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 우리 집 벽에는 알록달록 커다란 한글 공부가 여기저기 붙어 있었다.
ㄱ,ㄴ,ㄷ~으로 이루어진 버전,
가, 나, 다~로 이루어진 버전,
가방, 나비, 다리~등등의 단어로 이루어진 버전.
글자들은 그림과 함께 짝을 이루고 있었고 그 색감은 정말이지 알록달록 꽤나 요란했다.
그래서 그것을 벽에 붙이는 순간 우리 집의 인테리어 따위는 잊어야 했다.
오로지 아이가 빨리 한글을 떼기 바라는 마음만 간절했다.
하지만 딸아이의 한글 배우기 속도는 너무도 느려서 내 속을 까맣게 태웠다.
그러다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하고 곧 학교에 갈 것만 같았다.
당장 다음 해가 입학인데 딸아이는 뭔 수를 써봐도 글씨에는 별관심이 없어 보였다.
주차장에서 자동차번호판을 보며 한글 떼기에 쉽게 성공했던 큰아이를 떠올리며 난 더 조급해졌다.
한글을 못 떼고 학교를 입학시킨 무심하고도 무관심한 엄마라 손가락질을 받을 것만 같았다.
특단의 조치를 써보자.
그 당시 아이가 무척이나 좋아했던 캐릭터의 커다란 장난감을 걸었다.
만화채널에서 계속 광고가 나오면 아이는 텔레비전 속으로 들어갈 기세로 홀린 듯 다가갔고 계속 사달라 졸랐던 장난감이었다.
"올 겨울에 한글 이거 다 읽으면 엄마 아빠가 저거 사줄게"
"진짜? 진짜 저 큰 거 사줄 거야?"
아이는 신이 나서 팔딱팔딱 뛰고 만세를 부르며 꺅꺅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아이는 그 겨울이 다 지나고 입학을 코 앞에 두고서 겨우 글자읽기에 성공을 했다.
휴~~~~
장난감으로 지갑은 가벼워졌지만 나의 마음은 커다란 안도감에 지갑보다 더 가벼워져서 정말 후~하고 날아갈 것만 같았다.
한국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한글 배우기가 이렇게 어렵구나를 느낀 순간이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 반 윤서는 이름을 읽고 쓰기에 한창이고 조금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윤. 서"
이 세 글자를 쓰는데 한 학기가 흘렀다.
더 정확히 말하면 아직 윤자는 극복을 못하고 있다.
담임 선생님이 종이에 커다랗게 이윤서를 써주시면 윤서는 그 글자를 따라 쓴다.
처음엔 따라서 쓴다기보다는 따라 그리는 수준으로 그마저도 따라 그리 지를 못했다.
하지만 한 학기 내내 연습한 결과 이제 따라 쓰기가 가능해졌다.
이와 서는 곧잘 쓰기도 한다.
"윤"자는 따라 쓰기 승률 80%이지만 나와 담임 선생님은 윤서가 손을 잡아주지 않아도 곧잘 이름을 쓰면(그것을 따라 그리던 따라 쓰던 지간에) 환호성을 치며 요란 맞게 박수를 쳐준다.
우리 윤서 너무 똑똑한걸~을 반복하면서.
이 학교에서는 한마디면 끝난다.
우리 윤서는 이름 읽고 써요.
엘리트다.
이름만 읽고 써도 다들 오~~~~~~~를 연발한다.
물론 이것이 저학년에 국한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초짜 실무사라 기준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초등 저학년교실이 있는 1층에서는 이름만 읽고 써도 바로 엘리트로 올라설 수가 있다.
(그러니 우리 반 승윤이처럼 글씨를 읽고 쓰기까지 한다면 완전 초초초 엘리트다.)
이름만 또박또박 써도 반응이 폭발적이다.
적어도 앉아서 학습이 된다는 얘기지 않는가.
내 아이가 한글을 읽었을 때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 과정의 힘듦을 알기에 더더욱 격한 칭찬과 환호성을 멈출 수가 없었다.
우리 반 윤서도 마찬가지다.
비록 3학년이지만, 3학년에 겨우 배워보는 이름이지만 그 과정이 여느 아이들과 다르게 매우 힘들다는 것을 잘 알기에 난 호들갑스럽게 엄지척을 해준다.
우리 반 윤서가 이름을 읽고 쓰는 것을 넘어서서 본인이 좋아하는 노~~ 란 표지의 "병원놀이" 동화책을
혼자 읽을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
윤서는 우리 반 엘리트라 잘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윤서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