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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폰없는 세상 나홀로 였네

by 분홍신

나는 심심할 새가 없는 사람이었다. 침대 옆이랑 책상 위에 쌓아놓은 책 봐야지, 운동하고 산책도 해야지, 세계테마기행도 봐야지, 사회적인 모임도 친구도 많지 않지만 심심해서 오늘은 또 뭐하나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핸드폰을 분실한 나흘 동안 나는 절해고도, 적막강산에 방치당한 기분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아무도 찾지 않는 우물 밑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것 같았다. 눈뜨자마자 습관적으로 보던 인스타며 잡동사니 소식들이며 궁금하면 바로 검색하는 모든 것들, 하다못해 오늘 날씨까지 나를 이끌어주던 길잡이가 갑자기 사라져 길 잃은 아이가 되었다. 나가서 걷기라도 해야지 생각하다가도 만보기가 작동이 안 되니 걸을 맛도 안 났고 무엇을 하려고 하면 습관적으로 검색을 해야 하는데 핸드폰이 없으니 결국 며칠 동안 나는 소파에 누워 그동안 미뤄두었던 미드 시리즈를 종일 보았다. 스스로를 TV 잘 안 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핸드폰이 없으니 나도 모르게 TV에 집중했다. 밴드에 숙제를 올려야 하는데 인터넷으로 들어가 보니 핸드폰으로 인증번호를 보내야 켤 수 있었다. 핸드폰 없이는 되는 게 없었다. 오래전 친구들 전화번호는 수첩에 있는데 단톡방 친구들 번호는 적어놓지도 않았다. 거의 쓸 일 없는 집 전화가 그대로 살아있어 몇몇에게 전화해 보니 낯선 번호라서 그런지 핸드폰은 아예 안 받고 그들의 집 전화는 해지된 상태였다. 멍하니 있다가 예전에 쓰던 핸드폰을 찾아보니 다행히 그 속에 전에 있던 것들이 지워지지 않고 남아있었다. 정 못 찾으면 오래된 거긴 하지만 그것을 다시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TV를 끄고 생각했다. 난 어떤 사람이지? 혼자서도 잘 놀고 있다고 까불고 있었지만 핸드폰 없이는 무기력해지는, SNS 시대에 걷잡을 수없이 휩쓸려 가는 숱한 군중의 하나일 뿐,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실감했다.


그동안 우산을 얼마나 많이 잃어버렸던가. 극장에서, 화장실에서, 버스 안에서... 무엇이든 손에 들고 다니면 놓친다는 것을 알면서 핸드폰만 들고 내렸으니 잃어버리는 것은 당연했다. 친한 언니와 점심을 먹고 율동 공원이나 한 바퀴 돌고 가자고 차에서 내리는데 언니가 가방은 뭘 들고 가느냐고 했다. 만보기 확인을 위해 핸드폰만 갖고 내렸다. 청바지 뒷주머니에 넣고 한 바퀴 돌았는데 율동공원 어디선가 빠진 모양이었다.

집에 와서야 핸드폰이 없어진 것을 알았고 계속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공원으로 다시 가서 우리가 걸었던 길을 되짚어 걸었고 한 번 앉았던 벤치 주변을 샅샅이 뒤진 후에 공원관리소에 전화번호를 남기고 왔다. 남편이 분실신고를 하고 위치 추적을 해보라고 해서 인터넷으로 kt 검색을 해보니 나의 폰은 집 앞의 맥도널드 가게 앞 15미터 지점에 있다고 나왔다. 율동에서 잃어버렸는데 왜 맥도널 앞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남편의 핸드폰을 들고 가서 전화를 해봐도 소리는 안 들리고 그곳은 도로변인데 설마 내 폰이 누군가의 차 안에 있을 리는 없고, 위치 추적도 믿을 수 없네 하면서 이번에는 근처 대리점으로 가서 물었다.

잃어버리면 어떻게 되나요? 폰에 있던 것이 다 사라지고 다시 시작해야 하나요?

그럼요. 골치 아프죠. 그러니 다시 가서 찾는 게 제일 낫죠.

이것은 틀린 말이었다. 삼성 계정에 저장되어 있다면 나의 새 폰으로 복원할 수 있는 거였다. 위치 추적에나 집중하라고 말해줬다면 공원에 또 갈 필요가 없었는데 멍청한 나는 그 말을 믿고 그다음 날까지 공원을 몇 번이나 돌았다.

신뢰가 안 갔지만 저녁때 다시 위치 추적을 해보니 이번에는 중앙교회 뒤 중앙골든빌 52미터 지점에 있었다. 누군가 내 폰을 주워서 갖고 다니다가 잠금장치가 되어있어 버렸나 보다 생각했다. 어둠이 깔리는데도 확인차 나는 골든빌과 점골공원 근처를 한 시간을 뒤졌다. 다음날 아침에도 폰의 위치는 같은 곳이었고 나는 같이 있었던 언니와 아침 7시에 만나 빌라와 공원 위쪽 산을 뒤졌다. 위치 추적에서 지도로 보다가 스카이뷰로 보니 52미터 지점은 바로 위의 산이라 짐작되었고 어떤 놈이 산 위로 집어던졌나 보다 욕하면서 한 시간을 찾다가 집으로 왔다. 아침을 먹고 이번에는 나 혼자 가서 짐작되는 지점의 산속을 두 시간을 뒤졌다. 어차피 근처에 있다면 어떻게든 찾는 게 낫겠지 하면서 산속을 헤매다가 기진맥진해서 돌아왔다.

계속 전화하고 위치 추적 다시 해보니 이번에는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에 있었다. 그제야 나는 누군가 내 핸드폰을 차에 싣고 다니면서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밤이 되니 핸드폰은 다시 중앙골든빌앞으로 왔다. 내가 아무리 기를 쓰고 찾으려 해도 돌려줄 맘이 없다면 방법이 없었다. 근처의 다른 대리점에 가서 물어보니 핸드폰 팔 생각에 신이 난 주인은 나의 전화번호를 물었고 자신이 사례금을 준다는 문자를 보내주겠다고 하였다. 잠금이 걸렸는데 문자를 볼 수 있냐고 하니 문자가 갔을 때 사례금이라는 한 줄 정도는 뜬다는 것이었다. 사흘 동안 전화 안 받던 사람이 사례금 준다는 말에 마음을 바꾼다는 것도 용납이 안되었고 나중에 알고 보니 잠금이 되어있으면 폰에서 아무것도 볼 수 없는데 여기 대리점 주인도 엉터리 선무당이었다.


5일째 되는 날도 전화 신호는 가고 위치는 여전히 골든빌 52미터 지점이었다. 핸드폰이 방전되어 꺼졌다면 위치 추적이 안된다는데 전화는 안 받으면서 차에서 충전은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포기하고 전에 쓰던 폰을 가지고 kt 플라자로 갔다. 검색해 보더니 너무 오래된 것 (2016년산)이라 배터리가 다 되기도 했지만 락 rock에 걸려 개통할 수가 없다고 했다. kt 통신사에서 개통하지 않고 삼성전자 대리점에서 샀고 거기서 개통했기 때문에 핸드폰의 칩이 새 폰으로 옮겨졌고 통신사에서는 그 락을 풀 수가 없어서 새 폰을 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왜 삼성에서 샀는냐고 물었다. 나는 삼성 제품을 사니까 당연히 거기서 사는 줄 알았다고 했고 점주는 순진한 생각이라고 하면서 통신사에서 사야만 이런 경우에 연결해 줄 수 있다고 했다. 지칠 대로 지친 나는 재고 처리 중인 싼 것으로 샀고 다행히도 삼성 계정에 저장되어 있었던지 모든 것은 다 복구되었다. 비밀번호를 찾든 다시 만들든 해서 밴드 연결하고 신용카드 깔고 그럭저럭 일상으로 돌아왔다.

분실한 폰에 틈나는 대로 적어놓은 메모며 사진들 때문에 찜찜한 마음을 어쩔 수가 없었는데 분실폰으로 신고되면 우리나라에서는 어디서도 쓸 수 없는 좀비폰이 된다고 한다. 비번을 알아내어 잠금을 풀 수도 있느냐고 물어보니 그런 건 경찰이나 해커들이 포렌식 하는 건데 비용이 수억 원이 든다고 했다. 수억 원? 해외로 팔려나가서 초기화시켜 사용되는 모양인데 더 이상 알 수가 없었다. 그나마 내 비번이 1234나 0000 아니라서 쉽게 풀 수는 없을 거라고 했다. 밴드의 선생님이 분실폰을 원격으로 초기화했다고 알려줘서 그런 방법이 있구나 신이 나서 kt 대리점으로 또 달려갔는데 대답은 안된다였다. sk는 원격 초기화가 되는데 kt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남편은 유튜브에 초기화하는 방법 다 있다고 찾아보라고 했다. 유튜브에서 뭔가를 배울 용량이 안되는 나는 이 글을 쓰기 전에 다시 kt 홈에 들어가 분실폰 원격 초기화할 수 있느냐고 처음으로 인터넷 톡이라는 걸 했더니 그런 방법은 없다고 기기 산 곳에 가서 알아보라는 답톡이 왔다.


도대체 누구 말이 맞는 말인지? 분명한 건 잃어버린 놈이 잘못이라는 거다. 핸드폰을 분실했는데 전화를 받지 않는다면 분실신고하고 인터넷으로 위치 추적해서 지도보다 스카이뷰를 확인해야 한다. 그 위치가 정확하다기보다 그 반경 어딘가에 있다는 소리다. 대강의 위치를 알았다 한들 g핸드폰을 주운 사람이 돌려줄 마음이 없다면 방법이 없다.

내 폰 주워서 차에 모시고 다니시는 분! 당신은 대체 누구시길래? 어떤 ㅇㅇㅇ인지?


한달후이야기

분실폰은 완전히 포기하고 그보다 훨씬 싼 새 폰을 사서 한달여가 지날 무렵 핸폰분실물찾기센터라는 곳에서 문자가 왔다. 내가 잃어버린 핸드폰이 그곳에 있다고 본인이 맞으면 착불택배로 보내주겠다는 것이었다. 이런 일이? 놀라면서 바로 받겠다고 했고 착불비 3200원을 내고 내 폰은 다시 내 손으로 들어왔다. 다시 또 바꾸기 싫어 차일피일 미루다가 kt프라자로 갔더니 핸폰 다시 바꾸기 번거롭고 안쓸거면 30만원에 보상구입을 해준다고 했다. 와우! 최신폰이어서 그런 모양이다. 암튼 우리나라 좋은 나라다.

핸폰 분실후 많은 사실을 알았다. 잃어버리면 바로 통신사에 분실 신고 하고, 분실폰은 국내에서는 거래가 안되니 결국은 우체국이나 경찰서를 통해 서울에 있는 핸드폰분실센터로 모이고 거기서 통신사와 연계하여 주인에게 연락이 된다는 것. 이제부터 핸폰 잊어버리지 않도록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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