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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법에 대한 작은 고민

층간소음, 부정정 외부효과와 그 해결책

by 와니 아빠 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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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뉴스를 보면 층간소음 때문에 싸움이 났다느니, 심지어 칼부림까지 이어졌다느니 하는 소식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아파트라는 공간이 사람들을 한 곳에 모아주는 편리함을 제공하지만, 그만큼 서로의 삶이 얽히는 갈등도 피할 수 없다.


아파트에서 층간소음 문제는 이제 일종의 숙명처럼 여겨진다. 위층에서 나는 쿵쾅거리는 발소리, 밤늦은 시간에 울려 퍼지는 가구 끄는 소리, 아이들의 뛰노는 소리가 아래층 사람들의 마음을 긁어내기 일쑤다. 처음엔 "아이들이 크는 과정이니까 이해해 주겠지" 싶다가도, 반복되는 소음에 결국은 벨을 누르러 올라가게 되는 상황이 되고 만다.


"죄송하지만, 좀 조용히 해주실 수 있을까요? “


문 앞에서 나지막이 말하는 순간, 상대방이 문 너머에서 뭘 하고 있을지 상상하게 된다. 얼굴을 찌푸리며 나올지, 사과할지, 아니면 대뜸 "애들 키워 보셨냐?"며 화를 낼지.


이렇듯 층간소음은 단순히 소리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삶의 방식을, 그리고 서로의 생활을 얼마나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시험하는 작은 전쟁터 같은 문제다.


특히 아들이 있는 집은 더 걱정일 테다. 우리 집도 그렇다. 아들은 덩치가 크다. 뚱뚱한 건 아니라 또래 아이보다 키가 크다. 어렸을 때 영유아 검진을 가면 의사 선생님께서 거인증이 의심된다고 쓰긴 했다. 물론 아내나 내 키를 보고는 두 사람이 키가 크니, 애도 큰 거라며 영유아 검진지에 적는 말은 신경 쓰지 말라고 하셨다. 이런 아들이 발을 굴리면 어떨까? 밑에 층이 아마도 신경질이 날 것 같았다.


그래도 우리 아들은 다행히 조심성이 많은 편이다. 친구들처럼 뛰어다니고 소리를 지르며 놀기보다는, 책을 읽거나 블록을 쌓으며 시간을 보내는 걸 더 좋아한다. 물론 아이가 덩치가 크다 보니, 평소에 조심조심 걷는 발소리조차 아파트 구조상 아래층에 울릴까 늘 신경이 쓰인다. 내가 걱정을 하도 자주 하다 보니, 아들도 자연스럽게 주의를 기울이게 된 것 같다.


가끔 친구가 놀러 와서 같이 시간을 보낼 때면, 우리 아들이 먼저 친구를 타이른다.


"뛰지 마. 우리 아랫집에서 시끄럽다고 할 수도 있어. “


그 모습을 보면 내가 괜히 미안해지기도 한다. 아이들에게는 뛰어놀 자유가 있어야 할 텐데, 우리 집에서는 그조차도 조심해야 하니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항상 마음이 편한 건 아니다. 명절처럼 집안에 사람들 왕래가 많은 날이면, 나와 아내는 조금 더 신경을 쓴다. 아랫집에 선물이라도 드려야 덜 미안하지 않을까 싶어서다. 과일이나 떡 같은 소소한 선물을 준비해 아이 손에 쥐여주고 같이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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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제가 좀 시끄럽게 하지 않았나요? 조심하겠습니다. “


”아니야. 괜찮아. 아이들은 뛰어놀 수도 있지. 고마워. “


아들이 싱긋 웃으며 돌아올 때면, 내가 가진 불편한 마음도 조금은 가벼워진다.


이렇게 조심하며 사는 것이 이상적인 해결책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아파트라는 공간이 가진 태생적 한계 안에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이다. 이런 층간소음 문제는 단순히 개인의 성격이나 예의를 넘어, 사실은 경제학에서 말하는 외부효과의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아들아, 우리가 아랫집에 신경을 쓰는 이유는 단지 예의 때문만은 아니야. 이런 걸 경제학에서는 '외부효과'라고 해. “


아들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외부효과? 그게 뭐야?"

나는 쉬운 예로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외부효과란 내가 한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걸 말해. 우리가 조용히 걸으면 아랫집이 편하고, 우리가 뛰면 아랫집이 힘들겠지? 이런 게 외부효과야. “


"그럼 좋은 외부효과도 있어? “


"있지! 예를 들어, 길가에 예쁜 꽃을 심으면, 그걸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고 기분이 좋아질 거야. 우리가 일부러 그 사람들을 위해 심은 건 아니지만, 좋은 영향을 준 거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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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럼 우리가 층간소음에 대해 사과의 선물을 주는 건 좋은 외부효과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건 우리 행동으로 인해 아랫집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거지. 하지만 우리가 더 뛰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건 부정적인 외부효과를 줄이기 위한 거야. 외부효과에는 이렇게 좋은 것과 나쁜 게 섞여 있어. 우리가 신경 써야 하는 건 나쁜 외부효과를 최소화하는 거고."


"그럼 아빠, 부정적 외부효과는 나쁜 거네. 나쁜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


아들의 질문에 대해 어떻게 대답을 하면 좋을까 생각해 보았다. 매번 층간소음이 화두로 오를 때마다 뉴스에서 보던 싸움과 갈등이 떠오르곤 했다. 하지만 아파트에서 함께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정말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경제학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층간소음을 경제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흥미로우면서도 필요한 접근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해결 방법은 크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그중 가장 간단하고 직관적인 방법은 규칙을 정하는 것이다.


이를 경제학에서는 '직접 규제'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밤 10시 이후에는 조용히 해야 한다는 아파트 내 규칙이 대표적이다. 이런 규칙은 단점이 있다.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의미가 없기에, 이를 강제하기 위해 반드시 제재가 뒤따라야 한다. 문제는 그 제재가 강력하지 않으면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고, 반대로 지나치게 엄격하면 사람들 사이에 불만과 갈등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아이들의 뛰어노는 소리까지 강하게 제재한다면, 그것이 오히려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 규제는 효과적이지만, 그 균형점을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다음으로 떠오르는 해결책은 '피구세'와 같은 방식이다. 이는 규제를 보완하기 위해 제재를 비용, 즉 세금으로 바꾼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20세기 초 경제학자 아서 피구가 제안한 이 방식은, 특정 행위가 타인에게 피해를 줄 경우 그 행위에 대해 비용을 부과하는 것이다. 공장에서 나오는 오염물질에 세금을 매기듯, 층간소음에도 비슷한 원리를 적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소음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벌금을 부과하거나, 방음 매트를 설치하지 않은 집에 비용을 물리는 식이다. (물론 소음을 측정하는 기구를 각 집에 비치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이 방식을 이해하기 쉽도록 휘발유에 세금이 부과되는 사례를 들어보자. 휘발유에는 보통 높은 세금이 붙는다.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히 정부가 세수를 늘리기 위해서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이면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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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발유에 높은 세금을 부과하는 가장 큰 목적은 교통 혼잡을 막고, 교통사고를 줄이며, 대기오염을 완화하기 위해서다. 세금이 높아지면 휘발유 가격이 오르고,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자동차 사용을 줄이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도로 위의 차량 수를 줄일 수 있다. 이를 통해 환경오염도 감소시킬 수 있다.

이 방식은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에 따른 비용을 인식하도록 유도해 자발적으로 행동을 바꾸게 만든다는 점에서 효과적이다. 하지만 피구세 역시 제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한다는 점에서 규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세금이라는 형태로 비용을 부과해 부담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 그 기준이 명확하지 않거나 지나치게 높으면 불만과 갈등이 생길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결국, 비용과 제재를 얼마나 현실적이고 공정하게 적용하느냐가 핵심이다.


좀 더 창의적인 방법으로는 '배출권 거래제도'를 들 수 있다. 이 방식은 주로 환경 문제에서 사용되지만, 층간소음 같은 문제에도 흥미롭게 응용할 수 있다. 기본 개념은 간단하다. 아파트 내에 일정량의 '소음 허용권'을 나눠주고, 이를 사고팔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소음을 덜 내는 집은 남은 허용권을 필요로 하는 다른 집에 판매할 수 있다.


이 제도의 강점은 기회비용을 고려한다는 데 있다. 한정된 자원을 가장 필요한 곳에 배분하게끔 유도하는 것이다. 소음을 덜 내는 집은 허용권을 팔아 추가적인 이익을 얻을 수 있고, 반대로 소음을 더 내야 하는 집은 비용을 지불하면서 더 신중히 선택하게 된다. "소음을 내는 행동에는 비용이 따른다"는 메시지가 자연스럽게 전달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방식도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층간소음을 측정하고 허용권을 분배하는 과정이 복잡하다. 추가로 모든 주민이 이를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야만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 또, 소음 허용권이 돈으로 거래되기 시작하면 "돈을 낼 테니 마음대로 하겠다"는 식의 사고방식이 생길 위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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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생각해 볼 방법은 규제나 세금 같은 공적인 제도를 넘어, 개인 간의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코즈의 정리'라고 부른다. 이 이론은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로널드 코즈가 제시한 것으로, 외부효과가 발생했을 때 당사자들이 거래 비용이 낮다면 서로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예를 들어, 층간소음 문제를 두고 윗집과 아랫집이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우리 집은 오후 8시 이후에는 최대한 조용히 하겠습니다"라고 약속하고, 아랫집에서는 "그 정도라면 충분히 괜찮습니다"라며 동의하는 상황을 떠올릴 수 있다. 이렇게 합의에 도달할 수 있다면 별도의 규제나 세금 없이도 외부효과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코즈의 정리’의 핵심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당사자들이 서로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타협점을 찾는 데 있다. 실제로 우리가 아랫집에 추석이나 설 명절에 선물을 들고 가는 행동도 코즈의 정리와 맞닿아 있다. 선물을 통해 신뢰를 쌓고, 서로의 입장을 이해할 기반을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이 이론에도 한 가지 큰 현실적 한계가 있다. 바로 '거래 비용'이다. 코즈의 정리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협상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비용, 즉 거래 비용이 매우 낮아야 한다. 거래 비용을 단순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선물에 들어가는 비용’이다. 하지만 거래 비용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거래 비용이란 협상을 시작하고 진행하며 합의에 이르기까지 드는 모든 비용을 뜻한다. 예를 들어, 시간을 내어 만나는 일, 상대방과 대화하는 과정에서 드는 노력, 그리고 감정적으로 소모되는 에너지까지 모두 거래 비용에 포함된다.


예를 들어, 층간소음 문제로 윗집과 아랫집이 대화를 나누려 할 때, 서로의 감정이 이미 상해 있다면 협상 자체가 성립하기 어렵다. 한쪽은 "왜 우리가 소음을 참아야 하죠?"라며 반발하고, 다른 쪽은 "이 정도 소리도 못 참는다고요?"라며 적대감을 드러낸다면, 거래 비용은 높아지고 합의에 도달할 가능성은 낮아진다.


코즈의 정리는 외부효과를 해결할 수 있는 이론적 틀을 제공하지만, 현실에서는 이처럼 거래 비용이 높은 상황이 많아 실질적인 해결이 어려울 때도 있다. 거래 비용은 왜 그렇게 중요한지, 그리고 어떻게 낮출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다음에 더 깊이 다뤄보자. 이 문제를 이해하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 외부효과를 다루는 더 나은 방법을 찾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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