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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쉬 교수님이 알려준 협력의 지혜

내쉬 균형

by 와니 아빠 지니 Mar 27. 2025
브런치 글 이미지 1

아들은 항상 내가 쓴 경제 만화책인 ‘나도 경제왕 시리즈 1~3편’을 읽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혼자 종종 혼자 킥킥거리며 웃거나 고개를 갸웃거리곤 한다. 그러다 갑자기 책을 들고 내게 달려왔다.


"아빠, 책에는 차는 오른쪽으로 다니고, 사람은 왼쪽으로 다닌다고 했잖아요. 근데 실제로 차는 진짜 오른쪽으로 다니는 것 같긴 한데, 사람은 꼭 왼쪽으로만 다니지는 않던데요?“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요즘은 사람들이 꼭 왼쪽으로 다니는 건 아니야. 하지만 원래는 사람들이 왼쪽으로 걷고, 차는 오른쪽으로 달리는 게 기본 규칙이었어. 그게 모두를 안전하게 하기 위해 정해진 거였거든.“     


"근데 왜 지금은 잘 안 지켜요?“    

 

아들의 질문에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답했다.  

   

"사람들이 점점 더 자유롭게 걷는 걸 좋아해서 그럴 거야. 하지만 차가 오른쪽으로 다니는 규칙은 모두가 잘 지키고 있지. 그게 가장 중요한 부분이니까.“     


아들은 책의 다음 페이지를 보며 또 질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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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만화에 보니까 일본은 한국이랑 반대래요. 진짜에요? 일본은 차가 왼쪽으로 다니고, 사람은 오른쪽으로 걷나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했다.     


"맞아. 일본은 차가 왼쪽으로 다니고, 한국이랑 반대야. 그런데 이건 단순히 습관이나 취향의 차원이 아니라 역사적인 이유가 있단다.“     


아들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역사적인 이유요? 어떤 이유요?“     


"일본에서 차가 왼쪽으로 다니게 된 건 아주 오래전, 에도 시대 때로 거슬러 올라가. 당시에는 자동차가 아니라 말을 타고 다녔는데, 대부분 사람들이 말을 타면서 오른손으로 칼을 들었어. 그래서 오른손잡이인 무사들이 서로 칼이 부딪치지 않게 왼쪽으로 움직이는 게 자연스러웠지.“     


아들은 신기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럼 그게 지금까지 계속 이어진 거예요?“     


"그렇지. 나중에 메이지 시대에 영국에서 철도를 도입하면서, 영국의 왼쪽 통행 방식이 일본에도 영향을 줬어. 그래서 철도뿐만 아니라 자동차도 왼쪽으로 다니게 된 거란다.“


아들은 감탄하며 말했다.     


"와, 그렇게 오래된 규칙이 아직도 지켜지는 게 신기하네요!“     


"응, 맞아. 규칙이 한 번 정해지면 모두가 그 규칙에 따라야 더 안전하고 편리하거든. 일본이 왼쪽으로 다니는 이유도, 한국이 오른쪽으로 다니는 이유도 결국은 혼란을 줄이고 모두가 안전하게 다니기 위한 선택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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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은 책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웃으며 말했다.     


"아, 그걸 만화책에서 '치킨게임'이라고 했구나. 나는 치킨이 뛰는 줄 알았어요.“     


그 말에 나도 웃음이 났다.     


"치킨게임은 닭이 뛰는 얘기가 아니야. 치킨이라는 말은 영어에서 '겁쟁이'라는 뜻으로 쓰이거든. 누가 더 겁을 내고 먼저 물러설지를 가리는 게임이라서 그렇게 이름 붙인 거야.“    

 

"아, 그래서 차가 충돌하기 전에 누가 먼저 피할지 정하는 거군요?“     


"맞아. 둘 다 물러서지 않으면 큰 사고가 나겠지. 그래서 양쪽이 서로를 신중히 살피면서 최악의 결과를 피하려는 선택을 하게 되는 거야.“     


만화책에서 소개된 치킨게임은 단순히 갈등 상황을 보여주는 이야기가 아니다. 치킨게임은 경제학에서 중요한 개념 중 하나로, 선택의 순간에서 양보와 고집이 가져오는 결과를 분석하는 모델이다. 한국과 일본의 도로 통행 규칙도 치킨게임의 사례로 볼 수 있다.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누가 먼저 규칙을 따르기로 할지는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치킨게임은 두 사람이 서로 물러서지 않으려 할 때 발생하는 딜레마를 다룬다. 대표적인 예는 두 대의 차가 서로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릴 때이다. 먼저 핸들을 돌리는 쪽은 패배로 간주되지만, 둘 다 물러서지 않으면 충돌이라는 최악의 결과를 맞게 된다. 경제학에서는 이런 상황을 분석하며, 양보와 합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도로 위에서 누군가 먼저 양보하지 않으면 충돌이 발생하듯, 치킨게임은 양보를 통해 최악의 결과를 피하는 전략을 가르쳐준다. 도로 통행 규칙도 처음에는 누가 먼저 움직일지 결정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규칙이 정해지고 모두가 이를 따르게 되면서 도로는 안전하고 질서 있게 운영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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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에서 중요한 개념 중 하나가 바로 ‘내쉬균형(Nash Equilibrium)’이다. 내쉬균형은 게임이론에서 두 사람 또는 여러 참여자가 각자의 선택을 바꿀 이유가 없는 상태를 말한다. 즉, 모두가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선택을 하고 있고, 상대방의 행동에 따라 그 선택을 바꿔도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없을 때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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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개념은 수학자 존 내쉬(John Nash)가 개발했다. 존 내쉬는 1994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인물로, 게임이론의 현대적 틀을 세우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혹시 ‘뷰티풀 마인드(A Beautiful Mind)’라는 영화를 본 적 있을까? 존 내쉬 교수의 삶은 영화 ‘뷰티풀 마인드’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 영화는 내쉬의 학문적 업적뿐만 아니라, 그가 조현병이라는 정신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학계에 큰 족적을 남긴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영화 속에서 내쉬는 자신의 이론을 발견하는 과정과 인간적인 갈등을 동시에 겪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내쉬균형이 어떻게 모든 상황에서 균형을 이루는지를 보여준다.     


내쉬균형은 단순히 수학적 개념을 넘어, 현실 세계에서의 선택과 행동을 이해하는 중요한 도구다. 도로 통행 규칙처럼 사람들이 각자 가장 유리한 선택을 하면서도, 그 결과 모두가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는 상황이 바로 내쉬균형이다. 누군가 규칙을 어기면 모두가 손해를 보기 때문에, 각자가 자신의 선택을 바꾸지 않으려는 상태가 유지되는 것이다.     


뷰티풀 마인드의 한 장면에서 내쉬는 이렇게 말한다.    

  

"모두가 자신만의 이익을 추구하면서도 협력할 때,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이 말은 내쉬균형의 본질을 간단히 표현한 것이다. 다시 말해 내쉬균형은 사람들이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그 과정에서 서로의 선택이 상호작용하여 안정된 결과를 만들어 내는 상태라는 것이다.     


내쉬균형은 앞서 얘기한 치킨게임과도 깊이 연결된다. 치킨게임에서 각 참가자는 자신이 물러나지 않으면서 상대방이 물러서기를 바란다. 하지만 둘 다 양보하지 않으면 최악의 결과를 맞게 된다. 따라서 둘 중 한 명이 물러서거나, 둘 다 동시에 양보하는 균형 상태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내쉬균형은 이런 상황에서 "최악을 피하기 위해 모두가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선택을 하며 균형을 이루는 지점"을 설명한다.


하나의 흥미로운 사례는 환경오염 문제다. 각 나라가 경제 성장을 위해 환경 규제를 완화하려 한다면, 단기적으로는 각국이 이익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모두가 환경 파괴라는 최악의 결과를 맞게 된다. 반대로, 모든 나라가 환경 보호를 위해 협력한다면 각국이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이익이 더 크다. 내쉬균형의 관점에서 보면, 각 나라가 서로의 행동을 고려해 "모두가 규제를 지키는" 선택을 유지하게 되는 것이 균형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저녁 식사 후, 아들은 숙제를 하다가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아빠, 오늘 학교에서 친구랑 조금 다퉜어요.“    

 

"왜? 무슨 일 있었는데?“     


아들은 머뭇거리며 말했다.     


"친구랑 장난치다가 내가 먼저 했다고 했는데, 친구가 자기가 먼저 했다고 우기고... 그러다 둘 다 기분이 나빠졌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럼 결국 어떻게 됐어?“     


"결국, 둘 다 삐쳐서 서로 말 안 했어요.”     


나는 잠시 생각한 후 물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하면 더 좋았을까?“     


아들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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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서로 먼저 했다고 하지 말고, 그냥 같이했다고 하면 됐을까요?“     


"좋은 방법이네. 서로 먼저 이겼다고 고집하면 둘 다 기분만 상하고 재미도 없잖아. 근데 서로 같이했다고 인정하면 다시 장난치며 놀 수 있었을 거야.“     


"그래요. 다음에는 그냥 친구랑 같이했다고 말할게요.“     


나는 웃으며 덧붙였다.     


"그게 바로 협력하는 방법이야. 누구 하나 이기려는 마음만 있으면 결국 둘 다 손해를 보게 되지. 하지만 조금씩 양보하고 서로를 인정하면 둘 다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어. 좀 전에 얘기했듯 경제학에서는 이런 걸 ‘내쉬균형’이라고 해. 서로의 이익을 고려해서 최선의 결과를 만드는 거지."    

 

아들이 다시 숙제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며 문득 생각했다. 어쩌면 내쉬균형은 단순히 경제학의 개념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에서 더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해 꼭 필요한 지혜를 담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툼과 갈등은 누구에게도 이익을 주지 않는다. 작은 양보와 협력을 통해 균형을 이루는 것이야말로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길이다.     


존 내쉬가 말했듯이, 각자 자신의 이익만을 고집하기보다 서로를 이해하고 협력할 때 더 큰 이득을 얻을 수 있다. 이 단순한 진리는 친구와의 놀이부터 가족 간의 문제, 그리고 사회와 세계의 갈등까지 모든 관계에 적용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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