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수의 딜레마: 협력하지 않으면 모두 손해
산불은 예고 없이 오지만, 피해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임도를 만들 것인가, 자연을 그대로 둘 것인가.
게임이론으로 들여다본 산불 대응의 딜레마.
협력 없는 선택은 결국 모두에게 손해입니다.
아들과 아침에 등교를 하면서 대화를 했다.
“아빠, 산불이 너무 심한 것 같아요. 왜 계속 불이 날까요?”
아들은 산불이 너무나 걱정되나 보다.
며칠 전, 경북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이 상상 이상으로 번지고 있다. 강풍을 타고 불은 순식간에 안동, 청송, 영양, 영덕을 덮쳤고, 포항과 울진, 지리산 국립공원까지 위협하고 있다. 불은 다섯째 날에도 사그라들지 않았고, 서울 면적의 절반이 넘는 산림(3만 7752ha)을 집어삼켰다.
인명 피해도 컸다. 현재까지 확인된 사망자는 26명. 대부분 60대 이상의 고령자로, 연기에 질식하거나 대피 도중 화마에 휩싸인 분들이었다. 심지어 산불 진화에 투입된 헬기 한 대가 추락하면서 조종사도 현장에서 사망했다. 안타까운 일이다.
불씨는 초속 20m에 가까운 강풍을 타고, 열기둥을 만들어내며 1km 이상 날아갔다. 이른바 '비화(飛火)' 현상이다. 이 불씨 하나가 새로운 불길의 시작이 되었고, 산림당국조차 속수무책이었다. 기상 조건은 최악이었고, 사람의 힘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장면을 과연 자연재해라고만 부를 수 있을까? 산불은 자연이 만든 재앙일 수 있지만, 그 피해를 키우는 건 우리의 선택이다. 무방비였고, 준비하지 않았으며, 어떤 대책도 현실화되지 못했다. 우리는 늘 그랬듯, 불이 나고 나서야 소방차를 부르고, 헬기를 띄우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이쯤에서 하나의 개념이 떠오른다.
임도란 숲 사이를 가르는 길이다. 울창한 산림을 일정 구획으로 나누고, 불이 넘어가지 못하도록 ‘방화선’ 역할을 하게 만든다. 실제로 임도가 구축된 지역에서는 산불의 확산 속도가 확연히 줄어든다. 진화 인력과 장비가 접근하기도 훨씬 쉬워지고, 산림 전체를 지켜낼 가능성도 커진다.
하지만 이 임도는 논란을 낳는다. 자연을 가른다는 것. 나무를 베어 길을 낸다는 것은 분명 환경 훼손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늘 딜레마에 빠졌다.
“미리 나무를 베는 것이 과연 옳은가?”
“자연을 지키려 한다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큰 훼손을 불러오진 않는가?”
그리고 우리는 결국 또다시 산 전체가 불타는 장면을 지켜보게 된다.
산불은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다. 그 피해의 크기는 우리가 어떤 선택을 했는가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 특히 산불을 막기 위한 임도(林道)를 둘러싼 논쟁은 어디서가 본 듯하다. 그렇다. ‘게임이론’이다. 게임이론이란, 참여자(플레이어)들이 서로 어떤 선택을 할 때, 각자의 합리적인 선택이 오히려 모두에게 손해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수학적으로 설명하는 이론이다. 구조적인 딜레마를 풀 방법을 모색할 수 있는 방법이다.
우선 ‘죄수의 딜레마’다.
참여자 A: 정부, 산림당국 (또는 지역 사회)
참여자 B: 환경 보호 단체 (또는 자연 그 자체를 대변하는 쪽)
각자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임도를 만든다 (즉, 일부 나무를 베고 대비한다)
임도를 만들지 않는다 (자연을 그대로 둔다)
개인(또는 집단) 입장에서는 자신의 논리와 신념에 따라 움직이지만, 결과적으로는 모두에게 손해가 되는 구조. 임도를 둘러싼 이 논쟁도 같다.
정부는 “환경단체가 반대할 테니 괜히 나섰다가 욕만 먹겠다”라고 판단해 소극적으로 대처하고, 환경단체는 “정부는 어떻게든 개발하려고 하니까 절대 양보하면 안 된다”라고 생각해 강경하게 맞선다.
결과적으로 누구도 먼저 협력하지 않는다. 그리고 산불이 나면 모두가 그 피해를 본다.
이 딜레마는 결국 ‘내쉬 균형(Nash Equilibrium)’으로 귀결된다. 각 참여자가 상대의 전략을 바꾸지 않는 한, 자신도 전략을 바꿀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는 ‘고착 상태’다. 이 균형 상태는 겉으론 안정적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비효율적이고 파괴적인 현실을 만들어낸다.
그렇다면, 이 답답한 딜레마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없을까?
해답은 생각보다 멀리 있지 않다. 가장 중요한 건 게임의 판 자체를 바꾸는 것이다.
가령, 임도를 만드는 만큼, 다른 곳에 나무를 심는다면 어떨까?
이건 단순한 보상이 아니다. 환경 보호와 안전을 동시에 추구하는, 전략적인 대응이다. 예를 들어, 산불이 자주 발생하거나 방화선이 필요한 지역엔 계획적으로 임도를 만들고, 그만큼의 나무는 도시 근교, 황폐지, 혹은 생태 복원이 필요한 다른 지역에 다시 심는 방식이다. 이런 구조라면 오히려 전체 산림 면적은 유지되거나 더 늘어날 수도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 시민, 지역 단체, 기업, 정부가 함께 참여한다면 ‘임도 = 훼손’이라는 오해도 서서히 풀릴 수 있다.
‘자연은 가만히 놔두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곳에 개입하고, 망가진 곳은 복원하며, 장기적으로 생태계를 지키는 것 이게 진짜 ‘현대적인 자연보호’의 방향 아닐까?
지금 우리 숲은 과밀하다.
6~70년대 대대적인 조림 이후, 나무는 많아졌지만 그 숲은 너무 촘촘하다. 기후는 더 건조하고, 더 뜨거워졌다. 그 결과, 불씨 하나로 수만 헥타르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지금 이 상황이 만들어졌다.
이제는 질문을 바꿔야 할 때다.
“왜 나무를 베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지키기 위해, 어디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로.
그리고 그 답은 ‘임도’와 ‘재조림’이라는 균형 잡힌 전략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는 더 이상 감정만으로 자연을 지킬 수 없다. 이성적으로 설계된 시스템과, 공동체의 협력, 그리고 사후 책임까지 포함한 새로운 숲의 전략이 필요하다.
.... 아. 참고로 장인어른 공장이 영덕에 있는데... 불에 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