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신통하네.
왜요?
아, 건넛마을 시누이도 그 방에서 무서워서 못 자겄다던데.
난방비도 줄일 겸 안방에서 자고 거실로 나오는 나를 보고 이웃집 할머니가 기특하다는 얼굴로 하는 말이다.
뭐가 무서워요? 엄니는 바닥에서 요 깔고 주무시고 저는 침대에서 자는데요.
할아배 침대에서 잔다고?
우리 시어머니, 할매와 나는 가끔 우리 시아버님, 할배 얘기를 한다. 아주 잘 돌아가셨다고.
할매와 동갑이신 할배는 작년에 아흔한 살로 저녁 드시고 침대에 누우면서 숨이 넘어갔다. 점심도 잘 자셨고 오후에는 늘 하듯이 현관 밖 의자에서 해바라기를 한참 하셨고 저녁때 들어와 소파에 앉으셨는데 갑자기 부들부들 떨면서 입으로 코로 물 같은 것이 줄줄이 쏟아졌다. 놀란 할매가 수건으로 닦아주고 어찌어찌 저녁까지 드셨고 일찍 주무시라고 침대로 부축해 가서 뉘었는데 그게 끝이었다. 잠들었나 했는데 아무래도 이상해서 건넛마을 사는 딸에게 아버지가 이상하다면서 전화했고 딸이 왔을 때는 이미 돌아가신 후였다.
이 집안의 큰아들과 내가 결혼했을 때 할배는 50대였는데 그때도 늘 하는 말씀이 난 오래 뭇 살어. 환갑까지 살면 오래 사능겨. 앞으로 5년도 안 남았지, 였다. 해마다 잊지 않고 자신의 살날이 얼마 안 남았다고 하셨는데 그 후로도 40년 가까이 사셨고 동갑내기 마나님한테 죽는 날까지 보신탕에, 소꼬리에, 인삼 듬뿍 수발 받으며 당신의 침대에서 주무시듯 가셨으니 뭘 더 아쉬워할까?
40년 세월 동안 오토바이 타고 홍성장에 가다가 트럭에 받혀 실려 간 적도 있고 작은 아들이 사준 전동차 끌고 내려가다가 봉고차에 받혀 죽을 뻔한 적도 있다. 혈압약, 변비약, 전립선 약 등 온갖 약을 한주먹씩 드시다가 혈압이 바닥으로 떨어져 동네의원에서 중환자실로 이송된 적도 있다. 아흔을 코앞에 두고 코로나로 격리되어 장례준비를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큰딸인 시누이는 당연히 돌아가시리라 생각하고 아버지 머리맡에 있던 온갖 잡동사니, 양말 보따리부터 과자와 사탕 봉투, 전화번호부부터 옛날 책들 전부 다 버렸다가 멀쩡하게 살아오신 할배한테 혼꾸멍이 났다. 무지무지 추웠던 겨울날 할배 전립선 수술하러 홍성의료원에서 분당 서울대 병원으로 모셔오던 내가 하얗게 살얼음이 낀 도로의 블랙아이스 위를 무심코 달리다가 차가 부웅하고 떠서 앞차를 들이받은, 지금 생각해도 등골이 서늘한 사고도 있었다.
장례식장에 조문 온 사람들은 속마음이야 어떻든 한결같이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하면서 조의를 표하지만 난 그런 말 하나도 믿지 않는다. 장례 치르고 오자마자 할매가 마늘밭에 나가 풀 뽑는 사진을 본 친구는 할머니 나름으로 마음을 다지고 있을 거라고 나를 위로하듯 말했는데 나는 웃기지 말라고 한마디로 일축했다. 할배가 평생 골골거리면서 입으로 농사를 지었다면 할매는 허리가 팍 꼬부라지도록 죽을힘을 다해 온몸으로 지었다. 할배 수발드느라 할매가 힘이 달리고 지쳐 숨 가빠졌을 때 자식들은 슬슬 요양원을 생각했다. 할배가 똥오줌도 못 가리게 되면 그때는 무조건 요양원 보내야겠다고. 그래도 할매는 내가 살아있는 한 죽을 때까지 수발해야지 하고 스스로를 다짐하셨다. 만만한 맏며느리인 내가 자주 내려갔지만 24시간 같이 있는 할매의 수고에 무슨 큰 도움이 되었을까? 남편은 직장 다닌다는 확실한 이유로 갈 수 없었다. 번드르르한 핑계가 없는 유휴노동력자인 나는 시도 때도 없이 할배병원 모셔가는 보호자로 불려 다녔는데 어느 날 우리 딸의 시어머니, 즉 안사돈과 통화할 일이 있었다. 할배의 안부를 묻는 사돈에게 무심코 말했다. 좀 이상한 얘기지만 왜 안 돌아가시는지 모르겠어요. 안사돈도 무심히 대꾸했다. 아이고, 쉽게 안 돌아가셔요. 저희도 아흔 훨씬 넘은 시아버님 돌아가실 때까지 새벽에 수도 없이 불려갔었지요. 이런 게 솔직 토크 아닌가. 언젠가는 시골에 와보니 할배가 낫 두 개를 파랗게 갈아놨다. 할매랑 나랑 콩 베라고. 나는 콩도 베고, 깨도 털고, 고구마도 캐고... 그때마다 할배는 내가 웬만한 일꾼들보다 훨씬 일을 잘한다고 칭찬하셨고 이웃들에게 우리 며느리 최고라고 입이 닳도록 자랑하셨다.
장례식 끝나고 막내 시동생이 할매 혼자 있는 집에서 하룻밤을 자게 되었는데 거실에서 자던 그는 뭐가 무서웠는지 이불 돌돌 말면서 구석으로 구석으로 피하다가 아침에 일어나 보니 주방의 냉장고 앞에 있었다고 한다. 돌아가신 날 우리가 와서 할배를 영안실로 모셔간 후 이웃에 사는 노부부가 혼자 있을 할매가 마음에 걸려 할매보러 이층 계단을 올라오는데 문득 등이 섬뜩했다고 한다. 무섭지 않느냐고 같이 있어주겠다고 했는데 할매는 무섭긴 뭐가 무서우냐면서 어서 가라고 했다. 급할 것도 없는데 옷장 문을 열어놓고 방안 가득 할배 옷을 정리하고 있었다고 한다.
할매는 할배가 한 번쯤은 꿈에 나타날 만도 한데 한 번도 안 온다고, 죽으면 끝인개벼 하셨다. 울할매는 당신이 할 수 있는 것 전부를 했다. 남편이 좋고 싫고를 떠나 뼛속 깊이 박힌 가부장제의 마지막 세대로서의 의무를 다했다, 무슨 아쉬움이 남아 할배가 나타날까 난 그렇게 생각한다.
할매와 나는 죽이 잘 맞는 편이다. 그래서 무서움도 안 타는 편인가? 그렇진 않다. 어렸을 때 외출할 일이 별로 없었던 우리 형제들은 경조사로 친정에 가는 엄마를 잘 따라갔다. 외가의 뒷마당 울타리 너머는 우리나라에서 크기로 몇 손가락 안에 든다는 예당 저수지가 있었다. 외사촌들이 하는 이야기는 늘 똑같았다. 비 오는 날 변소 갔다가 저수지 쳐다보면 귀신들이 불쑥불쑥 물 위로 머리를 내밀고 있다고. 그 귀신들이 처녀귀신도 있고 할미 귀신도 있는데 어떤 때는 울기도 하고 어떤 때는 씨익 웃기도 한다고. 그 말이 어찌나 무서웠는지 캄캄한 밤에 저수지 보이는 게 무서워 변소도 못 갈 지경이었다.
당신의 아들딸도 섬찟한 느낌을 가졌다는 데 당신 침대에서 태평하게 낮잠도 자고 밤잠도 잘 자는 나는 왜 아무 느낌이 없을까? 귀도 절벽인 할매가 혼자 있어 한 달에 일주일 이상 이 집에 내려와 있는 나는 할배 침대를 한 번 더 대청소하기로 했다. 이미 일 년도 훨씬 지난 터라 침대 시트와 패드를 수도 없이 빨았는데 오늘은 작정하고 매트리스를 들어보았다. 아뿔싸! 침대 프레임 구석구석에 할배의 하얀 머리카락이 거미줄처럼 달라붙어 있었다! 하얀 머리카락에 혹시라도 생전의 혼이 붙어있는 건 아닐까? 그래도 무서운 느낌은 나지 않았다. 최근에 <한강>의 소설에서 시체 더미 속의 정대의 혼령 이야기와 제주도 중산간의 눈 덮인 집의 혼령 이야기 부분을 놀라움 속에 숨죽이면서 읽었다. 혼이 있다 해도 그 혼들은 무서운 게 아니었다. 간절할 뿐이었다. 육체에서 분리되어 작은 새처럼 떨어져 나간 혼들, 울할배의 혼도 어디쯤 있긴 있는 걸까? 간도 작고 무서움도 남 못지않게 타는 나인데 할배가 머물렀던 안방에, 그 침대에 아무 생각 없이 잘 눕는 내가 기특해 보인다고 하니 나쁜 것 같지는 않다. 할배도 세상모르고 코 골며 잘 자는 머리가 하얗게 센 늙은 마나님과 좀 덜 늙은 며느리를 보면 안심하고 가실 것 같다.