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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공공재

공공재란?

by 와니 아빠 지니 Mar 13. 2025


가을의 서울은 무언가 특별하다. 날씨는 선선하고 하늘은 높다. 그리고 가을이 되면 여의도 일대는 온통 사람들이 몰려든다. 이유는 하나, 한화 불꽃축제 때문이다. 평소에는 여유롭게 흘러가던 한강변도 이 날만큼은 사람과 차량으로 가득 찬다. 우리도 몇 년 전부터 가보고 싶어 했지만, 직접 가보는 건 엄두를 내지 못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였다.     


그렇다고 완전히 불꽃놀이를 놓친 것은 아니었다. 집에서도 소리는 들렸다. 창문을 열어놓으면 멀리서 들려오는 펑펑 터지는 소리가 귀를 간질였다. 그러나 그 소리만으로는 아쉬움이 컸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알록달록한 불꽃의 장관을 보고 싶다는 마음은 늘 남았다.     


그런데 2024년 가을, 뜻하지 않게 우리 가족은 불꽃놀이를 아주 가까이에서 볼 기회를 얻었다. 그날은 서해로 조개를 캐러 갔다가 돌아오던 길이었다. 밤 8시 반쯤, 여의도 근처에 다다랐을 때였다. 예상치 못한 정체에 도로 위에서 꼼짝없이 멈춰 서게 된 것이다.     


처음엔 답답함부터 몰려왔다. "왜 이렇게 차가 안 움직이는 거야?" 나는 중얼거리며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갑자기 하늘이 번쩍였다.     


"우와!"     


뒷좌석에 앉아 있던 아들이 창문을 활짝 열며 소리를 질렀다. 그제야 우리가 정체를 겪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불꽃놀이가 시작된 것이다.     


도로 위는 아수라장이었다. 많은 사람이 차를 갓길에 세우고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도 차를 움직이지 않았다. 우리도 움직일 수 없었으니, 방법은 하나였다. 그 순간을 즐기는 것. 창문을 활짝 열고, 우리는 그 화려한 불꽃쇼에 빠져들었다.     


아들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아빠, 너무 예쁘다! 저건 어떻게 만드는 거야?"     


"정말 예쁘지? 이건 화약과 기술이 만나서 만들어지는 거란다. 그런데 이 불꽃놀이는 단순히 예쁘기만 한 게 아니야. 많은 사람이 함께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참 특별하단다."


그리고서는 나는 살짝 웃었다. 그렇다. ‘맨큐의 경제학’ 책에서 읽었던 그 내용이 떠올랐던 것이다. 참 나란 녀석은...




불꽃놀이는 경제학에서 공공재의 대표적인 예로 자주 언급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불꽃놀이는 배제성이 없고, 경합성이 없기 때문이다.     


먼저, 배제성에 대해 생각해 보자. 배제성이란, 어떤 재화를 누군가 이용하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는지를 말한다. 예를 들어, 영화관 입장은 배제성을 가진다. 표를 사지 않으면 입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꽃놀이는 다르다. 내가 표를 사지 않았더라도 하늘을 올려다보는 순간, 그 장관을 감상할 수 있다. 누군가 나를 막을 방법이 없는 것이다.


경합성은 조금 다른 개념이다. 어떤 재화를 누가 소비하면, 다른 사람이 그 재화를 소비하기 어려워지는지를 뜻한다. 예를 들어, 내가 피자를 한 조각 먹으면 다른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조각이 줄어드는 것이 경합성의 사례다. 그러나 불꽃놀이는 내가 본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못 보는 것이 아니다. 나도 보고, 옆 사람도 보고, 모두가 똑같이 즐길 수 있다.     


이렇듯 배제성도 없고 경합성도 없는 재화를 경제학에서는 ‘공공재’라고 부른다.     


불꽃놀이 외에도 공공재는 우리 삶 곳곳에 있다. 대표적인 예로 도로, 공원, 등대 등이 있다. 도로는 기본적으로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재화다. 그러나 도로의 경우, 배제성과 경합성을 따져보면 조금 더 복잡한 논의가 필요하다. 도로가 한가할 때는 경합성이 없지만, 차량이 많아질수록 교통혼잡이 생겨 경합성이 생긴다. 그렇기 때문에 도로는 순수한 공공재라기보다는 혼합재로 보는 경우가 많다.    

 

이렇듯 공공재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려면 배제성과 경합성이라는 두 가지 기준이 중요하다. 최근에는 공공재라는 개념이 점점 더 광범위하게 쓰인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은 백신을 공공재라 하고, 의사나 대통령의 시간도 공공재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진짜 공공재인지 아닌지는 배제성과 경합성의 프레임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백신은 한정된 재고를 가진 자원으로, 이를 누가 먼저 사용할지를 두고 경쟁이 벌어진다. 경합성이 생기는 이유다. 또한, 비용을 지불하지 않으면 접종받을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배제성도 존재한다. 백신이 공공의 건강을 증진하는 역할을 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공공재가 되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의 시간 역시 마찬가지다. 대통령이 한 가지 일에 시간을 할애하면, 그 시간 동안 다른 일을 할 수 없게 된다. 경합성이 매우 강한 자원인 셈이다. 또한, 모든 국민에게 대통령의 시간이 동일하게 배분되지 않으므로 공공재로 보기 어렵다.     


의료 서비스도 공공재로 잘못 여겨지는 경우가 있다. 의료 서비스는 본질적으로 배제성이 존재한다. 병원에서 진료비를 지불하지 않으면 진료를 받을 수 없고, 약을 처방받는 것도 비용이 들어간다. 경합성 또한 명확하다. 한 의사가 진료를 제공하는 동안, 그 시간에 다른 환자를 돌볼 수는 없다. 의료 서비스는 공공의 건강에 기여하지만, 이 두 기준에서 볼 때 공공재로 분류되기 어렵다.     


교육 역시 흥미로운 사례다. 교육은 많은 사람에게 공공재로 인식되지만, 배제성과 경합성을 모두 가진다. 예를 들어, 특정 명문 학교의 경우 한정된 입학 정원을 두고 경쟁이 치열하다. 경합성이 명백히 나타나는 부분이다. 또한, 사교육이나 특수한 학습 환경을 제공받으려면 추가적인 비용을 부담해야 하므로 배제성이 발생한다. 교육은 사회 전체의 발전을 위해 필수적이지만, 모든 형태의 교육을 공공재로 간주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이 많은 것에 ‘공공재’라고 주장을 할까?


 이 질문은 단순히 경제학적 논의에 그치지 않는다. 공공재라는 단어는 점점 더 다양한 영역에서 사용되고 있지만, 그 본질적 의미와는 다소 동떨어진 맥락에서 오용되기도 한다. 공공재는 배제성과 경합성이 없는 재화로 정의되지만, 사람들은 이 개념을 ‘모두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 또는 ‘사회 전체에 유익한 것’이라는 관점으로 과대 해석하곤 한다.     


다시 말해 사람들이 어떤 자원을 공공재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 자원이 사회 전체에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예를 들어, 교육이나 의료 서비스는 필수적이고, 누구나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크다. 이러한 중요성을 드러내기 위해 배제성과 경합성을 따져보기 전에 "공공재"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공공재라는 단어가 가진 긍정적 이미지를 통해, 특정 자원의 필요성을 더 쉽게 설득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또한 공공재라는 개념은 정치적 수단으로 자주 활용된다. 정부가 어떤 정책을 추진할 때, 그것을 공공재로 묘사하면 대중의 동의를 얻기가 더 쉽다. 백신이 공공재로 불리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 백신은 개인의 건강을 넘어 집단 면역이라는 공공의 이익을 가져다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자원이다. 하지만 배제성과 경합성의 기준으로 보면 백신은 엄밀히 말해 공공재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공재라는 표현이 사용되는 이유는, 이 단어가 공익을 강조하는 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공공재와 공익을 혼동하는 경우도 많다. 사람들은 공공재를 단순히 "공익에 기여하는 것"으로 이해하기 쉽다. 대통령의 시간, 경찰의 활동, 예술 작품, 또는 기술 혁신 같은 것도 공공재로 언급되곤 한다. 이는 공공재의 경제적 정의와 상관없이, 공익을 위해 존재하는 자원이라는 관점에서 나온 혼동이다. 이런 인식은 공공재의 원래 정의를 흐릿하게 만들고, 모든 중요한 자원을 공공재로 간주하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이처럼 사람들이 공공재라는 단어를 남용하거나 오용하는 배경에는, 그 자원이 더 널리, 더 공정하게 분배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교육이나 의료 서비스가 공공재로 불리는 이유도, 그것이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누려야 할 기본권이라는 사회적 합의에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바람이 공공재의 개념을 확장시키고, 그 원래의 정의를 흐리게 하는 결과를 낳는다.     


공공재로 묘사되는 많은 자원이 실제로는 공공재가 아닐 수 있다. 사람들은 중요한 자원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제공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공공재라는 용어를 쉽게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공공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모두에게 중요한가?"라는 질문을 넘어,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는가?" 그리고 "내가 이용할 때 다른 사람의 이용을 방해하지 않는가?"를 묻는 것이 필요하다.     


결국, 공공재는 단순히 모두에게 중요한 자원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누구도 배제할 수 없고, 누가 이용해도 다른 사람이 사용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는 자원을 말한다. 이 정의는 단순해 보이지만, 현실에서 공공재를 제대로 이해하고 구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날 밤, 책을 읽고 있던 나에게 아들이 다가왔다.



예상치 못한 질문에 나는 책을 덮고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음... 공공재라... 아빠가 너랑 보내는 시간은 배제성도 있고, 경합성도 있지. 아빠가 너랑 시간을 보내면, 그 시간 동안 다른 일을 할 수 없으니까. 그래서 공공재는 아니야."


아들은 조금 실망한 듯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 나한테만 중요하니까 공공재는 아닌 거예요?"     


나는 웃으며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빠가 너랑 보내는 시간은 공공재는 아니지만, 아빠한테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거란다. 공공재는 모두를 위한 거지만, 이런 특별한 시간은 너랑 아빠만을 위한 거지."


아들은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럼 됐어요. 아빠가 나랑만 특별하면 되니까요!"  


공공재가 무엇인지에 대한 긴 고민이 아들과의 대화로 마무리되었다. 불꽃놀이 같은 공공재가 모두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면, 아들과의 이 특별한 시간은 나만의 행복이자 의미로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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