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툭툭... 터억 터억... 퍼억퍼억 ... 저벅저벅... 처억처억...
처음에는 무심코 들었다. 이게 무슨 소리지? 한 달 걸린다는 엘리베이터 교체 공사가 시작된 지 일주일쯤 지나서야 이 낮고 무거운 소리가 늦은 밤 계단을 걸어 올라가는 지친 발소리라는 것을 알았다.
현관 옆에 붙은 내방은 아파트 복도 쪽의 계단 벽과 붙어 있어 침대에 누워있으면 무슨 비밀 이야기라도 해주듯 밤이 늦을수록 더 낮게, 가깝게 복도에서 나는 소리가 들린다
어쩌다 이른 새벽에 들리는 소리는 엊저녁 늦은 밤의 발소리와는 또 다르다.
...퉁퉁 ...텅텅... 통통... 처걱처걱.., 이건 일터를 향해, 아니면 어딘가 배움을 향해 내려가는 소리인가. 올라가는 무거운 발소리와는 좀 다르다. 아침 발걸음부터 처지면 안 되겠지.
공사 몇 달 전부터 교체공사가 한 달 이상 걸리니 쌀이나 생수 등 무거운 생필품은 미리 쟁여놓으라는 방송이 계속 나왔는데 3층에 사는 우리는 남의 일인 양 여벌로 들었다. 막상 엘리베이터 앞에 떡 하니 공사막이 쳐지고 꼼짝없이 걸어 다니게 되자 그제야 대체 얼마나 걸리나 궁금해졌다. 저층에 사는 우리야 별문제가 없지만 계단을 오르내리는 위층의 이웃들을 만나면 괜히 미안한 생각이 들어 쓸데없는 소리를 하기도 한다. 아이고 고생 많으시네요. 아 예 그렇지요. 보통 일이 아니에요. 이렇게 큰일인 줄은 몰랐네요.
엘리베이터가 멈추면서 그동안 몰랐던 것을 알게 되었다. 새벽에 신문을 들여오려고 현관 문을 열었다가 아! 엘베 공사 중이지? 하고 잠옷 바람으로 후딱 1층 우편함으로 내려갔다가 깜짝 놀랐다. 13층짜리 우리 라인 26가구 중에 우편함에 신문이 들어 있는 집은 경제신문 포함 딱 네 집이었다. 십 년 전? 종류도 다양했지만 대부분의 집에서 조간신문을 보지 않았나? 그러고 보니 길거리에서 종종 볼 수 있었던 신문 호객하는 사람들도 못 본 지 꽤나 되었고 신문에 두툼하게 끼어오던 광고지가 사라진지도 한참 된 것 같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신문 독자가 사라진 모양이다. 모든 정보를 오로지 신문을 통해 흡수하는 나로서는 신문 안 보고 어떻게 살지 했는데 요즘같이 사방팔방에 정보가 넘쳐나는 인터넷 세상에서 나 같은 사람이 예외적인 인간일 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구글이든 유튜브방송이든 그 모든 매체의 기본 정보는 거의가 신문에서 가져와서 짜깁기하거나 줄인 거라고, 기자들이 힘들여 취재한 기사를 공짜로 마구마구 퍼다 쓰는 인터넷 매체를 향해 신문사들이 소송을 준비한다는 기사가 나오는 마당이니 신문 독자가 점점 사라지고 구독료 내는 사람이 없어 신문사 다 문 닫으면 나는 어디에서 정보를 찾나 걱정되기도 한다. 지금처럼 인터넷 세상이 되기 전에는 구독하던 신문을 바꿔보면 일 년을 공짜로 해줬다. 거기에 일요일 신문까지 발행하면 어떻겠느냐는 여론조사도 있었다. 그러면 매일같이 새벽에 신문배달하는 이들은 일요일조차도 쉬지 말란 말이냐고? 일주일 단 하루도 안 빠지고 읽어야 할 만큼 대단한 기사가 뭐가 있으며 배달부는 사람도 아니냐고? 내가 직접 전화를 했는지 신문사에서 여론조사차 전화를 했는지 기억도 안 나지만 나는 화를 내며 일요신문배달 절대 반대라고 한 적이 있다. 그러고 보니 그전에는 일요신문이라는 것도 있었다.
하! 생각해 보니 우리나라는 진짜 후진국이었다. 365일 난리 치고 살아야 했으니. 그러다가 반공일이라고 좋아하던 토요일이 휴일이 되고 이젠 주 4일만 일하자 어쩌고 하는 마당이니 믿거나 말거나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나 보다. 지금 우리나라는 배달의 민족이 된지 오래다. 저녁에 주문만 하면 뭐든 다음날 새벽이면 현관 앞에 배달되어 있으니. 우리나라는 전 국민 수면 부족국가라고, 밤에 잠을 안 자면 수명이 얼마나 단축되는지 아느냐고 떠들면서도 한편에서는 밤에 잠 안 자고 일하는 직업들을 자꾸 만들어내고 있다. 엘리베이터 교체 공사 초기에는1층 우편함 밑에 배달 물건들이 쌓여있었는데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주문하는 사람이나 배달해주는 사람이나 엘리베이터 없이 물건 나르는 게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 깨닫고 자제하는 것 같다. 조금 전에는 관리실에서 안내방송이 나왔다. 고층에서 과일 껍질이랑 쓰레기를 베란다 밖으로 던지는 세대가 있다고, 과태료 물릴 수 있다고, 슬슬 지쳐가는 건가. 그래서 어둠이 깔리자 안 보인다 생각하고 투하하는 건가. 13층짜리 아파트도 이런데 30층 이상 고층 아파트 엘리베이터 교체 공사는 어떻게 할까? 엘리베이터가 양쪽에 두 개가 있어 교대로 하나? 뭔가 방법이 있겠지 하면서도 새삼 고층 아파트가 무조건 좋기만 한건 아니구나 싶다.
자정이 가까워오는 시간, 침대에 누워 있는데 여전히 무거운 발소리가 들려온다. 누군가의 늦은 귀가, 턱턱... 툭툭... 처걱처걱 ... 하루 종일 일하고 또 계단을 걸어 올라가려니 발소리도 엄청 무겁게 들리네 하다가 갑자기 실소가 나왔다. 우린 그나마 다행이지. 저층이라서.라는 내 말에 같이 사는 남자가 의기양양하게 대답했다. 아파트에 불이 나도 우린 걱정 없어. 이불 둘러싸매고 화단으로 뛰어내리면 된다고. 이래서 남의 죽음이 내 고뿔만도 못하다고 하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