떤 힘이 작용하는지, 그리고 그 선택이 기업과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조금 더 명확히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독점 시장에서 소비자는 대안을 찾기 어렵다. 가격이 높거나 서비스가 부족하더라도 다른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다. 반면, 독점적 경쟁 시장에서는 다양한 선택지가 주어진다. 하지만 너무 많은 선택이 오히려 혼란을 일으킬 수도 있다. 이러한 시장의 특성을 이해하면, 왜 어떤 시장은 다양한 브랜드가 존재하는지, 또 어떤 시장은 한두 회사만 남아 있는지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
아들은 스타벅스 소파에 앉아 유튜브를 보며 말했다.
"아빠, 근데 커피숍이 이렇게 많아도 잘 되는 건 신기해요.
사람들이 다 나눠서 가는 건데."
나는 웃으며 말했다.
"그러게. 다들 자기만의 매력을 만들어서 손님을 끌어모으는 거야. 커피숍마다 분위기도 다르고, 맛도 다르고, 메뉴도 다르잖아. 심지어 스타벅스라는 브랜드도... 이게 바로 경쟁하면서도 독특한 걸 만들어내는 시장의 힘이지. “
아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우리 동네에서 제일 잘 되는 커피숍은 독점하는 거예요? “
"아니, 독점은 아니야. 그 가게가 잘 되는 이유는 독특한 매력 덕분이지. 하지만 다른 가게들도 계속 경쟁하면서 자기들만의 장점을 만들려고 노력할 거야. 그래서 아빠가 맛있는 커피를 더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거란다. “
이처럼 시장의 구조는 단순히 경제학 교과서 속 이론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선택과 경험 속에 살아 있다. 커피 한 잔, 치킨 한 마리, 혹은 자동차 한 대를 고르는 순간마다 우리는 시장의 힘과 원리를 몸소 체험하고 있는 셈이다.
시장의 구조를 이해한다고 해서 우리의 삶이 크게 달라지진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구조를 조금이라도 알고 나면, 우리가 사는 세상의 작동 방식이 한층 더 흥미롭게 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